[이진우 시론] 은행 횡재세와 이익 탈취 사이
(시사저널=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이탈리아 정부가 은행들에 이른바 '횡재세'를 부과하기로 했다는 뉴스는 우리에게도 몇 가지 고민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탈리아의 은행 횡재세는 은행들이 평상시보다 돈을 많이 벌면 그 이익의 일정 비율을 추가 세금으로 납부하는 개념이다. 이탈리아의 5대 은행은 올 상반기에 1년 전보다 64% 늘어난 105억 유로의 이익을 올렸다. 이 정책이 확정되면 이탈리아 은행들은 이 가운데 30억 유로(약 4조원)를 추가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너무 과격한 방식으로 보이지만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진 않다. 우리나라 4대 은행도 최근 2년 사이에 상반기 이자이익이 12조원에서 16조원으로 늘어났고, 이 이익을 토해내라는 사회적 압박이 거세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부가 내놓은 특례보금자리론이다. 특례보금자리론은 저렴한 고정금리 대출인데, 은행에서 이미 대출받은 소비자들도 중도상환수수료 없이 갈아탈 수 있다. 정부가 은행들에 이 중도상환수수료를 받지 말라고 한 것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열심히 모은 고객을 두 눈 뜨고 뺏기는 꼴이 됐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소비자들에게 특례보금자리론을 해주려면 정부가 시중에 MBS라는 채권을 팔아 돈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 MBS를 은행들이 대거 사주고 있다. 역시 정부가 은행들에 채권을 사라고 했기 때문이다. 은행들 입장에서는 5~6%대 이자를 꼬박꼬박 내던 우량 고객을 뺏기고, 그 고객이 갚은 돈으로 4%대 이자를 주는 MBS를 사들이게 된 셈이니 앉아서 손해 보는 돈이 적지 않다.
정부의 이런 압력이 우리나라나 이탈리아에서 별 저항 없이 먹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은행이 올린 이익이 스스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정부가 준 은행 허가증으로 일궈낸 사실상 '불로소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은행의 이익을 회수하는 방식은 우리나라보다 이탈리아가 더 합리적이다. 이탈리아 은행들은 적어도 얼마의 이익을 뺏겨야 하는지 미리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별 노력 없이 거대한 이익을 올리는 것에 대해 비판 여론이 있을 수도 있고, 그 이익을 줄이려는 노력을 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그 방식은 신중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자주 나타나는 정부의 비공식적인 이익 탈취 행위가 가져오는 가장 큰 문제는 합리적이지 않은 강압을 수긍하는 문화를 만든다는 데 있다. 그러느니 차라리 이탈리아처럼 은행 횡재세를 도입하는 게 낫다.
다만 이 횡재세의 세율이 과도하게 높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은행들은 어느 수준 이상 이익을 올리고 나면 이익을 더 올리는 걸 포기하게 되고 그러면 신용이 낮은 기업이나 개인은 대출을 받기 더 어려워진다. 돈을 못 갚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개인이나 기업에도 은행이 기꺼이 돈을 빌려주는 이유는, 한 푼이라도 이익을 더 올리려는 은행의 욕심 때문이다. 그 덕분에 가난한 사업가도 은행 대출을 받아 사업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니 그 욕심을 포기하게 되는 수준까지 횡재세의 세율을 높여서는 안 된다.
은행업이나 통신업처럼 정부의 허가가 없으면 사업을 할 수 없고 정부의 허가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경쟁자의 진입을 막을 수 있어 이익을 쉽게 올리는 업종은 이익이 늘어날 때마다 늘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이런저런 비공식적 수단으로 그 이익의 일부를 정부가 떼어간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부의 진입 허가를 필요로 하는 산업에 속한 기업은 법인세율을 더 높여 거두는 게 어떨까. 다른 기업들보다 쉽게 사업을 하고 있다면 세금을 더 내는 것으로 그 형평성 논란에서 자유롭게 해주고 더 이상 여론을 등에 업고 물밑에서 압박하는 일은 그만두는 사회적 합의를 생각해볼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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