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함이 전부였던 시대’는 어디로···X세대는 갔지만 ‘386세대’는 장기집권[책과 삶]
대중문화와 사회 변화 속 ‘그 시절’ 소환
“왜 다시 90년대인가” 고찰
·
야망과는 거리가 멀었던 90년대
신세대 담론은 저물고, 386 세대의 장기집권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을 던져
모든 현재의 시작, 1990년대
윤여일 지음|돌베개|340쪽|1만9000원
90년대
척 클로스터만 지음·임경은 옮김|온워드|528쪽|2만5000원
길거리에서 눈을 돌려보라. 젊은 세대 열에 아홉은 배꼽까지 오는 짧은 크롭티에 통 넓은 바지를 입고 있을 것이다. 언론엔 ‘90년대 패션’ ‘X세대’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패스트패션에 반대하는 환경주의자라서, 혹은 단순히 옷이 거기에 있다는 걸 잊어서 20~30년 전 입던 옷이 옷장 안에 그대로 있다면 그 옷을 꺼내어 ‘빈티지 패션’이란 이름으로 입어도 무방할 것이다.
21세기 초입에 우리는 왜 20세기 마지막 10년을 그토록 향수하는가? <90년대>를 쓴 미국의 작가 척 클로스터만은 이렇게 말한다. “항상 모든 새로운 세대는 20년 전의 세대에 흥미를 느끼는 경향이 있었다. 90년대 초중반 사람들은 70년대 스타일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나팔바지와 크롭티가 유행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나란히 ‘90년대 열풍’을 분석하는 책이 나왔다.<90년대>는 미국의 작가이자 대중문화평론가인 클로스터만이 1990년대의 음악·영화 등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인종과 계급, 섹슈얼리티에 대한 변화, 정치, 경제 등 90년대를 폭넓게 그려낸다. 미국인에게 “살아남는 것이 놀랍도록 쉬웠던 시절”로 기억되는 90년대의 조감도를 세밀화적 필치로 그려낸다. 그가 집중한 부분은 ‘정서’다. “정서야말로 진정 중요하다. 동시대인의 ‘감정’과 그 감정이 의미하는 바는 90년대를 먼 과거나 가까운 미래와 구별하는 요인이다.” 그렇다면 90년대의 정서는 무엇이었을까? ‘쿨’함이다. “미국인들에게는 90년대는 인생이 별것 없다는 사고방식이 별것 이상의 화력을 몰고 그 시대를 풍미했다.”
사회학자 윤여일의 <모든 현재의 시작, 1990년대>는 현재 한국 사회의 위기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90년대를 조망한다. “1990년 초반 대의민주화 성취와 현실사회주의권 붕괴를 목격하고, 중반 소비사회로 급격히 나아가고, 후반 경제위기 이후 구조조정이라는 구조가 고착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윤여일은 당대의 시대적 고민과 사유를 치열하게 담아냈던 문예지·학술지·계간지·대중문화지 등 잡지를 중심으로 1990년대의 사회적 변동을 고찰한다. 정치적 민주화, 소비주의의 대두, 페미니즘과 생태주의 등 새로운 사상이 지성계에 도래한 시대이자, 신자유주의 질서가 본격적으로 적용되며 ‘위기가 항시적으로 존재하는 사회’가 되었다고 진단한다.
두 책은 닮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90년대>가 당대를 풍미했던 음악·영화·사건 등을 통해 90년대를 제대로 ‘구현’해 보이는 데 치중한다면, <모든 현재의 시작, 1990년대>는 사상과 담론의 경합을 중심으로 90년대의 고민을 살피고 현재와 연결성을 찾는 데 집중한다. 미국의 90년대와 한국의 90년대의 차이점도 존재한다. 하지만 미국인에게 “살아남는 것이 놀랍도록 쉬웠던 시절”이었던 90년대의 풍요는 한국 사회에도 얼마간 적용됐다. ‘신세대’ ‘X세대’ 등 세대담론, 쿨함과 자기중심주의 등 핵심 문화를 공유했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붕괴는 충격을 던지며 우리가 누린 짧은 풍요가 사실은 허약하기 짝이 없는 기반 위에 만들어진 모래성이라는 걸 보여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가 90년대를 회고하는 데 있어 ‘좋았던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저 쿨하면 충분했던 ‘X세대’의 자신감을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는 까마득하지만 참 좋은 시절이었다. 그다지 오래전도 아니지만 말이다.” 클로스터만이 향수를 바탕으로 90년대의 문화를 상세하게 그려낸다면, 윤여일은 좀더 절박하다. “지금으로부터 멀지 않은 시간대이자, 지금의 사회 현실을 이루는 한 가지 지층”으로서 90년대를 소환해 “정신적 행방을 유산화”하는 데 목적을 둔다.
쿨함이 세상의 전부였을 때
클로스터만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90년대의 시작으로, 2001년 9·11테러를 90년대가 끝난 시기로 꼽는다. 미국은 냉전에서 벗어나 경제 호황을 누렸다. 의도적인 무관심과 수수방관, ‘쿨’한 유형의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한 시대였다. 쿨함의 핵심은 베이비 붐 세대가 추구했던 전통적 성공에 대한 무관심이었다. “90년대는 야망과 거리가 먼 시대”였다.
90년대를 상징하는 ‘X세대’라는 말은 1991년 출간된 캐나다 작가 더글러스 코플랜드의 <X세대 : 폭주하는 문화에 관한 이야기>란 소설에서 비롯한다. 당시 29세였던 코플랜드는 자신의 세대와 베이비 붐 세대의 차이에 대해 쓰고자 했다. 1990년 7월 타임지 표지엔 다섯 명의 청년이 제각기 다른 방향을 응시하는 사진이 게재됐다. “지금 20대는 노동, 결혼, 베이비 붐 세대의 가치관에 시큰둥하다. 요즘 젊은이들은 왜 이렇게 회의적일까?”
X세대의 교과서 격인 영화 <청춘 스케치>에서 에단 호크는 말한다. “나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라는 어떤 명령도 따르지 않아.” 속물적 성공은 쿨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졌다. 매진(sell out)이 ‘변절’(sellout)이라는 비하의 의미를 띠게 됐고, 변절은 돈과 같은 피상적 가치를 위해 초심을 버리고 타협한다는 의미였다.
음악 평론으로 미국 작곡가·작가·출판인 협회에서 선정하는 딤스 테일러상을 받기도 했던 클로스터만의 장점은 아무래도 대중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짝인다. 90년대를 풍미했던 록, 힙합 등을 섬세하게 분석한다. 록밴드 너바나의 대중적 성공을 90년대의 주요 특징으로 꼽는다. 앨범 <Nevermind>는 10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펑크 앨범’이 됐다. 80년대 저항음악이었던 펑크록을 너바나는 펑크 느낌이 강하지 않게 담아내 “반문화 이데올로기를 표출하면서도 주류에서 먹힐 만한 이상적 요건을 충족했다”고 말한다. 너바나의 스물일곱 살에 자살한 커트 코베인과 당시 떠오르는 힙합계의 흑인 아이콘으로 스물다섯 살에 살해됐던 투팍 샤크를 나란히 배치한다. ‘진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90년대, 코베인이 그토록 되고 싶지 않았던 타블로이드 스타가 되어 자신의 명성을 감당하기 힘들어 했다면, 갱스터랩을 했던 투팍은 자신의 삶 자체를 폭력적으로 만들었다. 그는 성폭행으로 징역을 살고, 야구 방망이로 사람을 공격하고 강도짓을 하기도 했다.
한국의 X세대는 명백하게 소비주의와 함께 등장했다. 1993년 남성용 화장품브랜드 트윈엑스 광고에 ‘X세대’가 처음 언명됐다. ‘신세대 논쟁’도 벌어졌다. “한국전쟁의 기억이 없고 4·19 혁명과 박정희 독재의 경험도 없고, 경제발전의 과실을 한껏 향유할 수 있는 10대 청소년, 20대 청년”들이 “자신의 욕망을 스스럼없이 드러내 주류 규범을 일탈”한 ‘신세대’로 불렸다. 부유층 자녀들의 향락적 문화를 비판하며 ‘오렌지족’이 호명되기도 했다. X세대의 ‘쿨함’은 허무주의, 왜곡된 개인주의, 주관성의 과잉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미국에 너바나가 있었다면, 한국엔 서태지와 아이들이 있었다. 랩이라는 생소한 장르를 처음 도입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청년들의 새로운 문화적 감수성을 가장 잘 표현한 문화생산물로 주목받았다. 신세대와 X세대의 등장은 한국의 ‘세대론’의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비디오 대여점의 등장은 영화 생태계를 바꿨다. 80년대 북미 전역 영화관에서 상영된 영화가 161편에 불과했을 정도로 “영화는 단일재배 상품 같은 것”이었으며 “상상력이 부족”했다. 비디오 대여점 블록버스터가 텍사스주에 1호점을 개점했을 때 1만 개의 비디오테이프를 취급했다. 비디오 대여점은 “흑인 영화, 촌스러운 슬래셔 영화 등 극장에서 개봉하기엔 상업적 한계가 있었던 영화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펄프 픽션>의 쿠엔틴 타란티노가 주요하게 언급된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일했던 타란티노는 “강렬한 주관”을 갖고 “자신의 독특한 취향을 만족시키는 영화만 고집스럽게 제작함으로써 9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이 되었다.
윤여일도 90년대 범람했던 대중문화지를 분석한다. 80년대 영화잡지 ‘스크린’ ‘로드쇼’에 이어 90년대 ‘키노’ ‘프리미어’ ‘씨네21’이 창간되며 영화잡지의 르네상스를 이뤘다. 윤여일은 이 시기 창간된 문화잡지들이 새로운 문화가 가진 해방성, 다양성을 평가하기도 했지만 소비주의적 상품문화란 비판과 함께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인터넷의 등장과 보편화는 90년대의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클로스터만은 “90년대부터 세상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한 것처럼 보이지만, 통제와 구제가 불능할 만큼 정신없지는 않았다”며 “인간이 기술을 지배할 수 있었던 마지막 시대”였다고 말한다.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
윤여일은 현실 사회주의 실패로 인한 사상계의 혼란과 마르크스주의의 퇴조, 이 가운데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생태주의 등 새로운 담론의 흐름을 짚어낸다. 90년대 중반 페미니즘 이론서와 여성문제 관련 학술서, 대중서가 대거 등장하고 인기를 얻으며 ‘제1차 페미니즘 붐’이 일고 90년대 한국사회의 역동적 변화를 추동하는 핵심 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여/성이론’ ‘이프’ 등이 창간되며 다양한 페미니즘 담론이 소개됐다.
90년대는 반대로 노골적 ‘젠더 갈등’이 시작된 순간이기도 했다. 1999년 12월 헌법재판소의 군가산점 위헌 결정은 “여성과 남성의 성적 대결이 사회적으로 노골화된 첫 번째 사례이자 온라인 공간에서 혐오표현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위헌 판결을 청구한 이화여대 졸업생 다섯 명에 대한 신상털기와 성희롱, 살해 협박 등이 이뤄졌다. 같이 소를 제기한 남성 장애인 학생에겐 이같은 공격이 가해지지 않았다. 윤여일은 “군가산점제 논란이 성 대결로 비화됨으로써 여성과 장애인의 취업권과 기회 균등의 문제는 공론장에서 묻히고 말았다”고 말한다.
‘신세대론’은 90년대와 함께 저물어갔다. 반면 1997년 대선을 앞두고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을 줄인 ‘386세대’의 생명은 ‘486세대, 586세대’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이름을 바꾸고 ‘장기집권’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1990년대 후반 신세대론이 위력을 잃어갈 무렵 30대인 기성세대가 1980년대를 긍정적으로 회상하며 자기 서사를 구축한 것”이다. 10대와 20대에 관한 세대론은 88만원 세대, 삼포세대, N포세대, 잉여세대로 이름을 바꾸며 불안정이 삶의 조건이 된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담는 내용으로 이어졌지만 “386세대는 IMF 사태를 거치며 산업화 세대들이 떠난 자리를 차지하며 세대 간 권력교체에 성공해 이후로 장기집권을 이어갔다”고 말한다.
윤여일은 6월 항쟁을 거쳐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뤄낸 1987년을 90년대의 시작으로 꼽으며 1997년 IMF 사태가 초래한 항시적 위기 상태로 90년대의 끝을 묘사한다. 파산과 구조조정 속에 국가가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불신, 각자도생의 태도가 싹트며 “한국사회가 지닌 희망의 총량은 많이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각자의 불행 속에 갇혀 있기보다는 우리가 지금 어디 있는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함께 머리를 맞대어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 ‘사회적 사유’와 ‘시대적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 윤여일의 결론이다. 그저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로서가 아니라 우리가 지나쳐 온 발자취를 좀 더 구체적으로 깊이 있게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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