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원형극장서 만난 '오페라의 미래'

2023. 8. 1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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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오페라단장이 본 '伊베로나 야외 오페라' 100주년

지금 이탈리아에서는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 100주년 기념작 '아이다(9월 9일까지)'가 한여름 밤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달 16일 오후 9시 석양에 물든 아레나 극장에 들어서자 무대를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손 구조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작품 흐름에 따라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주먹을 쥐었다 펼치기를 반복하며 빛과 함께 무대 변화를 주도하는 장치였다. 레이저 등 수백 개의 조명과 모든 연출 효과가 배가되도록 거울처럼 반사하는 무대 바닥도 환상적이었다. 기존 오페라 연출 형식을 과감히 깬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새로운 무대였다.

오페라 '아이다'는 이집트 부왕 이스마일 파샤가 수에즈 운하 개통을 기념해 세운 카이로 오페라하우스 개관 공연을 위해 이탈리아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1813~1901)에게 위촉한 작품으로 1871년 초연됐다.

그리고 1913년 8월 10일 베로나 출신 테너 조반니 체나텔로와 극장 기획자 오토네 로바토가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오페라 '아이다'를 제작해 큰 성공을 거뒀다. 이후 매해 여름이 되면 야외 오페라 축제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이 2세기 초 건설된 로마시대 원형극장 아레나에서 열리고 있다.

오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대축제인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은 해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베르디, 자코모 푸치니, 조아키노 로시니 등의 작품을 중심으로 오페라 5~7편을 50회 이상 공연하고 있다.

2023년 페스티벌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오페라 '아이다'는 스테파노 포다의 천재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무대였다. 아레나 극장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 1만5000여 명이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배우들 또한 '아이다' 하면 떠오르는 에티오피아·이집트풍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조명에 따라 눈부시게 번쩍이거나 발처럼 늘어뜨린 의상, 정형화되지 않은 화장 등이 과거와 현대를 잇는 무대 연출과 결을 같이했다.

야외무대 특성을 풍부하게 활용한 이번 공연은 화려함과 색다름으로 관객에게 그동안 오페라 무대에서 보지 못했던 시청각적 즐거움을 더해 좀 더 쉽게 접근했을 뿐만 아니라, 오페라 무대가 앞으로 100년 동안 지향해야 할 방향을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연출뿐 아니라 성악가, 지휘자, 무용단, 합창단 등 세계 최고가 모여 100주년 기념 축제의 위엄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지휘자는 이탈리아 거장 마르코 아르밀리아토로 그는 악보를 전부 외워 지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성악가들의 노래 부분까지 모두 외워 편하게 지휘를 이끌어 주는 탁월한 음악가다. 이날의 아이다 역할인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는 나이가 들면서 더 서정적이고 깊어진 목소리와 연기로 무대를 빛냈다.

눈에 띄는 반가운 얼굴도 볼 수 있었다. 이집트 왕으로 출연한 베이스 임채준이었다. 현재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독일 뮌헨 슈타츠오퍼,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등 세계 유수 극장에서 주역으로 활약하는 한국인 성악가다.

임채준은 "무더운 여름에 한 달간 수백 명의 합창단, 연기자, 무용수와 함께 땀을 흘리면서 합을 맞췄다"며 "새벽까지 힘들게 반복 연습한 덕에 좋은 작품이 나온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제작비 400만유로(약 57억8000만원)를 투입한 이 작품은 거대한 무대 장치와 400명의 합창단, 무용단이 등장하는 개선행진곡으로 객석을 압도했다. 무대 바닥에서 수백 명의 사람이 기어올라오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서울에서도 야외 공연의 묘미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곧 다가온다. 오는 9월 8~9일 서울시오페라단은 시민들을 위해 광화문광장에서 야외 오페라 '카르멘'을 처음 선보인다. 노래가 좋아서 무대를 열정으로 꽉 채워줄 시민합창단과 함께한다. 또 '미술과 오페라가 함께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넓은 광화문광장에 그리기 위해 설치미술가인 한원석 작가의 작품으로 오페라 무대를 꾸민다.

베로나의 '아이다' 무대는 힘의 상징인 '주먹 쥔 손'을 활용했지만, 서울시오페라단에서 광화문광장에 올릴 '카르멘'은 작품의 상징 중 하나인 '부채'를 선택해 한원석 작가 작품 위에서 멋지게 공연할 예정이다. 실내 극장에서는 보여주기 어려운, 야외무대에서만 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불쇼'와 '에어리얼 실크 쇼'를 추가해 '카르멘'의 서곡에 맞춰 시민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계획이다.

유모차를 끌고 온 가족, 강아지와 함께 온 애견인들도 볼 수 있도록 광화문광장 곳곳에 영상을 틀 예정이다.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화려하고 뜨거운 '카르멘'의 열정에 젖어 가을의 낭만을 만끽하길 기대해본다.

[박혜진 서울시립오페라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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