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같은 행성, 같은 시대 살게 된 아름다운 확률"

허연 기자(praha@mk.co.kr) 2023. 8. 1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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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로 우리 앞 우주 가져다준 과학자
칼 세이건 (1934~1996)

"광대한 우주, 그리고 무한한 시간, 이 속에서 같은 행성, 같은 시대를 살게 된 놀라운 확률…. 내게 사랑의 느낌으로 다가온 기적 같은 당신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사랑해도 될까요."

시인이나 소설가가 쓴 감미로운 글처럼 보이지만 이 글은 세계적인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의 명저 '코스모스'에 등장하는 말이다. 칼 세이건은 천문학을 인간의 눈높이로 끌어내린 과학계의 혁명아였다.

그의 삶은 비범했다. 그가 처음 천문학에 관심을 가진 건 네 살 때였다. 우크라이나 출신 이주 노동자였던 아버지의 어깨 위에 무등을 탄 세이건은 1939년 뉴욕 세계박람회장에서 '시간 - 미래의 시간'이라는 주제의 박람회를 본다.

세이건은 그날을 "나의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하루였다"고 회고했다.

세이건을 우주라는 광대한 세상으로 인도한 근원에는 외계 생명체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책벌레이자 천재였던 세이건은 외계 생명체를 주제로 한 논문만 300편을 발표했다. 세이건은 한 술 더 떠서 1982년 사이언스지에 지구 외 문명 탐사를 위한 국제적인 노력을 촉구하는 기상천외한 탄원서를 발표한다. 세이건에게 설득되어 탄원서에 서명한 과학자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데이비드 볼티모어, 프랜시스 크릭, 스티븐 제이 굴드, 스티븐 호킹, 프레드 호일, 폴 맥린 등이 서명에 참여했다.

이 사건으로 세이건은 일약 유명인이 된다. 이를 계기로 세이건은 TV 시리즈 '코스모스'의 진행자가 됐다. '코스모스'는 1980년 첫 방송이 나간 이후 전 세계 60개국 5억명이 시청하는 초히트를 기록한다. 촬영 때마다 세이건은 '코스모스'를 '스타워즈'나 '스타트랙'처럼 만들려고 하는 방송국 담당자들을 상대로 과학이라는 본령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했다. 시청자들은 세이건의 안내를 받으며 지구에 국한되어 있던 상상력을 우주로 확장했다.

우리에게 달나라에서 옥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는 설화가 있듯 전 세계 모든 문명권에는 우주에 대한 각기 다른 전설과 설화가 존재한다. 세이건은 이 모든 비과학의 설화들을 날려 보내고, 우리가 10조개 별 중 하나인 '창백하고 푸른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고 있는 우주의 나그네임을 일깨워줬다. 터틀넥 니트에 황갈색 코르덴 재킷을 입고 나와 시적인 언어로 우주의 신비를 들려준 칼 세이건은 당시 할리우드 스타만큼 인기를 누렸다. 터틀넥 프레젠테이션의 원조는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 세이건이었다.

'코스모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우리는 나그네로 시작했으며 나그네로 남아 있다. 인류는 우주의 해안에서 충분한 시간 동안 꿈을 키워왔다. 이제야 비로소 별들을 향해 돛을 올릴 준비를 끝낸 셈이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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