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내 이란 동결자금 60억弗 해제
"양국 핵협상 돌파구 마련" 평가
미국의 경제 제재로 한국에 묶여 있던 이란의 석유 대금 60억 달러가량이 동결 해제된다. 이란에 억류된 미국인 5명을 본국에 송환하는 조건으로 한국 내 이란 자금을 미국이 풀어주기로 하면서다.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커지는 가운데 이뤄진 깜짝 타결로 두 나라의 핵 협상에도 돌파구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나라 역시 대(對)이란 관계의 최대 걸림돌이던 자금 동결 문제를 4년 3개월 만에 매듭짓게 됐다.
10일(현지 시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성명에서 “이란이 부당하게 구금한 미국인 5명을 석방하고 가택 연금했다는 확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석방된 미국인들은 벤처투자자·사업가·환경운동가 등이며 스파이 혐의로 10년형을 각각 받고 복역해왔다.
앞서 뉴욕타임스(NYT)는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과 이란이 상호 수감 중인 상대 국민 5명을 송환하는 데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구체적인 합의 조건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한국에 동결된 이란 석유 대금 중 약 60억 달러를 카타르 중앙은행 계좌로 넘기는 조건이 포함돼 있다고 NYT는 전했다. 이란 매체인 IRNA는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한국에 묶인 60억 달러 외에도 이라크 무역은행에 있는 ‘상당한 규모의 자금’을 포함해 100억 달러 이상의 자금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내 시중은행 두 곳(우리은행·IBK기업은행)에는 이란 석유 대금이 70억 달러가량 묶여있다. 이란 측은 2010년부터 해당 은행에 원화 계좌를 개설하고 우리나라에 수출한 원유 대금을 받아왔지만 2018년 미국이 “이란은 비밀리에 핵 개발을 하고 있다”며 경제 제재를 단행해 이 계좌도 동결됐다.
이란 내 구금자들의 석방은 이번 협정 이행의 첫 단계다. 이란 국영 IRNA통신은 한국에 동결돼 있던 이란 자금도 스위스 은행으로 이체됐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석방된 미국인들이) 출소하긴 했지만 이란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라며 “(미국에 오기까지) 몇 주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합의가 단순한 구금자 교환을 넘어 교착 상태를 보이는 미국과 이란 간 핵 합의의 새로운 돌파구라는 시각도 제기된다.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의 헨리 롬 선임연구원은 “수감자 거래는 올해 말 공식적으로 핵 협상 재개를 노리는 미국과 테헤란이 긴장을 낮추는 핵심 단계”라고 평가했다.
이번 협정 자체가 이미 약속된 핵 협상의 이행 과정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NYT는 이스라엘 고위 국방 관리 두 명을 인용해 “수감자와 자금 동결에 관련된 두 나라의 거래는 올 초 오만에서 도달한 광범위한 합의의 일부”라고 말했다. 한 고위 미군 관리는 “최근 몇 주 동안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이란이 지원하는 민병대의 주둔 미군에 대한 활동이 줄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공화당은 제재국과의 거래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국에서 이란으로 넘어갈 자금의 경우 카타르 정부의 통제 하에 인도주의적 목적으로만 이란이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공화당 측은 이 자금이 이란 군대인 이슬람혁명수비대 손에 들어가 중동 전역의 무장 세력에 자금을 지원하는 데 쓰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공화당은 앞서 2016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이란에 억류된 미국민 4명을 석방하는 과정에서 4억 달러를 이란에 제공한 것을 ‘몸값 지불’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공화당의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은 “(60억 달러 동결 해제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몸값 지불”이라며 “미국인들을 인질로 잡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는 이제 몸값이 올랐다는 것을 안다”고 비판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우리는 모든 제재를 계속 시행할 것이며 이란의 불안정한 활동에 대해 단호하게 반격할 것”이라며 “이번 노력은 이 같은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제재와 이번 활동은 별개의 트랙”이라고 선을 그었다.
우리 정부도 이란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풀린 것은 아니므로 원유 수입, 경협 등의 측면에서 신중한 입장이다. 이란산 원유를 재수입할 길이 열리려면 미국의 대이란 규제 해제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원유 수입 재개 여부는 자금 동결 해제와 별개 사안이라 한국과 이란 간 협의뿐 아니라 미국의 입장 변화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란 현지에 있는 국내 기업도 철수한 상태라 당장 경협을 말하기는 쉽지 않다. 비즈니스 여건 변화로 이란 재진출 등의 얘기도 나오지만 아직은 기대 수준에 가깝다. 외교부 관계자는 “현재 구체적으로 확인해드릴 사항은 없다”며 “우리 정부는 동결 자금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이란 등 유관국과 긴밀히 협의해왔으며 해당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기를 기대한다”고 원론적으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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