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포럼] 문해력과 어휘력 신장의 비법
비법이라는 말을 쓰면 일반적으로 특별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비법에는 허무한 결말도 많습니다. 예전에 엄지, 검지, 중지를 모으고 모르는 단어를 일곱 번 반복하면 단어가 외워진다고 하는 학습법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만약 일곱 번을 소리 내어 읽었는데도 단어가 외워지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졌습니다.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만약 그래도 외워지지 않으면 여덟 번, 아홉 번 하라는 것입니다. 허무하죠. 비법이 의외로 허무할 때도 있습니다. 허무하지만 정답입니다.
서울의 길을 잘 아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지도를 구해서 자꾸 들여다보는 것도 방법이 될 겁니다. 하지만 길을 잘 아는 방법에 왕도는 없습니다. 왕만 다니는 길은 쉬운 길, 넓은 길이겠죠. 지름길만 알아서 골목길 사정까지 알기는 어려운 겁니다.
따라서 길 찾기에 왕도, 첩경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구석구석 다녀보고, 추억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길을 잘 알고, 얽힌 이야기도 술술 풀어낼 수 있습니다. 샛길이 오히려 왕도인 셈입니다.
문해력과 어휘력이 점점 부족해지는 세상입니다. 글을 읽어도 이해를 못 하고, 어휘를 들어도 해석이 안 됩니다. 외래어나 외국어가 아니라 한국어가 이해가 안 됩니다. 하긴 문해력이라는 말과 어휘력이라는 말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문해력이 문제라고 해서 잘 들어보면 어휘력의 문제인 경우도 많습니다. 어휘를 이해는 하는데, 쓰지는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아는 어휘마저도 쓰지 않으니 어휘력이 늘어날 리 없습니다.
저는 어휘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최근에 제 어휘력에 심한 회의가 들었습니다. 모르는 어휘가 너무도 많았던 겁니다. 매일 어휘에 관한 책을 읽고, 쓰면서도 어휘력은 늘 부족했던 겁니다. 이런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계기는 아름다운 삶을 사시는 분이 쓰신 농사에 대한 책의 교정을 보면서 농사에 관한 어휘가 너무나 딸린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농사를 모르니 농사 어휘를 알 리 없습니다. 이는 고기잡이도 마찬가지겠죠. 숲에 가도 모르는 어휘 천지입니다. 공장에 가면 어떨까요? 어휘력을 기르는 제일 좋은 방법, 즉 비법은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겁니다. 나와 다른 사람, 나와 다른 일을 하는 사람, 나와 다른 곳에 사는 사람을 만나서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 어휘력을 늘리는 첫걸음입니다. 어휘가 늘면서 관계도 넓어지고, 이해는 깊어집니다.
문해력은 좀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글을 읽지 않는 이에게 문해력은 정말 필요할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집니다. 문해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모두 글 읽기를 즐기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문해력은 글을 읽는 사람에게 필요한 능력입니다. 이 사실을 우선 인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글을 읽는 사람이 문해력을 높이려면 당연히 글을 많이 읽어야 하고, 그중에서도 다양한 글을 읽어야 합니다.
비슷한 종류의 글, 비슷한 사람의 글은 이해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연령이 다른 사람, 성별이 다른 사람, 이념이 다른 사람의 글은 이해가 어렵습니다. 장르를 풀어내는 방식이 다르고, 사용하는 어휘가 다르고, 주장의 근거가 다릅니다. 읽어도 이해가 안 되고, 답답한 경우도 많습니다.
문해력을 늘리는 지름길은 다양한 생각을 접하고, 다양한 글을 읽는 겁니다. 진보는 보수를 읽고, 보수는 진보를 읽어야 합니다. 기성세대는 청년의 글을 읽고, 청년은 옛글을 읽어야 합니다. 종교를 넘어, 이념을 넘어 글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문해력이 자랍니다. 어휘력은 삶이고 경험입니다. 그리고 문해력은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넓이가 됩니다. 그게 어휘력과 문해력을 신장시켜야 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유를 알고 원인을 알면 목표 지점이 보이고, 가는 길이 보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비법도 찾을 수 있습니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
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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