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전셋값 양천·서대문 '들썩'… 강동·성동은 '차분'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A씨는 요즘 집 때문에 고민이 많다. 내년 4월 전세 만기가 돌아오는 A씨는 당초 올해 말에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예상보다 빠르게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고민이 커졌다. 하지만 전셋값 역시 상승하고 있어 전세로 다시 눌러앉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A씨처럼 고민하는 사람들은 내년 지역별 입주 물량을 살펴보면 감을 잡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내년에는 서울 지역 입주 물량이 큰 폭으로 줄어드는 가운데 구별 편차도 한층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입주 물량은 실수요와 직결된다. 이 때문에 주택 임대차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매매 시장까지 자극할 수 있다. 공급 물량이 올해보다 대폭 감소하는 강남·마포·은평구가 요주의 지역이다. 반면 강북·성동·송파구는 올해보다 입주 물량이 크게 늘어 대조된다.
부동산 플랫폼 업체 '직방'에 따르면 2024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만772가구(8월 4일 기준) 규모다. 올해 입주 물량 3만346가구보다 64%(1만9574가구) 줄어든 수준이다. 최근 5년간 서울 연평균 입주 물량(4만5000가구, 2018~2022년)과 비교하면 76%나 감소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서울은 못해도 2만가구 정도는 입주가 이뤄져야 하는데 내년에는 이것보다 더 줄어든다"며 "지금은 전세 시장이 안정적인데 내년에는 상황이 어떨지 모른다"고 밝혔다.
입주 물량은 아파트 공사 진행 속도에 맞춰 반영되는 경향이 있다. 3~4년 후를 예측하는 분양 물량과 달리 시차가 1년 정도이기 때문에 지금 전망치에서 큰 폭으로 변동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올해 상반기 수도권 주택 임대차 시장의 키워드는 '역전세'였다. 2020년 임대차법(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이 도입된 후 급등했던 전세가격이 계약 갱신 시점에 금리 상승 등 환경과 맞물리며 큰 폭으로 하락했다. 전세사기 공포로 빌라 전세 시장이 붕괴되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정부가 전세보증금 반환 목적 대출에 대해서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풀어주는 등 규제를 완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년 전세 시장은 역전세와 거리가 먼 듯하다. 오히려 상승 압력이 강해져 불안한 모습이 나타나는 곳도 예측된다.
실제로 매일경제신문이 직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내년 서울 25개 구 가운데 입주 물량이 '0'인 곳이 15개 구나 됐다.
구체적으로 따지면 강남·강서·광진·금천·노원·도봉·동대문·동작·마포·서대문·양천·용산·종로·중구·중랑구다. 올해 입주 물량이 없는 곳이 8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폭 늘어나는 셈이다. 입주 물량이 없는 곳은 매물 자체가 적다는 뜻이어서 임대차 시장에는 바로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올해도 입주 물량이 적어 전세가격이 급락하지 않았는데, 내년에도 물량이 없는 곳은 주의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꽉 누른 냄비에 물이 끓을수록 압력이 높아지는 것처럼 전세가격 상승 압박이 다른 곳보다 심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내년 입주 물량이 없는 서울 자치구 가운데 이 같은 조건을 적용하면 양천구, 서대문구, 종로구, 중랑구 등이 대상에 포함된다. 2024년에 입주 물량이 있어도 관악구(0가구→75가구), 구로구(0가구→284가구) 등 물량이 소폭에 그치는 지역도 전세가격 상승 압력이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올해 꽤 많은 새 아파트가 공급됐던 서울 자치구는 어떨까. 매일경제신문이 조사한 결과 이들 지역도 내년에는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지역이 강남구다. 강남구에는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6702가구·개포동) 등 올해 1만가구가 입주한다. 실제로 개포동 일대는 지난 3월 개포자이프레지던스 입주와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등이 순차적으로 입주하며 전세가격이 약세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내년에는 입주 물량이 '0'이다. 2024년 하반기로 갈수록 전세 하향 조정이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서초구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달 말 래미안원베일리(2990가구)를 비롯해 올해 3320가구 입주가 이뤄지는데 현재 반포동을 비롯한 서초구 전세가격은 약세다. 아실에 따르면 래미안원베일리는 지난 8일 기준 2802가구가 매물로 나왔고, 이 가운데 전세 매물은 절반이 넘는 1448가구 수준이다. 하지만 내년에는 입주 단지가 래미안원펜타스(641가구) 한 곳뿐이다. 반포동 A공인중개업소는 "지금 전세가격이 낮아지고 있지만 급락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며 "내년에 입주 물량이 확 줄어들 것이라는 소문이 하방 지지선을 받치는 듯하다"고 말했다. 강남권 진입을 노리는 사람이라면 지금 전세가격만 보지 말고 앞으로 추이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올해 서울에서 강남권을 제외하고 입주가 몰렸던 지역의 경우 내년 역전세 위험은 많이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은평구 입주 물량은 3359가구다. DMCSK뷰아이파크포레(1466가구), DMC파인시티자이(1223가구) 등 대규모 단지가 입주하면서 서울에서 강남구에 이어 두 번째로 입주 물량이 많았다.
은평구의 내년 입주 물량은 752가구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은평구의 경우 내년 입주 단지는 센트레빌아스테리움시그니처 한 곳에 불과하다.
강서·광진·노원·동대문·동작·마포구 등에는 올해 1000가구 이상이 입주했지만 내년 입주 물량이 없는 지역도 전셋값이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동대문구는 올해 청량리역롯데캐슬SKY-L65(1425가구), 청량리역한양수자인그라시엘(1152가구) 등 청량리역 개발에 맞춰 대규모 입주가 이뤄지면서 2797가구 입주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동작구 역시 올해 1772가구 대규모 단지인 흑석리버파크자이가 입주했지만 내년에는 입주 물량을 찾기 어렵다.
이 같은 추세가 반영된 듯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지난 5월 셋째 주 조사에서 상승 전환한 이후 11주 연속 상승(9일 기준) 중이다. 지난달 말 조사에서는 2021년 12월 이후 85주 만에 서울 25개 구에서 전세가격이 올랐다. 함 랩장은 "서울 입주 물량이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전세가격 상승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을 지지하는 부동산 시장 특성상 입주 물량이 줄어들면 전세뿐만 아니라 매매가격 상승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내년에 올해보다 입주 물량이 늘어나면서 전셋값 상승 압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곳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 지역의 일반적인 모습과 다른 형태를 띨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올해 32가구 입주에 그쳤던 강북구는 내년 1045가구 입주가 예정돼 있다. 북서울자이폴라리스가 미아동에서 내년 8월 입주가 이뤄진다. 강동구(1038가구→3927가구), 성동구(0가구→1353가구), 송파구(66가구→1945가구)도 올해보다 내년 입주 물량이 많다.
경기도는 올해와 내년 입주 물량에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실에 따르면 올해 경기도 입주 물량은 9만6549가구다. 내년 물량(9만4126가구)과 큰 차이가 없다. 실제로 과천시(1491가구→1380가구) 광명시(1187가구→1051가구) 등은 올해와 내년 입주 물량에 차이가 별로 없다. 전세가격이 서울보다는 안정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하지만 경기도도 시·군·구별로 따지면 국지적인 상승 압박을 보이는 지역이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 성남시(6216가구→1123가구) 부천시(4102가구→856가구) 남양주시(1458가구→350가구) 등은 2024년 입주 물량이 올해보다 큰 폭으로 줄어든다.
[손동우 부동산전문기자 /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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