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며칠 전 인터뷰서 기자까지 “살아남으라”고 염려했던 에콰도르 대선 후보[시스루 피플]

최서은 기자 2023. 8. 1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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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 대선에 출마한 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 후보. AP연합뉴스

“당신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살아남는 것이다.”

에콰도르 대선 후보였던 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 의원(59)이 암살되기 불과 며칠 전 그와 인터뷰를 진행했던 기자 카를로스 베라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야비센시오 후보는 전직 언론인이자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부정부패·마약 카르텔 근절을 위해 수십년 간 에콰도르의 조직 범죄와 싸워왔다. 그는 “에콰도르 빈곤의 가장 큰 문제는 부패”라며 “우리는 돈이 부족하지 않다. 도둑이 많을 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살해 협박과 공격을 받아왔다. 2014년에는 자택에서 괴한의 습격을 당했고, 최근에도 마약 밀매 갱단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았다고 중남미 매체 인포바에 등은 전했다.

하지만 비야비센시오 후보는 지난 7월 이러한 위협이 두렵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나는 지난 20년 동안 이런 구조에 맞서 싸워왔다”며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나는 이런 것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베라 기자와의 인터뷰 후 며칠 만에 암살을 당했다. 지난 9일(현지시간) 수도 키토에서 선거 유세를 마치고 이동하던 중 괴한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대선을 불과 열흘 앞둔 시점이었다.

에콰도르에서 마약 카르텔 근절을 약속한 후보가 대통령이 되려면, 당선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바로 살아남는 것이란 사실을 그의 죽음이 다시 한번 입증한 것이다.

권력, 기업, 카르텔에 굴하지 않고 싸워온 언론인

비야비센시오 후보는 18세 때 노동 이슈에 초점을 맞춘 신문을 창간했고, 이후 국영 에너지 기업 페트로에콰도르에서 일하며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정치 입문 전 기자로 활동하며 권력 부패와 조직범죄, 마약카르텔을 비판하는 보도를 해왔다. 특히 라파엘 코레아 전 대통령의 뇌물 스캔들을 폭로한 그의 보도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비야비센시오 후보는 코레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징역 18개월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는 아마존 원주민 구역으로 도망쳐 몇달 간 숨어서 지내야 했는데, 그는 이 기간 동안에도 열대우림에서 260건의 기사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17년 페루로 망명을 떠났다가 다음해 에콰도르로 귀국했다.

에콰도르의 정치분석가 카롤리나 아빌라는 비야비센시오 후보에 대해 “그는 항상 권력과 대결했다”고 말했다. 국제투명성기구 에콰도르 지부의 마우리시오 알라르콘 살바도르 역시 “그는 에콰도르 사회운동 활동가들 사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며 “그는 항상 권력자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각종 권력 및 기업의 부패 범죄를 보도하며 인기를 얻은 비야비센시오 후보는 2021년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오는 20일 치러질 에콰도르 조기 대선에 반부패, 범죄 척결, 국민 안전 보장 등을 내세우며 출마했다.

용의자는 콜롬비아인…마약 카르텔 연관 가능성
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 대통령 후보 암살과 관련해 체포된 콜롬비아 남성 6명. AFP연합뉴스

비야비센시오 후보를 암살한 혐의로 붙잡힌 6명의 콜롬비아인들은 마약 카르텔과 연관돼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외신들은 이번 사건이 콜롬비아인 26명과 미국인 2명이 용의자로 알려진 2021년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 암살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고 보도했다.

비야비센시오 후보의 여동생 알렉산드라 비야비센시오는 이번 공격이 “그를 침묵시키려는 음모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기예르모 라소 에콰도르 대통령은 3일 간 국가애도기간을 공표하고, 60일 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에콰도르에서는 지난달에도 아구스틴 인트리아고 만타 시장(38)이 괴한의 총격으로 암살되는 등 치안 문제가 악화되고 있다.

한편 멕시코, 페루, 콜롬비아 등 중남미 국가 정부는 이번 사건을 규탄하고 에콰도르 정부와 국민에 연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과 유럽연합에서도 고인에 대한 추모와 유족에 대한 위로의 뜻을 전했다. 미주기구(OAS)는 이번 사안과 관련한 긴급 조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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