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콩팥 치료하고 살도 뺀다…당뇨병 치료제의 '무한 변신'

박정렬 기자 2023. 8. 1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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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 약을 먹으면 심장과 콩팥이 치료되고 살도 빠진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성 기능을 되찾아주는 비아그라(협심증→발기부전)나 탈모 환자의 희망인 프로페시아(전립선비대증→탈모)처럼 당뇨약도 다른 질병으로 적응증을 확장하며 '무한 변신'하고 있다. 이에 맞춰 당뇨병 치료의 패러다임도 체중 감량과 합병증을 통합 관리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모습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적응증을 추가하고 있는 당뇨약은 SGLT-2(나트륨-포도당 공동수송체) 억제제와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 유사체 등 두 가지다. 전자는 아스트라제네카의 '포시가'가 후자는 노보노디스크의 '삭센다'가 대표적이다. 포시가는 당뇨약으로 개발됐다가 만성심부전, 만성 콩팥병 치료제로 적응증을 확대했다. 삭센다는 비만약의 대명사가 된 지 오래다.

포시가를 포함한 SGLT-2 억제제는 콩팥에 작용해 포도당의 체내 재흡수를 억제한다. SGLT-2라는 수용체는 콩팥의 근위 세뇨관(신장을 이루는 가늘고 긴 관)에서 사구체 여과액으로부터 포도당이 몸에 흡수되는 걸 돕는다. SGLT-2 '억제제'는 그 이름처럼 이 과정을 방해해 혈중 포도당 농도를 낮추는 성분이다. 몸에 흡수되지 않은 포도당은 소변을 통해 빠져나가는데 하루 60~80g이나 될 만큼 상당한 양이다.


콩팥은 노폐물을 배설하고 체내 항상성을 유지하는 우리 몸의 '필터'다. 콩팥에 문제가 생기면 체내 노폐물이 쌓여 혈압이 오르고 심혈관질환 위험이 커진다. 빈혈을 비롯해 골다공증과 신경 손상이 동반될 수도 있다. 콩팥 기능은 나이가 들수록 떨어지는데 이전에는 압력을 낮추는 치료 외에는 특별한 해결책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 SGLT-2 억제제를 사용한 당뇨병 환자의 사구체 여과율(eGFR) 수치가 개선되고 말기콩팥병의 발병률이 낮아질 뿐만 아니라 콩팥 질환으로 인한 사망 위험을 낮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SGLT-2 억제제가 사구체 내부 압력을 낮추고, 혈관 수축을 유발하는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을 억제해 염증을 억제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당뇨병이 없는 만성 콩팥병 환자에게도 똑같은 효과가 나타났고 이런 연구 결과를 발판 삼아 2021년, 포시가는 당뇨병 동반 유무와 관계없이 만성 콩팥병 환자를 위한 치료제로 허가받아 현재 치료에 활용되고 있다.

이 밖에도 SGLT-2 억제제는 당뇨병과 무관하게 심장 기능이 떨어진 만성심부전을 치료한다는 점이 입증되기도 했다. 포시가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3년 전 만성심부전 치료제로 이미 허가받은 상태다. 심장과 콩팥(신장)은 혈액 순환 등을 통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부부'와 같은 장기로 한쪽이 망가지면 다른 쪽도 고장 나기 쉬워 '심신 증후군'이란 용어도 존재한다. 포시가를 활용해 콩팥 건강이 회복하면 덩달아 심장까지 강해지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코로나19(COVID-19) 팬데믹 이후 비만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주목받은 당뇨병 치료제도 있다. 인슐린의 분비량을 늘리는 체내 호르몬(GLP-1)과 유사한 작용을 하는 GLP-1 유사체가 그것이다. GLP-1은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한편 위에서 소장으로 음식물이 넘어가는 시간을 늘려 포만감을 유발하고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식욕을 억제한다. 현재 비만 치료제로 사용되는 GLP-1 유사체는 처음에는 당뇨병 치료제로 쓰였는데 임상시험에서 살이 빠지는 효과가 나타나자 제약사가 용량을 낮춰 다이어트고 목적으로 재출시했다. 당뇨병과 비만 치료에 필요한 용량이 각각 달라 같은 제품을 쓸 수는 없지만, 성분이 동일하다.

대표적인 GLP-1 유사체로는 삭센다와 위고비가 있다. 삭센다는 매일 같은 시간에 직접 주사를 놔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출시 당시 전 세계적으로 품귀 현상이 일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위고비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최고경영자)가 13㎏을 감량한 다이어트 비결로 지목하면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최근에는 두 약을 만든 제약사인 노보노디스크가 비만이지만 당뇨병은 없는 45세 이상 성인 1만7604명을 대상으로 위고비를 복용할 때 심근경색·뇌졸중 등 심혈관 질환 발생률이 20% 줄었다는 임상 3상 연구 결과를 공개해 추가 적응증 확대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SGLT-2 억제제와 GLP-1 유사체의 치료 영역 확대로 혈당 강하가 최우선 목표였던 당뇨병 치료의 패러다임은 콩팥·심장·비만을 아우르는 통합 관리로 변모하고 있다. 미국당뇨병학회가 발표한 2023년 당뇨병 치료지침 알고리듬에서는 당뇨병의 치료 목표를 심장과 콩팥 질환의 위험감소, 혈당과 체중 조절 두 갈래로 제시하며 이에 따른 약물 선택을 권고한다.

이원영 강북삼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당뇨병은 심근경색증, 심부전, 신장질환과 같은 다양한 합병증을 동반하는데 SGLT-2 억제제 등 당뇨병 치료제는 혈당 강하 효과 이외에도 이들 합병증의 예방·치료에 우수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며 "당뇨병 환자는 간단한 검사로 신장질환 유무 등 합병증을 조기에 파악할 수 있는 만큼 생활 습관 개선과 함께 적극적인 진단과 치료를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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