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수감자 교환협상 타결…“한국 내 동결자금 해제”

김서영 기자 2023. 8. 11. 14:3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2년 7월 미국 워싱턴에서 한 여성이 이란에 수감된 시아막 나마지(왼쪽)의 벽화 앞을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이 해외에 동결된 이란 자금 해제를 전제로 수감자를 맞교환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한국 은행 계좌에 4년여 간 동결돼 있던 이란의 석유 수출 대금 약 60억달러(약 8조원)도 이란으로 가게 됐다. 올 연말 재개될 것으로 보이는 이란 핵합의 복원 협상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것은 물론, 한국과 이란 관계의 최대 걸림돌이 돼 온 동결 자금 문제가 해결되면서 양국 관계에도 청신호가 켜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AP통신 등에 따르면,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이날 성명을 내 “이란에 부당하게 구금된 미국인 5명이 석방돼 가택연금으로 전환됐다고 이란 정부가 밝혔다”고 전했다. 가택 연금으로 전환된 미국인은 5명은 이란에서 스파이 혐의 등으로 체포돼 처우가 가혹한 것으로 알려진 테헤란 에빈교도소에 수감돼 있었다.

NSC는 “최종 석방을 위한 협상이 계속 진행 중”이라며 구체적인 협상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했지만, 이란 국영 통신인 IRNA는 “미국 내 수감자 5명과 이란 내 수감자 5명이 맞교환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은 또 미국과의 이번 합의 내용에 대이란 제재의 결과로 한국, 이라크, 유럽 등에 묶여 있던 이란 자금의 동결 해제가 포함돼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한국의 우리은행 및 IBK기업은행에는 약 70억달러(약 9조2000억원) 상당의 이란 석유 결제 대금이 4년 3개월 동안 동결돼 있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 정부가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탈퇴하고 대이란 제재를 복원하면서 한국 내 이란의 석유 수출 대금 계좌의 거래가 2019년 5월 2일부터 중단된 데 따른 것이다.

11일 IRNA는 이번 협상 타결로 한국에 동결된 60억달러(약 8조원)에 대한 접근권을 되찾게 됐으며, 현재 한국에 있던 자금이 스위스 은행으로 이체돼 카타르 중앙은행의 이란 계좌로 송금될 준비가 됐다고 전했다. 이란은 동결 해제된 자금을 인도주의적 목적과 의약품 등에만 사용할 수 있다고 블룸버그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란과 미국이 10일(현지시간) 동결 자금 해제를 전제로 수감자를 맞교환하기로 합의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현재 가택연금 상태로 전환된 미국인들은 이란의 카타르 계좌에 동결됐던 자금이 입금되고 나면 카타르로 출국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절차가 복잡하고 거액인만큼 4~6주 정도 소요되리란 전망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협상에 카타르를 비롯해 스위스, 오만, 아랍에미리트, 이라크 등이 중간다리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미 공화당은 이란이 수감자 맞교환을 돈벌이용 내지는 협상 카드로 이용하고 있다면서 이번 합의에 반발했다. 공화당 대권 후보를 노리는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은 “이란이 러시아에 제공할 드론 생산 비용 등 ‘테러 자금’을 제공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 상원 외교위 소속 제임스 리시 공화당 의원 역시 “자금 동결 해제가 인질잡기를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이란과의 수감자 교환 협상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이 같은 비판에 대해 “대이란 제재를 계속 시행할 것이며 이란의 불안정한 활동에도 단호히 반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수감자 교환을 통해 바이든 행정부의 숙원인 이란 핵 억제를 비롯해 양국의 외교 협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특히 이번 협상은 지난달 5일 이란의 미국 유조선 나포 시도 후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에 병력을 대거 배치하는 등 양국간 갈등의 불씨가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타결된 것이라 의미가 크다고 NYT는 전했다. 양국의 공식 확인은 없지만, 이번 협상에서 ‘이란 핵 프로그램 제한’, ‘친이란 민병대의 미군 공격 중단’ 등의 사안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의 헨리 롬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올해 말까지 이란을 핵협상에 복귀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수감자 교환은 그 핵심 단계”라고 말했다.

다만 내년 치러질 미국 대선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 내에서도 이란의 권위주의 정부에 경제적·정치적 도움을 제공하는 일에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롬 연구원은 “(핵협상의) 정치적 휘발성을 고려할 때 바이든 행정부로서도 대선을 앞두고 새 핵 협상을 체결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이란이 ‘외부의 적’으로서 여전히 미국의 존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수감자 교환이 큰 의미를 갖는 신호는 아니라는 경계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카림 사자드푸르 카네기평화재단 연구원은 “이란이 경제적 필요에 따라 인질극과 핵무기 전략을 중단할 순 있겠지만, 미국에 대한 적대감은 혁명 강국으로서의 이란을 구성하는 핵심적 정체성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NYT에 말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