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DNA 가진 아이" 편지 뒤엔 '제2의 안아키'?…상담료 200만원 연구소
초등학교 자녀의 담임교사에게 갑질과 악성 민원을 지속하면서 직위해제까지 요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교육부 5급 사무관이 교사에게 보낸 '내 자녀는 왕의 DNA를 가졌다' 등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 담긴 편지의 출처가 언어장애·자폐 무약물 치료·교육을 표방한 한 아동 뇌 연구소인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2013년 논란이 됐던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가 떠오른다는 얘기가 나온다.
11일 머니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해당 사무관이 자녀의 담임교사에게 매년 학기 초 보낸 것으로 알려진 편지는 대전과 서울 마포구에 소재지를 둔 사설 A연구소에서 안내한 일종의 미션지다.
이 편지에는 '왕의 DNA를 가진 아이니 왕자에게 말하듯 듣기 좋게 돌려 말해도 다 알아듣습니다' '하지마, 안 돼, 그만 등 제지하는 말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또래와 갈등이 생겼을 때 철저히 편 들어 주세요' '고개 숙여 인사를 강요하지 않도록 합시다' 등 9가지 요구가 담겼다.
이 연구소와 연구소가 운영 중인 인터넷카페에서는 주의력이 부족하거나 과격한 행동을 하는 등 ADHD(주의력결핍행동장애) 판정을 받은 아이들을 '극우뇌' 형으로 분류하고 양육법을 소개한다. 편지에 담긴 내용대로 '에너지가 많은 극우뇌형 아이들을 순한 양 같은 좌뇌형 아이들에게 하듯 강압적으로 제어하면 뇌가 손상될 수 있으니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는 식이다.
ADHD나 발달장애 환자는 우뇌가 극도로 발달했기 때문에 좌뇌를 보강해야 한다는 내용도 나온다. 좌뇌를 보강해주면 정리 정돈을 못하거나 사회성이 부족한 점 등이 일정 부분 개선되고 약을 먹이지 않더라도 약을 먹인 상태보다 더 좋아진다는 주장이다.
2019년 기준 ADHD 소아 환자의 '좌뇌 보강' 수업 비용은 한 달 기준으로 취학 전 180만원 안팎, 초 5~6학년 210만원 안팎이라고 명시돼 있다. 해당 카페에는 현재 5300여명의 회원이 가입했다.
A연구소는 2013년 설립돼 서울 마포구에서 운영되다 대전으로 소재지를 옮겼다. 연구소장인 김모씨는 2017년부터 ADHD(주의력결핍행동장애), 자폐 관련 책을 꾸준히 냈다. 김씨는 책에서 모차르트, 베토벤, 고흐 등 역사적 인물뿐 아니라 유시민 작가, 스티브 잡스 애플 전 CEO(최고경영자), 축구 전 국가대표 이천수 등을 극우뇌형으로 꼽고 제대로 된 양육 방식 덕에 각각의 영역에서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해당 책의 저자 설명에 따르면 김씨는 '서울대학' 출신으로 소개됐다. 서울대학교인지 서울권 대학인지 명확치 않다.
김씨가 2021년 1월 특허로 등록했다고 주장하는 '3급 지적장애, 언어장애 및 지체 장애를 가진 유소년의 신경학적 치료 방법 및 시스템'에는 3대 정신과적 장애를 약물 사용 없이 6~8개월 안에 치료할 수 있다는 내용도 나온다. 김모씨가 소개하는 치료법은 △고개를 푹 숙이는 인사는 자존감을 하락시켜 뇌 기능 저하로 연결되고 신경전달물질 생성을 억제하므로 강요하지 않기 △'갑'의 입지를 느껴야 유익한 신경전달물질이 생산되므로 내려다보지 않기 등 '왕의 DNA' 편지와 유사하다.
A연구소에서 상담받은 이들 중에서는 '아이에게 핸드폰 게임을 시키라고 하고 밀가루를 많이 먹여도 된다고 해서 먹였더니 예전보다 더 산만해졌고 몇 년 동안 밥을 안 먹고 라면, 과자, 젤리만 먹는데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하는 이도 나왔다.
A연구소의 이 같은 치료법에 대해 의료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잖다. 한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소아 ADHD의 경우 가장 확실한 치료법은 약물치료"라며 "전문의와 상담해 복용량과 기간을 살피면서 꾸준히 치료하면 상당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A연구소의 방식이 2013년 논란이 됐던 안아키 사태와 비슷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안아키는 아동학대 논란까지 불렀던 극단적인 자연주의 치료법으로 발생한 논란이다. 아토피를 앓는 아이에게 피부를 마음대로 긁도록 놔둔 뒤 피부를 햇빛에 쪼여 소독을 하게 한다거나 설사를 하는 아이에게 숯가루를 먹이는 등의 치료법을 공유했다가 부작용을 호소하는 회원들이 생기며 파장이 일었다.
치료법 상당수가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거나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지만 안아키 요법을 찾은 상당수가 천식, 아토피 등을 앓는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로 병원 치료에 지쳐 빠져들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컸다.
머니투데이는 이번 논란과 관련해 A연구소에 입장을 문의했지만 받지 못했다.
이번 사건은 교육부 5급 사무관이 지난해 11월 3학년 자녀의 담임교사 B씨를 아동학대로 신고하고 직위해제를 요구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드러났다. B씨는 올해 5월 대전지방검찰청으로부터 아동학대와 관련해 '혐의없음'을 처분받은 뒤 지난 6월 복직했지만 상당기간 정신과 상담을 받고 우울 장애로 약물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는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해당 사무관의 행위를 명백한 교권 침해로 판단하고 서면 사과와 재발 방지 서약 작성 처분을 내렸지만 이 사무관은 교권보호위 처분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대전시교육청은 전날 교육부 요청으로 이날 해당 사무관에게 직위해제를 통보했다.
심재현 기자 urme@mt.co.kr 정현수 기자 gustn9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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