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가 키운 아프리카 軍엘리트들의 반전...쿠데타 주도 벌써 4번째

이철민 국제 전문기자 2023. 8. 1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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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테러 집단 막자” 집중 훈련시켜
지난달 니제르 쿠데타 주동자도
미국과 30년 對테러 작전 해 온 파트너

미국이 서(西)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이슬람 테러집단을 막으려고 집중적으로 군대를 훈련한 이 지역 국가들의 엘리트 군인들이 정작 자국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뒤엎는 사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미국은 사하라 사막 이남의 반(半)건조 지대인 사헬(Sahel) 지역을 거점으로 한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ㆍIslamic State), 보카하람과 같은 이슬람 테러집단의 확산을 막기 위해, 지난 30년 간 이 지역의 말리ㆍ부르키나 파소ㆍ나이지리아ㆍ니제르ㆍ기니 등에 미군 특수부대를 파병하고 현지 군인들을 상대로 대(對)테러 훈련을 해왔다. 미국은 현지의 엘리트 지휘관들에 대해선 미 육사와 국방대학원 등에 유학시켜, 특수전 교육까지 시켰다.

그런데 말리(2021년 5월)ㆍ기니(2021년 9월)ㆍ부르키나 파소(2022년 9월)에 이어, 지난 7월 26일 또 다시 니제르에서 또다시 이렇게 미군이 양성해 온 현지 군 엘리트들이 민간정부를 전복시키는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74달러(약 75만6000원)인 니제르는 세계 8위의 최빈국이지만, 사헬ㆍ서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이슬람 테러집단 소탕 작전에선 핵심적인 파트너다.

미국이 대테러에 활용하려고 애써 키운 현지 군인들이 자국 정부에 등을 돌리고, 그래서 미국이 군사 원조를 끊으면 군사 정부는 양민 학살과 인권 유린도 서슴지 않는 러시아의 와그너 용병 집단을 끌어들여 치안을 확보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한편, 나이지리아가 주도하는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에 속한 11개국 정상들은 10일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에서 긴급 회의를 갖고, 니제르의 헌정(憲政) 질서 회복을 위한 군 ‘배치(deployment)’를 결의했다. 나이지리아는 인구 2억2000만 명에 14만 명의 병력을 보유한 서아프리카 지역의 강국으로, 이 병력은 이 지역 나머지 국가들의 전체 병력 수보다 많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8일 “ECOWAS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가 요구한 니제르의 민정 회복 데드라인인 지난 6일, 쿠데타를 지지하는 니제르인들이 수도 니아메의 한 운동장에 모여서 환호하고 있다. 많은 지지자들은 흰색ㆍ빨간색ㆍ파란색의 러시아 국기와 쿠데타 주도 인물들의 사진을 흔들었다. /AFP 연합뉴스

그러나 앞서 쿠데타로 들어선 말리와 부르키나 파소의 군사 정부들은 ECOWAS이 니제르에 개입하면 ‘선전포고’로 간주해 니제르 쿠데타 세력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나라의 군사 정부는 와그너 그룹과도 연결돼 있다. 자칫하면 서아프리카 전체가 외부 세력까지 낀 무력 분쟁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국이 특수전 교육시키고 30년 공들였더니, 쿠데타에 가담

니제르의 대통령 경호실장이었던 오마르 치아니 장군은 지난달 26일 쿠데타를 일으켜,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과 가족을 가택연금하고 자신을 국가원수로 내세웠다. 바줌은 2021년 선거에서 승리해 대통령이 됐다. 치아니는 바줌 대통령이 자신을 경질할 가능성이 있자, 쿠데타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치아니도 한때 미국에서 군사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이 가장 뼈아프게 여기는 것은 이번 쿠데타로 총참모장이 된 무사 살라우 바무 소장도 쿠데타 주모자 중 한 명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니제르에서 가장 공들인 사람이 바줌 대통령과 바무 장군이었다. 바무는 쿠데타 직전까지 니제르의 특수부대를 이끌며, 미군과 연합해 대테러 작전을 펼쳤다. 쿠데타 이후에는 헌정 질서의 회복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든 행정부와 쿠데타 세력간 협상 창구가 됐다. 그러나 지난 7일 빅토리아 눌런드 국무부 부(副)장관과 바무 장군 간 2시간 협상은 아무 진전 없이 끝났다. 니제르 군사 정부는 눌런드 부장관의 바줌 대통령 면회 요청도 거부했다.

대테러 작전을 협의하기 위해, 6월12일 니제르의 101 공군기지에서 만난 미 육군의 특수전 사령관인 조너선 브래가 준장과 니제르의 특수전 사령관인 무사 바무 소장(왼쪽)이 악수하고 있다. 바무 소장은 7월26일의 쿠데타에 가담해 군참모장으로 승진했고, 민정 회복을 요구하는 미국과의 협상 창구가 됐다. /AP 연합뉴스

바무 장군은 미국의 주선으로, 워싱턴 DC의 국방대학교에서 석사를 받았고, 미 특수전사령부가 있는 플로리다주 탬파의 합동특수작전대학에서 수학했다. 또 조지아주 포트 배닝에서 고공낙하, 보병공격 지휘 등의 교육을 받았다.

바무는 2004년 미국 특수부대가 훈련한 니제르의 대테러 특수부대의 지휘관이 됐다. 서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미군 지휘관들과 두루 친해 자신의 집에 초청해 식사하는 등 친미(親美)적인 엘리트 군인이었다. 그런 그가 쿠데타 세력에 가담하면서, 바무와 함께 서아프리카에서 이슬람 테러 세력을 소탕하겠다는 미국의 계획도 물거품이 될 위기에 빠졌다.

◇미, ‘대테러 작전의 핵(核) 니제르를 포기할 것인가’

미국은 그동안 니제르에 5억 달러를 지원하며 니제르 군을 양성했다. 미국이 1억1000만 달러를 들여 구축한 드론 기지도 니제르에 있다. 미국과 서방에게 니제르는 사헬 지역에서 수천 명을 살해한 이슬람 테러 집단들의 세(勢)가 번지고 러시아가 지역의 불안정성을 악용해 침투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핵심적인 ‘방화벽(防火壁)’이었다.

따라서 미국과 프랑스는 각각 1100명, 1500명의 자국 특수부대원을 니제르에 주둔시키는 등, 인근 다른 나라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니제르와 대테러 작전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만약 니제르와 관계가 끊어지면, 미국ㆍ프랑스 등 서방의 이슬람 대테러 작전은 큰 차질을 빚게 된다. 바무 장군은 이 파트너십의 핵심 핀(linchpin)이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대외 원조는 민주주의 원칙과 인권을 억압하는 국가들에 대한 군사ㆍ경제 원조를 금지한 리하이법, 외국원조법 등의 법률을 따라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미 쿠데타 직후 진행 중이던 1억 달러의 원조를 중단했다. 인구 2500만 명의 내륙국 니제르는 전체 예산의 절반 이상을 미국 등의 해외 원조에 의존한다.

◇러 와그너 그룹 이끄는 프리고진은 “쿠데타 환영”

미국 국무부는 바무 장군을 비롯한 군사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니제르의 민주정부 복귀를 꾀하며 아직 이를 ‘쿠데타’로 공식 규정하기를 미루고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관련 법률에 따라 니제르와의 원조ㆍ협력을 끊어야 할 수도 있다.

서아프리카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앞선 나라들의 군사 정부는 미국의 원조가 끊기자, 이슬람 테러를 막고 치안 유지를 위해 러시아의 용병 집단인 와그너 그룹에 도움을 요청했다. 와그너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니제르 쿠데타 발생 3일 뒤인 7월29일 “와그너가 식민지배국가[프랑스]들의 테러를 물리치고 치안을 유지할 수 있다”며 쿠데타를 환영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현재 수천 명의 와그너 용병들이 수단, 말리,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현지 군사 정부를 도와 반군과 테러집단을 진압하고 있다. 니제르 군사 정부는 아직 와그너와 협력할 의향을 비치지는 않았다.

◇서아프리카 지역 전쟁 벌어지나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는 니제르 쿠데타 세력에 군사적 개입을 위협하며, ‘8월6일까지 민정(民政)을 복구하라’고 통보했지만, 니제르 군부는 이를 무시했다.

ECOWAS는 15개 회원국 중에서 니제르까지 4개국에서 쿠데타가 발생한 것이라서,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ECOWAS 국가들은 니제르와의 금융 거래를 끊었고, 니제르 전력 수요의 75%를 담당하는 나이지리아는 전력 공급도 중단했다.

10일 나이지리아의 수도 아부자에서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의 긴급 정상회의를 소집해 니제르의 민정 회복을 강력히 요구한 나이지리아 대통령 아흐메드 볼라 티누부/AFP 연합뉴스

그러나 ECOWAS의 ‘형님 국가’인 나이지리아는 니제르와 무려 1600㎞에 달하는 국경을 공유하는 데다가, 종족과 언어가 같은 인구가 국경 지역을 중심으로 많이 겹친다. 또 나이지리아 자체도 치안 유지가 잘 안 되고 자국내 이슬람 무장단체도 제압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모든 선택지가 책상 위에 있다”는 선언과는 달리, ECOWAS가 무력을 동원해 니제르에 개입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ECOWAS와 나이지리아의 영향력은 현재 가택 연금 상태에 있는 바줌 대통령과 가족의 해외 망명을 끌어내는 정도의 협상 성과에서 그치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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