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사형투표’ 사법불신이 부른 사적 복수, 이번에도 흥행할까?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김재동 객원기자]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10일 방영을 시작한 SBS 목요드라마 ‘국민사형투표’(조윤영 극본, 박신우 연출)의 등장인물 중 주현(임지연 분)을 소개한 인물란에 등장한 한 구절이다.
이 한마디가 ‘모범택시’·‘더 글로리’ 등의 계보를 잇는 사적복수드라마 ‘국민사형투표’의 배경을 설명한다. 즉 법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불신이 이 드라마의 탄생 배경이란 의미다.
대한민국뿐 아니라 모든 법치국가의 사법체계는 자력구제 금지의 원칙을 견지한다. 다시 말해 일반 사인(私人)은 국가의 공권력을 통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서만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고 보호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법이란 시스템을 믿지 못할 때 사람들은 어디에 기대야 할까? 사적 복수 드라마가 연이어 만들어지고 대부분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현실은 이 같은 사법 불신이 몇몇 특정 계층의 성향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폭넓은 공감대를 얻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드라마는 스피디하다. 시작부터 ‘8년 전’이란 자막을 깔았다. 이어 빗속에서 누군가를 추적하는 주인공 강무찬(박해진 분)의 모습이 그려진다. 다른 컷에선 골목 계단에서 누군가를 칼로 살해하는 비옷 입은 괴한의 모습을 비춘다. 마침내 강무찬이 현장에 도착, 총을 겨눴을 때 돌아선 괴한은 권석주(박성웅 분)였다. 권석주는 피 튄 얼굴에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그런 그를 절망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강무찬의 모습에서 시점은 현재로 옮겨온다.
현실 속 사회는 아동성착취물 유포범 배기철의 출소로 시끄럽다. 악랄한 죄질에 비해 터무니없이 짧은 형기에 국민 전체가 분노한다. 그리고 그런 사회적 분노의 시기에 모든 이들의 휴대폰에 메시지 하나가 전송된다.
그 화면에는 ‘<국민사형투표> 아동성착취물 유포범 배기철의 사형을 찬성하시겠습니까?’라는 메시지가 띄워져 있다. 동시에 1시간짜리 스톱워치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국민사형투표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사형’에 대한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 투표가 마감된 다음 날 배기철은 목구멍에 처박힌 5만원권 지폐에 질식해 숨진 채로 발견된다. 그리고 배기철을 살해했다고 나선 의문의 인물 ‘개탈’은 매월 15일과 30일, 악질범들을 대상으로 국민사형투표를 진행할 것이며 찬성이 50% 이상이면 사형을 집행하겠다고 예고한다.
경찰은 특수본을 꾸려 잘해도, 못해도 욕먹을 이 사건을 경찰청 공식 설거지꾼 강무찬에게 배당한다.
한편 사이버수사대의 주현은 감염된 동생의 노트북을 점검하다 시험테스트로 뿌려진 ‘개탈’의 영상을 발견하고 무찬을 찾는다. 그리고 특히 ‘개탈’이 사용한 ‘무죄의 악마들’이란 표현에 주목한다. 이 표현은 무찬이 검거한 8년 전 권석주가 사용했던 말이다.
‘권석주가 범인!’이라는 주현의 발언은 무찬의 회상을 불러오고 회상 속 무찬은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권석주를 “형!”이라 불러 절친한 관계임을 암시했다.
시놉시스상 두 사람이 친했던 건 맞다. 권석주는 잘나가는 법학자였고 외동딸이 살해당하는 비극을 맞았다. 당시 담당형사 무찬은 범인을 특정했으나 결정적 증거가 없자 증거를 심었다. 하지만 그 사실은 법정에서 공박당했고 범인은 증거불충분으로 방면됐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던 권석주는 범인을 직접 살해, 장기수로 복역 중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오랜 사법 불신의 역사를 축적해왔다. 최초로 공론화 된 것은 1988년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유명한 지강헌 탈주사건으로 기억된다.
당시 지강헌은 약 556만원 절도로 징역 7년,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았다. 합쳐 17년 격리를 선고받은 것이다. 비슷한 시기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는 법정이 인정한 횡령금 76억원(실제로는 수백억으로 추정된다)으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실제 3년만 수감된 후 석방됐었다.
이후 서민들에겐 가혹하고, 힘 있는 자들에게는 솜방망이였던 무수한 양형의 역사가 이어졌다. 그걸 보며 사람들은 법이란 시스템이 정의롭게 작동되지 못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국가가 형벌권을 유지하는 근저에는 ‘공정하리라’는 국민적 믿음이 존재한다. 내가 복수하지 않더라도 국가가, 법이 해줄 것이라는 믿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연진(임지연 분)은 “왜 없는 것들은 인생에 권선징악, 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라 답답해 한 적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응보를 실현 못하는 법 현실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문동은(송혜교 분)의 사적 복수에 열광하게 만들었다.
만약 공권력, 그리고 인권의 최후 보루인 법이란 정당한 폭력이 권력과 금력을 포함한 나쁜 폭력들을 충분하고도 공정하게 제어하는 시절이 온다면 어떨까? 그런 때가 오면 사적복수 컨텐츠는 열광을 불러오긴커녕 개연성 부족으로 외면받고 말 것이다.
어쨌거나 세상은 여전히 사적복수에 열광한다. 주 1회 편성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사적복수극 ‘국민사형투표’가 또 한 번의 흥행 개가를 올릴 지 궁금하다.
아울러 ‘더 글로리’의 그 ‘연진’ 임지연이 이번엔 응보에 실패한 법의 피해자 ‘주현’이 된 점도 눈길을 끈다. 그리고 교도소안의 권석주가 범인이란 주현의 말에서 영화 ‘모범시민’의 제라드 버틀러가 연상되기도 했다.
한가지. 개탈이 배기철을 죽이는데 사용한 5만원권들은 배기철을 털어 확보한 돈일까? 아니라면 사형집행비용이 너무 과하다는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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