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공급망 재편과 한미 ‘우라늄 동맹’[이미숙의 시론]

2023. 8. 1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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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우라늄 저농축은 에너지 안보
中·러 원전연료 50% 이상 장악
무기화 막을 한·미 공급망 필요
韓 핵무장 포기한 워싱턴선언
원자력 공조엔 보증수표 역할
核 + 원전 협력으로 동맹 완성

우라늄 농축은 한미 외교 당국의 금기어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을 견지하는 미국은 우라늄 농축 의지를 핵확산 의도로 간주하는 경향이고, 한국도 좀처럼 입에 올리지 않는다. 지난 2000년 과학자들이 레이저를 이용해 우라늄 농축 실험을 했던 것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뒤늦게 발각된 악몽 때문이다. 전방위 외교전 덕분에 불량국 낙인은 모면했지만, ‘언제든 핵 개발에 나설 나라’라는 의심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20% 미만 우라늄 저농축은 한미 고위급위원회에서 협의한다’는 한미원자력협정 조항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시도조차 않은 것은 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최근 미국에선 새 기류가 감지된다. 비확산을 중시하는 국무부에 눌렸던 에너지부의 목소리가 커지는 양상이다. 7월 18일 열린 하원 에너지·상무위원회 산하 에너지·기후·그리드 보안 소위 청문회가 상징적인데, 여기선 우라늄 농축을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캐시 로저스 위원장은 “적대국의 도전을 이겨내기 위해 원자력 에너지 관련 법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미 원자력업계를 대변하는 원자력에너지협회(NEI)의 마리아 코르스닉 대표는 러시아와 중국의 원전 시장 장악을 안보 문제로 규정한 뒤 “미국 홀로 원전 연료 공급망을 해결할 수 없다”며 동맹과의 공조 필요성을 제기했다.

미 하원이 이 청문회를 연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권위주의 독재 대 자유 진영 대결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탈냉전 시대의 원전 공급망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판단에 기초한다. 세계화 시대엔 효율성이 중시됐지만, 이젠 안보를 우선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여기엔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벌인 러시아와 에너지 공급망을 단절해야 푸틴의 에너지 무기화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세계 원전 건설 증설로 인해 연료 가격이 급등하며 연료 제조 시설 부족도 뚜렷해진 상황이다.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원유·천연가스·금융 제재에도 불구하고 2021년 1조5000억 달러였던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2조2000억 달러로 늘어났다. 러시아 편에 선 중국과 인도에 원유 등을 팔고, 원전 연료도 제한 없이 판 덕분이다. 러시아 로사톰 등은 세계 원전 연료의 46%를 공급한다. 이어 영국의 우렌코(27%), 프랑스의 오라노(14%), 중국원자력공업집단공사(12%) 순인데, 중·러의 시장 장악이 50%를 넘는 위험한 상황이다. 미국은 지난해 로사톰을 제재하려 했다가 원전 가동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지적에 제외했다.

미국에서 우라늄 농축에 대한 경제 안보적 접근과 함께 원전 연료 새 공급망 논의가 나오는 것은 우리에게 역사적 기회다. 북핵 위협 가속화가 역설적으로 42년간 지속된 한미 미사일지침 폐지의 동력이 된 것처럼, 러시아의 위협은 그간 금기시했던 한미 우라늄 농축 공조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원전 25기에서 전력의 30%를 얻는데 연료 33%는 러시아에서 사들인다. 미국도 23%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특히, 워싱턴선언 효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워싱턴선언은 미국 측에 ‘선언이 이행되는 한 한국의 독자 핵 개발은 없을 것’이란 확신을 줬다. “한국의 비핵국 지위(non nuclear status)를 확인했다”는 백악관 고위 인사의 발언에 그런 인식이 드러난다. 워싱턴선언은 독자 핵 무장 봉쇄라는 점에선 족쇄지만, 원자력 에너지 협력엔 보증수표다. 그런 만큼 워싱턴선언 효과를 원자력 에너지 분야에서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을 대통령실이 원전 업계 등과 주도면밀하게 세워 미국과 협의를 시작한다면 한미 공동의 원전 연료 공장을 만들 수 있다.

워싱턴선언으로 이승만-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대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70년 만에 핵 동맹으로 가는 입구로 들어섰다.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 핵 동맹을 완성하려면 워싱턴선언에 명시된 군사 안보적 ‘핵 공유’에 경제 안보적 측면의 원자력 에너지 전방위 협력을 추가해야 한다. 한미가 저농축 우라늄 시설을 공동 구축하고 원전 시장에 함께 진출할 때 군사동맹은 비로소 핵무기에 원자력을 더한 완전한 핵 동맹이 된다. 윤 대통령이 18일 캠프데이비드에서 그 길을 열어야 한다.

이미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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