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이란관계 정상화 기대…발목 잡던 '동결자금' 해결 수순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오수진 기자 = 최근 수년간 한·이란 관계의 발목을 잡았던 동결 석유대금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동결자금 문제가 풀리면 한·이란 관계의 큰 걸림돌이 해소되는 만큼 양국관계를 다시 정상화할 여건이 마련된다고 볼 수 있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10일(현지시간)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이란에 부당하게 구금된 미국인 5명이 석방돼 가택연금에 들어간 것으로 이란 정부가 확인했다"고 말했다.
NSC는 "이들의 최종 석방을 위한 협상이 계속 진행 중이며 현재는 민감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이 이란에 수감돼 있는 미국인을 석방하는 대가로 한국 내에 동결된 이란 자금 해제, 미국 내 수감된 일부 이란인 석방 등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 발표와 외신 보도 등을 종합하면 미국과 이란 측은 이란 내 미국인 수감자 석방과 한국 내 동결자금 해제 등이 포함된 합의의 큰 틀을 타결하고 이행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의 은행에 묶인 이란의 원화 동결자금은 미국 트럼프 정부가 2018년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일방적으로 탈퇴하면서 발생했다.
이란은 2010년부터 IBK기업은행과 우리은행에 이란중앙은행 명의로 개설한 원화 계좌로 한국에 수출한 석유 대금을 받아왔다.
그런데 트럼프 정부가 JCPOA를 탈퇴하고 대이란 제재 복원의 일환으로 이란중앙은행을 미국 제재 대상에 올리면서 이 계좌가 동결됐다. 동결 자금의 규모는 8조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유 대금으로 지급받아야 하는 막대한 돈이 묶이자 이란은 한국에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 해결을 거세게 압박했다.
2021년 이란 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 해협의 오만 인근 해역에서 한국 국적 선박을 억류했다 풀어준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란은 올해 초 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은 이란' 발언 때도 동결자금 문제를 함께 거론하며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처럼 한때 중요 교역상대국이자 활발한 우호협력을 이어왔던 양국 관계는 큰 어려움에 부닥쳤고, 이란 대중들의 반한 정서도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정부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다각도로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왔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9월 유엔 총회를 계기로 열린 한·이란 외교장관 회담에서 "동결 자금이 이란 국민의 소유라는 명확한 인식하에 그간 미국 등 주요국과 동결자금 문제 해결을 위해 수시로 협의해왔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정부는 앞서 이란과 P5+1(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독일) 간에 JCPOA 복원을 위한 협상이 활발히 진행되던 시기에는 JCPOA 복원의 초기단계 이행 조치에 동결자금 문제가 풀릴 수 있도록 상당히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타결이 임박했던 JCPOA 복원 협상이 교착상태에 들어가면서 해결 동력이 약화하는 듯했지만, 이란 내 미국인 수감자 문제와 이란의 해외 동결자금을 '원포인트'로 해결하는 합의안이 다시 부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수감자의 완전한 석방과 동결자금 해제 절차 완료까지는 아직 밟아야 할 단계가 남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서인지 한국 정부는 현 단계에서 동결자금 해제 여부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이 전날 동결자금이 한국에서 스위스를 거쳐 카타르로 이전될 것을 요청했으며, 이전 절차가 완료된 뒤에야 수감자 교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란은 미국 금융기관을 거치는 달러화 송금은 꺼리는 것으로 알려져 유로화로 환전돼 카타르 계좌로 송금될 것으로 보인다.
자금 이전 절차가 무사히 완료되면 한·이란 관계의 '비정상화'를 초래했던 커다란 악재 요인은 일단 사라진다.
중동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국가이자 커다란 잠재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는 이란과 활발한 외교관계를 추진할 조건이 갖춰진다는 의미가 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지불해야 할 대금을 지불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 한-이란 관계에 있어 굉장히 우리를 불리하게 만들어 왔다"며 "이 문제를 빨리 풀어내는 것이 관계 정상화의 조건"이라고 말했다.
다만 JCPOA가 복원되는 것이 아닌 만큼 대이란 교역까지 예전처럼 활성화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는 이르다. 아울러 내년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미·이란 관계가 다시 한번 커다란 부침을 겪을 수 있다는 점도 한·이란 관계의 변수다.
인 교수는 "당분간 예전처럼 (관계가) 급물살을 타기는 어렵지만 이란이 가진 잠재력은 엄청나다"며 "(이란)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는 소프트파워 증진 전략을 먼저 구상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kimhyo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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