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명 혐의' 前 해병 수사단장 "군검찰 수사 거부… 공정한 수사 불가"(종합)
尹대통령에 "공정한 수사·재판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길 청원"
(서울=뉴스1) 허고운 박응진 기자 = 고(故) 채수근 상병 사망 사고 조사와 관련해 '집단항명 수괴' 등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자신에 대한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에 불응하기로 했다.
박 대령은 국방부 검찰단의 2차 소환조사가 예정돼 있던 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방부 검찰단은 적법하게 경찰에 이첩한 (채 상병 사망) 사건 서류를 불법적으로 회수했고, 수사에 외압을 행사하고 부당한 지시를 한 국방부 예하조직이어서 공정한 수사가 이뤄질 수 없다"며 "오늘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를 명백히 거부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박 대령은 특히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국군통수권자로서 한 사람의 군인의 억울함을 외면하지 말고, 내가 '제3의 수사기관'에서 공정한 수사·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길 청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 대령은 "난 정치도 모르고 정무적 판단도 알지 못한다"며 "다만 채 상병 시신 앞에서 '네 죽음에 억울함이 남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하고 재발 방지가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고 다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사건 발생 초기 윤 대통령이 '엄정하고 철저하게 수사해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고, 장례식장에서 여야 국회의원 및 국방부 장관마저도 유가족에게 '철저히 진상을 규명해 엄정히 처벌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는 모습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박 대령은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젊은 해병이 죽어야만 하는가. 도대체 누가 이 죽음에 책임이 있는가"라며 "난 내가 할 수 있는 수사에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를 해병대사령관, 해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대면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박 대령은 "그런데 알 수 없는 이유로 국방부 법무관리관으로부터 수차례 수사 외압과 부당한 지시를 받았다"며 "수십차례 해병대사령관에게 (사건을) 적법하게 처리할 것을 건의했다"고 거듭 주장했다.
박 대령에 따르면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해병대 수사단의 채 상병 사고 관련 브리핑이 '취소'된 지난달 31일 이후 최소 5차례 통화에서 '경찰 이첩 자료에서 죄명을 빼라. 혐의 사실을 빼라. 혐의자를 빼라'는 등의 요구를 했다.
이와 관련 박 대령은 기자들에게 "법무관리관이 한 말을 '외압'으로 느낀다. 제3자가 이런 얘기를 들으면 뭐라 생각할 것 같으냐"며 "이런 얘기는 굉장히 위험하다. 조심해서 발언해줬으면 좋겠다"고 (유 관리관과) 직접 통화했다"고 설명했다.
박 대령은 "(유 관리관이) 직접적으로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빼라'고 얘기하진 않았다"면서도 "'직접적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혐의자를) 한정하라'는 요구가 묵시적으로 '(사단장을) 빼라'는 의미로 느꼈다. 대화 과정에서 '사단장을 빼라는 얘기냐'고 되물은 적도 있지만, 거기에 법무관리관은 답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박 대령은 "이 (채 상병) 사망 사건은 사단장·여단장도 직·간접적으로 과실 혐의가 충분히 있다는 게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결과 확인됐다"며 "'광의의 과실로 봐서 경찰이 합리적 판단과 수사를 할 수 있도록 이첩하면 타당하겠다'는 의견을 (유 관리관에게) 얘기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박 대령은 "난 '(민간) 경찰에 (채 상병 사망) 사건을 이첩한다'는 사실을 이첩 전 해병대사령관에게 보고했고, 그에 따라 적법하게 사건을 이첩했다"며 "난 내가 왜 오늘 이 자리까지 와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했다.
다만 그는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라며 "대한민국 해병대는 충성과 정의를 목숨처럼 생각하고 있다"며 "저는 해병대 정신을 실천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해병대 제1사단 포병여단 제7포병대대 소속이던 채 상병(당시 일병)은 지난달 19일 경북 예천군 내성천에서 구명조끼 등 안전장비 착용 없이 실종자 수색을 하던 중 급류에 휩쓸렸다.
해병대 수사단은 이후 조사를 통해 채 상병 사고가 '해병대 지휘부의 총체적인 지휘 책임에서 비롯됐다'는 결론을 내리고 지난달 30일 이 장관에게 대면 보고한 뒤 이튿날인 지난달 31일 그 내용 언론과 국회에 설명하려 했다가 돌연 취소했다.
이 장관이 지난달 31일 오전 '법리 검토 필요성' 등을 이유로 해병대 수사단의 채 상병 사고 조사 결과 공개와 이 사건의 민간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고 해병대에 지시했기 때문이란 게 국방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박 대령은 이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를 명시적으로 전달받은 적 없고, 오히려 국방부 관계자들로부터 '채 상병 사고 조사 보고서에서 군 관계자들의 혐의 내용을 빼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수사단이 최초 작성한 보고서엔 임성근 해병대 제1사단장 등 8명의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가 적시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이 장관은 해병대 수사단 조사결과 보고를 들은 뒤 "사단장까지 형사 처벌 대상으로 하느냐"고 물었고, 이에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과실에 대한 구체적인 물증·정황이 있기 때문에 경찰에 이첩해 수사할 사항이라고 판단한다"고 답했다고 박 대령이 전했다.
박 대령은 또 '혐의 적시자 중 다수인 초급 간부들에게 책임을 묻는 게 조심스럽지 않느냐'는 물음엔 "초기 판단은 우리(해병대 수사단)가 하지만 (최종 판단은) 결국 수사권을 가진 (민간) 경찰에서 한다"며 "(수색 중 안전 확보를 위해) 통제하도록 지시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열이 흐트러지면서 통제되지 않아 결국 채 상병이 물에 휩쓸리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에 (초급 간부들도) 통제에 미흡한 과오가 있다"고 답했다.
박 대령은 "7월31일 오후부터 8월1일 오후까지 '국방부의 이런 외압에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회의가 계속 있었다"며 "난 회의에서 '국방부에서 원하는 대로 했을 때 해병대에서 우려되는 사항들'을 요약해 추가 보고까지 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박 대령은 지난달 30일 이 장관에 채 상병 사고 조사 결과를 대면 결재 받은 뒤 국가안보실로부터도 '장관 결재본을 보내줄 수 없느냐, 안보실장이 보고 싶어한다'는 연락을 받았으나 '수사 중인 사안이고 안보실은 수사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보내줄 수 없다'며 거절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후 해병대사령관 주관 회의에서도 사령부 정책실장이 '안보실에서 수사 결과를 보기 원한다'고 했지만 '그 사항은 안 된다'고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박 대령이 이후 김 사령관이 전화를 걸어와 '안보실에서 계속 요구하는데 수사 서류를 보내줄 수 없다면 언론 브리핑용 자료라도 보내주면 안 되겠느냐'고 해서 수사단 관계자를 통해 언론 브리핑용 자료만 전달토록 했다고 부연했다.
박 대령은 이달 2일 채 상병 사고 조사결과 보고서를 관할 경찰인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다가 보직해임됐고, 현재 '집단항명 수괴' 및 '직권남용'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국방부 검찰단에 입건된 상태다.
hg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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