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컬브랜드 인터뷰] "디즈니 공주, 백인이어야할까" 틱톡에서 질문 던지는 것도 '저널리즘'
[버티컬브랜드 인터뷰 (02)] [2023 미디어의 미래] 경향신문 숏폼 채널 '암호명 3701'
분장하고 연기하며 '전달'에 초점…"아이들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저널리즘"
특정 인력 전담 구조는 한계… "모두가 플랫폼 다변화 고민해야"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언론사의 숏폼 가능성을 처음 알린 경향신문 틱톡 채널 '암호명 3701'의 주인공 윤기은 경향신문 기자와 양다영 경향신문 PD는 틱톡 전문 인력이 아니다. 각기 다른 업무로 '겸업'을 하고 있다. 영상에 출연하는 윤 기자는 사건팀 소속으로 현장 기사를 쓰고, 연출을 맡은 양 PD는 뉴콘텐츠팀에서 유튜브 운영 업무를 같이 한다. 동료와 회사의 배려 속 2명의 열정으로 운영되는 현재 구조는 겸업으로도 생산이 가능한 틱톡의 '효율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아직은 완성되지 못한 언론의 뉴미디어 '시스템'을 보여준다.
오후 7시, 끼니도 거른 채 일하던 윤 기자와 양 PD를 지난 9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 사옥에서 만났다. 인터뷰 도중에도 기획취재 일로 핸드폰을 봐야 하는 윤 기자와, 여전히 마감에 쫓기는 양 PD.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그들은 틱톡 채널을 운영하며 '효능감'을 느끼고 있었다. 특정 이슈에선 텍스트 기사보다 '암호명 3701'로 기사를 소비하는 비중이 더 높을 수 있다는 것. 틱톡을 부차적으로 여기는 일반적인 기자들의 인식과 달리 윤 기자는 “오히려 여기에 뛰어드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사 유통 고민에서 시작한 틱톡, “가장 중요한 건 전달력”
10일 기준 대략 1만 9000명의 틱톡 팔로워를 가진 '암호명 3701'은 회사가 아닌 기자 개인의 의지로 시작됐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기사를 더 많이 읽을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었다. 윤기은 기자는 뉴스를 글로만 전달할 필요가 없겠다고 느꼈다.
“당시 하루에 2개씩 기사를 무조건 써야 했다. 그런데 아무리 써도 관심을 많이 받는다는 느낌이 안 들더라. '내가 무엇을 위해 기사를 써야 하지'라는 고민이 들었다. 그러다 뉴스를 꼭 글로만 전달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요즘 세대는 영상 친화적이다. 영상으로도 기사를 표현할 수 있다. 그렇게 국제부장에 말했고, 뉴콘텐츠팀이랑도 소통했다. 당시 뉴콘텐츠팀장이 언론사가 많이 진출하지 않았고, 전망도 있는 것 같으니 '숏폼'을 해보라 하셨다. 현실적으로 저도 다른 업무가 있기 때문에 숏폼이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고 양다영PD와 둘이 협의를 거쳐 2021년 8월 첫 영상을 올렸다.” (윤기은 기자)
기사 유통에 대한 고민이 시작이었던 윤 기자는 지금도 '전달력'에 초점을 맞춘다. “저는 일반 기사를 볼 때 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형식적으로 기사가 모든 맥락을 다 쓸 수 없으니까 사실이 조각조각 나뉘어 있다. 가령 음주운전 기사면, 경찰에 붙잡혔다, 송치됐다, 기소됐다 등의 내용이 나열된다. 개인적으로 기사를 읽을 때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전문 용어에 가깝게 쓰여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래서 틱톡을 만들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건 어떻게 하면 어린 아이들에게 '전달될까'이다.”
암호명 3701의 영상은 하나의 이슈를 아이들이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구성된다. '뭐? 학교 더 일찍 가야할 수도 있다고?' 등의 문장으로 이목을 먼저 끌고, 윤기은 기자가 캐릭터로 등장해 '연극'을 펼친다. 그렇게 이슈 파악이 끝나면 윤기은 기자가 사건에 대한 맥락을 설명하는 식이다. 대학 시절 방송국 동아리 경험이 있는 윤 기자는 양다영 PD에게 신뢰할 수밖에 없는 '배우'다. 영상에는 '언니 사랑해요!'라는 댓글이 달린다.
“일부러 기은씨의 캐릭터를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한다. '끼은'이라는 캐릭터도 있다. 극에서 학생이 필요하면 중학생 '끼은'이가 무조건 출연하는 식이다. 틱톡은 캐릭터가 안 살면 채널이 오래 유지되기 힘들다고 하더라. 그런 의미에서 기은씨와 함께 일하기 편했다. 분장할 수 있냐고 처음에 물어봤더니 대학교 때 이런 분장까지 했다며 먼저 보여주더라(웃음).” (양다영 PD)
상호작용 활발한 틱톡, '흑인 인어공주'로 만든 팽팽한 찬반
영상 '타깃'은 초등학교 5학년이다. 그 이상의 연령대가 볼 수도 있지만 최고의 '전달'을 위해서다. 양 PD가 한 달 모니터링을 했을 때 실제 5학년의 비중이 높기도 했다. 영상이 하나 올라가면 아이들은 열성적으로 참여한다.
“기사를 포털에 올리면 소통이 안 되는 느낌이 있었다. 정치 기사도 아닌데 갑자기 정치 댓글이 달린다거나 혐오 표현이 난무한다. 댓글이 하나의 커뮤니티고, 기사랑 분리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틱톡은 다르다. 영상 끝에 해당 이슈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는데 아이들이 진지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기자 입장에서도 이런 상호작용이 훨씬 힘이 난다.” (윤기은 기자)
상호작용을 통한 논의의 촉발은 '저널리즘'의 역할이다. 하나의 이슈에 대해 아이들이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이다. '흑인 인어공주' 콘텐츠가 좋은 예다. 일반적인 커뮤니티에선 디즈니 인어공주에 대한 혐오 반응만 나오지만 '재해석', '다양성' 등의 맥락이 함께한 '암호명 3701' 콘텐츠에는 댓글에 흑인 인어공주에 대한 찬반이 팽팽하다. 윤 기자는 영상 마지막에 “디즈니 공주, 백인이어야할까?”라고 질문을 던진다.
“SPC 불매운동이 일어났을 때도 포켓몬빵과 엮어서 콘텐츠를 만드니 논의가 매우 활발하게 일어났다. 10대 목소리를 대변한다기보다는 '이거 우리 함께 얘기해보면 어때'라는 스탠스다. 우리가 아니더라도 SPC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은 쉽게 유통될 것이다. 하지만 그 소식이 아이들이 논의할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하게 전달될까. 그게 중요한 것 같다.” (양다영 PD)
“교육자료라고 생각하는 측면도 있다. 영상을 처음 시작할 때 교과서도 봤던 것 같다. 기사의 기능이 정보 전달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주제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저널리즘이다. 적어도 그 기능은 우리가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윤기은 기자)
영상이 잘 퍼질 수 있는 '팁'은 해시태그다. 양 PD는 “'1분틱톡', '틱톡교실' 등으로 카테고리화 해시태그를 달면 도움이 된다고 들었다”며 “아이들은 네이버처럼 틱톡에서 검색을 한다. 키워드를 중심으로 해시태그를 다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수익성 여전히 의문, “회사 차원에서 고민 필요”
틱톡 플랫폼 자체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성장세가 무서운 서구권과 달리 국내에선 아직 틱톡 열풍이 압도적이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틱톡이 10대의 지지를 선점해 앞으로 확장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윤 기자는 “저도 틱톡을 본다. 아이들이 보는 콘텐츠만 있는 게 아니라 옛날 예능 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가 있다”며 “지금 10대가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틱톡을 안 볼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2주마다 틱톡 트렌드 분석을 한다. 오늘 본 내용은 교보문고가 '북톡'을 시작했다는 건데, 해외에선 이미 북톡이 어마어마한 이슈다. 베스트셀러를 소개하거나, 자신이 인상 깊은 문구, 재밌는 표지를 인증하는 식이다. 해외 추세를 한국이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영향력이 더 커지지 않을까.” (양다영 PD)
취약한 틱톡의 수익 구조는 여전히 약점이다. 틱톡은 짧은 영상 길이 탓에 광고를 붙이기 어렵다. 유튜브 등 콘텐츠 안에 자연스럽게 제품을 녹여 홍보하는 마케팅 기법인 '브랜디드 콘텐츠'가 있지만 아직 유튜브보다는 활성화돼 있지 않다. 브랜디드 콘텐츠임을 판별하는 버튼도 틱톡은 최근에야 만들어졌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PPL 같은 간접광고나 공공기관 프로젝트 등이다. 고민하고 있는 상태인데 사실 현장에선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일반적으로는 광고주와 신문을 연결하는 역할을 광고국 등 회사에서 하는데 틱톡에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부서나 사람이 없다. 회사 차원에서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논의가 활발해지면 브랜디드 콘텐츠 등 자체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윤기은 기자)
“네이버나 카카오에는 숏폼 섹션이 이번에 생겼기 때문에 수익이 좀 난다. 예를 들어 네이버 숏폼을 통한 네이버TV 조회수가 경향신문에서 내는 수치 중에 가장 좋은 축에 속한다. 하지만 현재 조회수가 나오는 것이 숏폼을 언론사에게만 열어줬기 때문인 것도 있다. 개인 유튜버들, 크리에이터가 들어오면 영향력이 조금 약해지지 않을까. 브랜디드 콘텐츠만 따져 보면 틱톡이 못할 플랫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양다영 PD)
편집국 전체 인식 전환 필요, “틱톡 근무시간 대비 효율 있어”
아직은 뉴미디어 분야 자체가 언론사 구성원 모두에 익숙한 건 아니다. 플랫폼 다변화에 대한 고민은 보통 뉴미디어팀만의 것이 되기 일쑤다. '암호명 3701'팀은 지면, 포털 비중이 점차 줄어드는 상황에서 편집국 전체가 플랫폼 다변화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디지털팀을 만들어 '담당시키면 되겠지'라는 인식을 가지기 쉽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 부서 외에 있는 사람은 결국 레거시 미디어 소통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 구조를 타파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모든 기자가 텍스트 외 기사를 유통할 수 있는 회로가 하나 생겼으면 좋겠다. 강제로 '영상 만들어라'가 아닌 이 사안은 영상화로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구현할 수 있는 회사 차원의 루트가 필요하다. 개인의 의지에 의존해선 지속 가능하지 않다.” (윤기은 기자)
실제로 기사 소비 추이를 봤을 때 틱톡에서 유통이 더 활발할 때도 많다. 실제 썼던 텍스트 기사를 틱톡에서 사용할 때가 많은 사건부 소속 윤 기자의 경험이다. 윤 기자는 “근무시간 대비 효율이 있다. 오히려 틱톡으로 보는 독자가 더 많을 수도 있다”며 “부수 효율로 봤을 때는 오히려 여기 뛰어드는 게 효율적일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 틱톡 채널을 만든 지 2년, 언론의 인식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암호명 3701' 이후 숏폼용 버티컬 브랜드를 만든 타 언론사도 다수 생겼다. “이렇게도 콘텐츠를 만들 수 있구나 보여준 게 성과라고 생각한다. 경향신문에서도 '오마주', '설명할 경향' 등 다양한 콘텐츠가 생겼다. 그 시도에 대해 이전보다 다들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시는 것 같다.”(양다영 PD)
현장을 뛰는 윤기은 기자는 틱톡을 위해 2~3주에 하루 정도 발제와 보고에서 빠진다. 공백을 메워주는 회사와 동료들의 배려 덕분이다. 양 PD와 함께 틈틈이 대본을 쓰고 소품을 준비하는 등 겸업이 쉬운 건 아니지만 '암호명 3701'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출입처가 있는 부서에 다니면서 관심 사안을 영상으로도 만들 수 있다는 '철학'이 담겼으면 좋겠다”고 윤 기자는 말했다. 2년이 지났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다.
“틱톡 트렌드를 계속 따라가다 보면 성적으로 자극적인 거라든지 이상한 게 너무 많다. 틱톡에도 조금 건강한 영상들이 많이 돌았으면 좋겠다. 저희가 그런 데 일조하고 싶다.” (양다영 PD) “구독자들과 오프라인 간의 만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경향신문에 데려와서 견학도 시켜주고 카페 가서 수다도 같이 떨면 재밌지 않을까. 궁금한 것도 마음껏 물어보라고 하고 싶다.” (윤기은 기자)
(윤기은 기자는 8월24~25일 이틀 동안 진행되는 2023 미디어의 미래 컨퍼런스 '판이 바뀐다: AI와 미디어 패러다임의 전환'에 출연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 편집자 주)
2023 미디어의 미래 컨퍼런스 '판이 바뀐다: AI와 미디어 패러다임의 전환' → https://www.mediafutu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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