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재명-이재용 ‘부동의 Top3’…한동훈 ‘빅4’ 약진 [2023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과거와 현재, 미래 권력이 공존하는 ‘대한민국 권력 지도’
존재감 살아있는 문재인, 영향력 커진 김건희…BTS와 손흥민은 이제 ‘월클’ 반열
(시사저널=김종일 기자)
대한민국의 각 분야를 움직이는 이들은 그 자체로 상징적이다. 대한민국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우리가 지금 무엇을 원하고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흘려보내고 있는지도 알게 한다. 그래서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은 우리의 자화상을 담고 있다. 지금 한국을 움직이는 이들은 2023년 대한민국의 시대상을 담은 거울이다.
역사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대한민국 권력 지도'에 새겨진 이들은 담대한 도전 끝에 위대한 성취를 이뤄냈다. 지금 2023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이들의 희망과 요구, 과제들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는 뜻이다. 상징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켜켜이 쌓인 희로애락이 만들어낸 어떤 성취는 시대를 관통하고, 국민을 울고 웃게 만드는 드라마를 선사한다.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이렇듯 바로 동시대의 표상을 담아내는 일이다.
국내 언론 사상 단일 주제로는 최장기 기획인 시사저널의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는 1989년 창간 이후 34년째 계속되고 있다. 올해 역시 지난해에 이어 전문가 조사와 함께 일반국민 조사도 함께 실시했다. '국민 이상의 전문가는 없다'는 인식이 점점 강해지고 있고, 전문가의 의견과 일반국민의 선택을 비교해 제시하는 게 좀 더 입체적이면서도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전문가와 일반국민의 선택은 대동소이했다. 전문가들이 꼽은 2023년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톱10'에는 윤석열 대통령(지목률 58.8%),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25.4%),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13.4%), 한동훈 법무부 장관(9.0%), 김건희 여사(6.6%), 문재인 전 대통령(6.6%), BTS(6.4%), 손흥민(6.2%),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5.4%), 고 박정희 전 대통령(4.8%)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일반국민은 '톱10'에 윤석열 대통령(69.0%), 이재명 대표(34.4%), 이재용 회장(23.6%), 한동훈 장관(17.6%), 유재석(13.6%), 김건희 여사(12.4%), BTS(11.6%), 문재인 전 대통령(10.4%), 손흥민(9.0%), 김연아(5.0%) 등을 꼽았다.
'윤석열-이재명-이재용-한동훈' 4두 마차는 전문가와 일반국민 모두가 '톱4'로 선정했다. 순서도 동일했다. 전문가들은 '톱10'에 노무현·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을 넣어 우리 사회 보수와 진보 진영에 여전히 남아있는 고인의 영향력을 조명한 반면, 일반국민은 그 대신 2000년대 한국 대중문화계와 스포츠계를 각각 대표하는 유재석과 김연아를 올려 눈길을 끌었다.
1. 역대 가장 약한 '집권 2년 차' 尹의 영향력
대통령은 살아있는 권력이다. 대통령 중심제의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이라 불릴 만큼 막강한 권력을 보유하고 있다. 실제 대통령은 헌법상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으로서 국가 전체를 대표하는 지도자다. 군통수권자의 지위도 함께 갖는다. 임기 두 해째를 보내고 있는 '현재 권력'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는 점은 그래서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흥미로운 포인트는 윤 대통령 영향력의 추세와 정도다. 윤 대통령은 전문가로부터 58.8%라는 지목률로 올해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됐다. 다만 지난해에 기록했던 70.2%와는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 반면 일반국민 조사에서는 69.0%를 얻었다. 지난해(71.6%)보다 떨어지긴 했지만, 전문가 조사에 비하면 영향력의 감소 폭이 훨씬 적다.
전직 대통령들과 비교해 보면 어떨까. 문재인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집권 2년 차인 2018년과 2014년 각각 전문가로부터 90.9%와 78.1%의 지목률을 받았다. 윤 대통령과는 32.1%포인트, 19.3%포인트 차이가 난다.
역대 대통령들은 집권 2년 차에 대체로 70%대 지목률을 보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 71.6%(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75.7%(2004년), 김대중 전 대통령 74.4%(1999년), 김영삼 전 대통령 76.8%(1994년), 노태우 전 대통령 89.9%(1989년) 등이었다. 윤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과 적게는 12.8%포인트(이명박 전 대통령과 비교), 많게는 31.1%포인트(노태우 전 대통령과 비교)의 차이를 보였다.
윤 대통령이 앞선 대통령들보다 낮은 지목률을 보이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저조한 국정 지지율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한국갤럽이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 2년 차 1분기 직무수행 긍정률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33%로 같은 시기 75%의 문재인 전 대통령, 55%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명박 전 대통령(34%)과는 비슷한 수준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25%)보다는 높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60%)과 김영삼 전 대통령(55%), 노태우 전 대통령(45%)과는 차이가 있다.
윤 대통령의 영향력은 내년 총선 결과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5년 단임제라는 특성상 대통령의 힘은 시간이 갈수록 빠지기 마련이지만, 총선에서 '윤석열 브랜드'로 여권을 승리로 이끈다면 '윤석열의 시간'은 거꾸로 갈 수도 있다. 만약 총선 결과가 야권에 유리하게 나온다면 윤 대통령의 영향력은 집권 3년 차에는 더 가파르게 하향 곡선을 그릴 가능성이 높다.
2. 여야의 미래 권력, 이재명과 한동훈
대한민국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영역은 단연 정치다. 전문가가 뽑은 '톱10'에서 정치인은 6명이다. '톱20'까지 범위를 넓히면 13명이다. 그런데 권력의 시간은 벌써 '다음'을 내다보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현재 권력'과 2023년을 살고 있지만 국민은 이미 '미래 권력'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민심이 주목하고 있는 미래 권력은 두 축이다. 바로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을 이끌고 있는 이재명 대표와 윤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서 여권의 차기 총선을 이끌 '소통령'으로 평가받는 한동훈 장관이다. 두 사람은 모두 전문가 평가보다는 일반국민 평가에서 훨씬 더 높은 영향력을 인정받았다.
이 대표는 전문가와 일반국민에게서 각각 25.4%와 34.4%의 지목률을 기록하며 지금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톱2'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에는 16.0%와 20.0%를 기록해 3위를 차지했는데, 올해 지목률을 끌어올리며 전체 순위에서 한 계단 올라섰다. 지난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패배에 상당한 책임이 있고, 향후 넘어서야 할 사법 리스크 등 난관이 수두룩함에도 이 대표는 여전히 높은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고, 또 행사하고 있음이 증명됐다.
이 대표의 영향력은 야권의 미래 권력으로서 작동한다는 분석이 있다. 민주당의 또 다른 대선주자로 평가받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2.8%의 지목률로 13위를 기록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전체 20위권 내 유일한 야권 인사지만 이 전 총리 지목률은 이재명 대표(25.4%)와는 큰 차이가 난다. 이 대표가 자신의 계획대로 사법 리스크를 돌파하고 내년 총선을 승리로 이끈다면 그의 영향력은 한층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 장관은 전문가로부터는 지목률 9.0%, 일반국민으로부터는 17.6%의 지목률로 전체 순위에서 모두 4위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전문가 평가에선 지목률 8.0%로 7위, 일반국민으로부터는 15.6%의 지목률로 6위를 차지했는데 두 계단 이상 훌쩍 뛰어오른 셈이다. 한 장관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민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더 높은 영향력을 인정받은 점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윤석열 정부의 핵심 축이자 윤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실세로 인정받고 있다는 측면과 함께 민심이 지금 미래 권력의 재목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장관의 영향력은 향후 그의 정치적 선택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분석이 많다. 내년 총선에 뛰어들어 여권의 승리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한 장관은 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입지를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한 장관이 차기 총선에서 어떤 역할도 하지 않고 장관직에만 전념한다면 상대적으로 그의 영향력은 반감될 가능성도 있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한 장관이 윤석열 정부의 핵심 축으로 평가받는 만큼 현 정부의 성패에 따라 그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3. 역설적인 영향력, 문재인과 김건희
지금 한국을 움직이는 힘에는 '역설적인 영향력'도 존재한다. "퇴임 후에는 잊히고 싶다"던 문재인 전 대통령과 '조용한 내조'를 말했던 김건희 여사가 역설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대표 인물들이다. 두 사람은 전문가 조사에서 모두 6.6% 지목률을 기록해 지금 한국을 움직이는 '톱5'에 공동으로 이름을 올렸다. 일반국민 조사에서 김 여사는 12.4%로 6위, 문 전 대통령은 10.4%로 8위에 올랐다.
문 전 대통령의 영향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상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전문가와 일반국민 조사에서 각각 9.4%와 13.6%로 5위와 7위를 했는데, 올해도 엇비슷한 수준의 영향력을 유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경남 양산으로 내려가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책방 운영과 SNS를 통한 책 추천 외에는 특별한 대외활동을 하고 있지 않지만, 민주당의 최대주주로 평가받는 친문(친문재인)계는 물론 민주당을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인물로 여전히 평가받고 있다.
윤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는 올해 가장 두드러지게 영향력을 극대화시킨 인물이다. 지난해 전문가 조사에서는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고, 일반인 조사에서만 지목률 7.0%로 공동 9위를 차지했던 김 여사는 올해 각각 공동 5위와 6위를 차지하는 폭풍 성장의 모습을 보였다. 일반국민은 물론 전문가도 지금 김 여사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답한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김 여사의 존재감은 역설적이다. 대통령에게 엄청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임기 초에는 대통령 배우자에게도 상당한 시선이 쏠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집권 2년 차에도 대통령 배우자가 이렇게 주목받았던 적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와 같은 현상을 두고 여권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대선 과정에서부터 김 여사의 존재감은 긍정적 효과보다는 '김건희 리스크'라는 이름으로 호출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4. '톱10'의 유일한 경제인, 이재용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경제인 중 유일하게 '톱10'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이 회장은 전문가와 일반국민으로부터 각각 13.4%와 23.6%의 지목률로 모두 3위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16.4%와 24.8%를 얻어 전체 2위를 차지했지만, 올해는 지목률이 소폭 하락해 한 계단 내려섰다.
전체 순위가 3위로 조정됐지만, 경제인 중 이 회장의 존재감은 막강하다. 전문가 평가에서는 20위권으로 범위를 넓혀도 경제인은 이 회장이 유일하다. 일반국민 평가에서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공동 19위를 차지했지만, 지목률은 1.6%로 이 회장과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이 회장이 이끌고 있는 삼성은 올해 '그룹의 체질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이건희 선대회장의 신경영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특히 지난 30년간 삼성의 성장 공식이던 '패스트 팔로어'에서 '퍼스트 무버'로 체질을 바꾸기 위해 그룹 전체가 매진하고 있다. 이 회장은 초격차와 초일류 확보에 중점을 둔 미래 전략을 제시하는 방안을 놓고 장고를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5. 월드클래스, BTS와 손흥민
가수 BTS와 축구선수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은 한국 파워엘리트의 세대교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상징적 존재들이다. BTS는 전문가 조사와 일반국민 조사에서 각각 6.4%(7위), 11.6%(7위)를 차지했다. 14.6%(4위), 15.8%(5위)의 지난해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멤버 일부가 군에 입대해 활동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활약이 다소 주춤했던 손흥민도 여전한 존재감을 보였다. 그는 전문가와 일반국민 조사에서 6.2%(8위)와 9.0%(9위)의 지목률을 얻었다. 유재석은 일반국민 조사에서 13.6%의 지목률로 5위를 기록하며 2000년대 한국 대중문화계를 대표하는 스타가 여전히 자신임을 스스로 증명해 냈다.
'2023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어떻게 선정됐나
시사저널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설문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에 의뢰해 조사했다. 그동안은 행정관료·교수·언론인·법조인·정치인·기업인·금융인·사회단체·문화예술인·종교인 등 10개 분야에서 각 100명씩 전문가 총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는데, 지난해부터 비중을 조정해 10개 분야에서 50명씩 총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대신 일반국민 조사를 신설해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올해 조사는 7월3일부터 7월21일까지 진행됐다. 전문가 조사방법은 리스트를 이용한 전화면접 여론조사로 이뤄졌다. 일반국민 조사는 패널을 활용한 온라인 조사로 실시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4.4%포인트다. 올해 6월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통계 기준으로 가중값을 부여했다. 두 조사 모두에서 구조화된 질문지를 조사도구로 활용했다. 문항별 최대 3명까지 중복응답을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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