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기다린 재개발의 황제, 한남뉴타운 & 잠수교집

김명희 기자 2023. 8. 1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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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road | 빠숑의 부동산 맛집②

미식가이자 빠숑이라는 필명으로 부동산 시장에 관한 인사이트를 전달하고 있는 김학렬 스마트튜브 소장과 함께 맛집에서 시작하는 동네 임장기를 연재한다.

오는 10월 이주가 시작되는 한남뉴타운 3구역 전경.
강변북로를 타고 일산 방면으로 가다 보면 서울 성수동 주상복합과 한남동 유엔빌리지 등 고급 빌라들의 위용에 압도되곤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남대교를 지나 서빙고로로 갈아타고 오른쪽 보광동 언덕길로 올라가다 보면 좀 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에 놀라게 된다. 서울 한가운데 노른자위 땅임에도 낡고 허름한 달동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 서울의 1960〜90년대 풍경까지 만날 수 있기에 최근에는 레트로 감성을 좋아하는 이들의 핫플이 되기도 했다. 이곳의 여러 맛집 가운데 잠수교집이 있다. 당일 도축한 국내산 돼지고기 삼겹살을 급랭해 내놓는데, 고기 질이 좋을 뿐 아니라 은색 쟁반 가득 담겨 나오는 반찬과 구수한 된장찌개가 일품이다. 포일에 지글지글 구운 냉동삼겹에 명란쌈장을 올린 상추쌈을 한입 가득 넣으면 그 순간만큼은 세상 부러울 게 없다. 그 맛에 잠수교집은 서울과 수도권에 10개 넘는 직영점을 둔 맛집 반열에 올랐다. 냉동삼겹에 소주 한잔 곁들이며 취기가 올라갈 저녁 무렵이면 잠수교집 간판에도 불이 켜진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네온사인이 고장 났는지 '수’ 자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향수로 가득하지만 노후해서 수리가 시급해 보이는 잠수교집 간판은 대대적인 재정비를 앞둔 한남뉴타운의 현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한남뉴타운 4구역에 자리 잡은 잠수교집 본점(오른쪽)과 해방촌 직영점의 냉동삼겹 메뉴.
한남뉴타운은 남산과 한강 사이, 용산구 동빙고동·한남동·이태원동·보광동 일대 111만205㎡를 재개발하는 사업이다. 5개 구역 가운데 해제된 1구역을 제외한 4개 구역에서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규모도 규모이거니와 최강의 입지 덕분에 '단군 이래 최대 재개발’ '재개발의 황제’ 등의 수식어를 얻었다. 특히 지난 6월 말 한남 3구역이 재개발 사업 인허가의 마지막 관문으로 꼽히는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통과, 한남2·4·5구역 사업도 속도를 낼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한남뉴타운 일대가 '강남급 주거 단지’로 탈바꿈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3구역 관리처분 인가로 재개발에 가속도 붙어

고지대에 자리 잡은 2구역에서 내려다 본 풍경. 한남 3구역 한강변의 오래된 아파트. 소방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골목이 많은 탓에 곳곳에 소화기가 비치돼 있다(왼쪽부터).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한남뉴타운의 역사를 해방 이후에서 찾는다. 1945년 광복과 함께 해외에서 돌아온 사람들과 북에서 월남한 사람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피란 온 사람들이 서울 시내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언덕배기인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는 것이다. '해방촌’이라는 이름도 거기서 유래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의 변두리였던 이곳은 강남이 개발되면서 서울의 중심이 됐다.

한남뉴타운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03년 2차 뉴타운으로 선정되면서부터다. 당시 이명박 시장은 낙후된 지역을 대단위로 재개발하고자 뉴타운을 지정했는데, 1차 뉴타운으로 지정된 길음·은평·왕십리가 이미 개발이 완료돼 대단지 아파트 타운으로 거듭난 것에 비하면 한남뉴타운은 상당히 속도가 느린 편이다. 김학렬 소장은 "한남뉴타운은 입지가 너무 좋기 때문에 오히려 개발이 지체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남뉴타운은 워낙 기대감이 높았기 때문에 뉴타운 지정 당시부터 가격이 비쌌어요. 그러다 보니 지분쪼개기가 많이 이뤄져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혔고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의 잡음 등으로 그동안 지지부진했었죠. 그런데 최근 바로 옆에 한남더힐과 나인원한남 등 고급 주거 타운이 형성되고 한강 건너 반포도 평당 1억 원 이상으로 시세가 형성되면서 사업성이 확인됐고, 다시 추진 속도에 탄력이 붙었습니다."

김 소장은 "한남뉴타운은 뒤쪽으로는 삼성, SK, LG 등 재벌가 총수들의 자택이 있고 고급 주택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한남더힐, 나인원한남, 유엔빌리지도 인접해 있다. 왼쪽으로는 전통의 부촌 동부이촌동과 서빙고동이 있다. 반포대교를 건너면 래미안퍼스티지와 래미안원베일리 등 반포 신축 아파트들이 즐비하다. 그동안 낙후됐던 한남뉴타운 개발이 완료되면 한 가운데 구멍이 뚫린 듯했던 서울의 부촌 지도가 비로소 완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업 속도 빠른 3구역, 대장주 5구역, 가성비 좋은 4구역

재개발 진행 속도가 가장 빠른 3구역에는 폐가처럼 방치된 곳도 눈에 띈다.
한남뉴타운이 서울의 새로운 부촌이 될 것이라는 데는 거의 이견이 없지만, 구역마다 진행 속도와 특징이 조금씩 다르다. 우선 한남동 686번지 일대 3구역은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른데다 면적(39만3729㎡)도 전체 뉴타운의 약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 크다. 현재 관리처분계획이 인가돼 빠르면 오는 10월 이주가 시작된다. 현대건설이 시공을 맡기로 했으며, 총 5757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조합원 수가 많아 이주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는 점이 변수다.

"3구역은 강남에서 한남대교 넘어오자마자 보이는 곳인데, 부지가 가장 크고 속도도 가장 빨라 인기가 많았죠. 그러다 보니 지분쪼개기가 많이 됐어요. 5000여 가구에 조합원이 4000명 가까이 되니 일반 분양분이 적어 사업성이 떨어졌죠. 그래서 일반 분양분을 늘리려다 보니까 중소형 위주가 됐어요."

3구역 안쪽, 자동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좁은 골목으로 올라가다 보면 서울 시내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낯선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개발 기대감으로 20년째 방치되는 동안 폐가가 된 곳도 제법 있고, 밭과 수풀도 있다. 3구역은 관리처분계획 인가 후 거래가 제한됐기 때문에 조합원 지위 승계가 가능한 매물은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될 것으로 전망된다. 도시정비법상 재개발 사업의 경우 용산구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관리처분계획 인가 후 조합원이 소유 건축물 또는 토지를 매매·증여 등으로 양도할 경우 원칙적으로 양수인의 조합원 지위 승계가 금지되고 있다. 다만 1세대 1주택자로서 양도하는 주택에 대한 소유 기간이 10년이 넘으면서 거주 기간이 5년 이상인 경우, 생업상의 사정이나 질병 치료 등의 이유로 타 지역으로 이전하는 경우 등에 한해 조합원 지위 승계가 가능하다.

2구역은 사업시행인가를 받고 지난해 대우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했다. 3구역 뒤에 있어 한강과는 가장 멀지만 남산과는 가깝다. 김 소장은 "남산, 부촌 한남동과 가깝고 언덕 지형이기 때문에 조망권이 확보된다. 한남뉴타운이 전반적으로 교통이 취약한데, 2구역은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을 도보로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갖췄다"고 분석했다. 2구역은 조합원 수가 가장 적어서(908명) 사업 속도가 빠를 것으로 예상된다.

동빙고동 일대 18만6781㎡에 2500여 가구가 들어서는 5구역은 한남뉴타운의 실질적인 대장주로 꼽힌다. 소위 말하는 입지 깡패다. 5구역에서 보면 반포 신축 아파트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평지에 한강이 가깝고, 용산공원이 들어서면 걸어서 접근이 가능하다. 중대형 평형 위주로 고급 단지가 들어서는 것도 장점이다.

"여기는 일단 지분쪼개기가 거의 안 됐어요. 그냥 온전하게 단독주택을 갖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거든요. 한강 접근성도 가장 좋고, 신분당선 연장선 동빙고역이 완공되면 걸어서 이용할 수도 있을 거고요. 이런 기대감이 가격에 이미 반영돼, 진행 속도가 가장 늦은데도 불구하고 3구역과 가격이 비슷하게 형성돼 있습니다."

신동아파밀리에아파트를 끼고 한강 변과 맞닿아 있는 4구역은 조합원 수가 1200명, 2595 가구가 들어선다. 다른 구역이 비해 일반분양 비율이 높기 때문에 사업성이 높을 것으로 평가된다. 신분당선 보광역 신설이 추진되고 있는데 확정될 경우 수혜지로 예상된다. 현지 부동산 확인 결과 25평 배정 매물의 시세는 15억~20억 원, 30평대는 25억 원 선이다.

"한남뉴타운 조감도를 보면 4구역 앞에 한강으로 나가는 길을 만들어놨어요. 한강 접근성이 좋다는 이야기죠. 그리고 2·3구역에 비해 속도가 늦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이 있는 데다 조합원 수가 적어서 사업성이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들어가려는 투자자들에게는 가장 가성비 좋은 곳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과 녹사평역 사이 한남뉴타운 1구역은 2017년 3월 정비구역에서 해제됐다. 소위 경리단길이라 불리는 곳이다. 입지상 다른 구역보다 상가 비율이 높은데, 상인들 간 이해관계 조율에 실패한 탓이다. 1구역은 현재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정비지원계획·공공기관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재개발이 신속하게 이루어지도록 지원하는 방식) 공모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개발 마무리되면 평당 1억 원 이상 될 것"

한남뉴타운 5구역에선 한강 너머로 반포 신축 아파트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김 소장은 한남뉴타운은 주변 시세와 미래 가치를 볼 때 사업 완료 시 시세가 평당 1억 원을 넘길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옛 유엔사 부지에 들어서는 고급 오피스텔이 오는 10월 분양 예정인데, 분양가가 평당 9000만 원으로 책정돼 있어요. 호텔급 커뮤니티를 갖춘 하이엔드 오피스텔인데, 완판이 예상된다고 합니다. 인근 한남더힐, 나인원한남 등 고급 아파트의 대형 평형 시세가 평당 1억 원을 훌쩍 넘기고 있으며, 마주하고 있는 반포 지역도 평당 1억 원 이상에 거래되는 점을 감안하면 한남뉴타운 사업 완료 후 시세 역시 평당 1억 원 이상이 될 것으로 봅니다. 한남뉴타운 재개발이 끝나고, 여기에 동부이촌동 한강맨션, 서빙고동 신동아아파트 재건축까지 마무리되면 강북 한강 변의 새로운 스카이라인이 완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재개발·재건축은 흔히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한다. 가장 속도를 내는 3구역도 빨라야 2029년에 입주가 시작된다. 40대에 개발 기대감을 안고 한남뉴타운에 입성한 사람들은 이제 환갑을 넘겼고, 입주할 무렵에는 일흔 가까운 나이가 된다. 사반세기 동안 한남동 명품 입지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들이 과연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얻을 수 있을까.

#한남뉴타운 #빠숑 #여성동아

도움말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 
사진 조영철 기자 이상윤

김명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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