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증하는 검사, 짧아지는 진료"…'3분 진료소'된 대학병원
자본논리에 포획된 병원…김현아 한림의대 교수가 쓴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3분 진료'라는 말이 회자한 건 의료계에서 이미 오래된 얘기다. 대학병원에서 오랜 시간 기다린 끝에 교수를 만나도 짧은 진료 시간 탓에 별다른 말을 듣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가령 이런 상황이 병원에선 자주 펼쳐진다.
환자가 진료실로 들어온다.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의사는 물끄러미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본다. 1분. 최근 불편한 증상이 있는지를 물어본 후 다시 모니터를 본다. 1분. 그러고 나서 짧은 인사를 나눈 뒤 다음 일정을 조율한다. 1분.
그렇게 의사와 환자의 만남은 끝난다. 길어야 3분, 짧으면 1~2분이다. 3분 안에 환자의 변화를 살피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 자리를 기계가 대신한다. 따뜻한 의사의 손길과 위로 대신 환자는 서늘한 CT(컴퓨터단층촬영)와 MRI(자기공명영상)의 감촉을 느끼며 냉소적인 기계음을 들어야 한다. 그러면서 떠오른다. "검사만 하면 되는데 의사가 왜 필요하지?"라는 생각이.
김현아 한림대 의대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신간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에서 "부족한 진료 시간을 땜질하는 것은 아무 생각 없이 내는 검사들"이라며 "그렇게 안 하고 제대로 진료하겠다는 사람은 환자 처리가 답답하고 돈도 못 버는 무능력자로 낙인찍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다. 책에 따르면 어느 날 환자들 사이에서 명망이 높았던 A 교수에게 병원 행정직원이 찾아와 서류를 내밀었다. 그 종이에는 A 교수가 부임한 뒤 처방한 MRI 등 고가 장비 검사 내역이 적혀 있었다. 한 마디로 '성적'이 형편없었다는 뜻이었다. A 교수는 서류를 들춰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직했다.
병원에서 검사를 권하는 건 대체로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실제 검사료와 진료비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예컨대 국내 대학병원 진찰료는 당화혈색소 검사(채혈 검사)의 1.7배 수준이다. 의사가 환자 1명 보는 것보다 피검사 두 번 하는 게 병원 입장에선 이익이다. 반면 미국은 진료비가 채혈 검사비보다 11.3배, 프랑스는 3.7배 높다. 즉 환자 한 사람 보는 행위가 채혈 4~11건 내는 만큼의 돈을 병원에 가져다준다는 얘기다.
국내의 진료비와 검사비의 간극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2005년에서 2019년 사이 진찰료는 45% 인상된 데 비해 항핵항체 검사 수가는 80% 올랐다.
고가 장비로 들어가면 불균형의 왜곡이 더 심해진다.
CT 수가는 진찰비보다 8.6배 높다. CT 검사 한 건이 의사가 환자 여덟명을 진찰하는 것보다 더 이익이라는 얘기다. 병원 입장에선 의사가 꼼꼼히 진료를 보는 것보단 기계를 돌리는 게 훨씬 큰 이윤인 셈이다.
로봇수술의 유행도 비슷한 맥락이다.
로봇수술은 식품의약품안전청(현재의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하에 2005년부터 병원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2020년 기준 5천500여대가 보급됐는데 한국에 96대(1.7%)가 도입됐다. 2016년 61대에서 4년 만에 50%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인생의 코너에 몰린 환자 중 상당수는 복강경 수술보다 많게는 10배 이상 비싼 로봇수술을 선택한다. '최첨단'이라는 말이 주는 기대감과 안도감 때문이다. 환자들은 그 '실체 없는' 말에 손쉽게 기댄다. 그런 환자의 불안을 젖줄로 삼아 로봇수술은 약진하고 있다. "매년 로봇수술의 증가율은 16%에 육박"한다. 이처럼 로봇 수술은 점차 대세로 자리 잡아 가고 있으나 복강경 수술보다 우월하다는 증거가 별로 없다. 오히려 진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2018년 한양대 의대 김정목 교수팀이 복강경·로봇수술 성적을 비교한 연구에 따르면 기존 복강경 수술은 수술 시간, 합병증 비율, 비용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로봇수술보다 우수했다. 로봇 수술이 우수한 항목은 출혈량 감소 한 가지에 불과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2만4천여명의 신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복강경과 로봇수술을 비교한 결과, 합병증과 입원 기간은 두 수술이 비슷했고, 수술 시간은 로봇수술이 더 길었다.
김 교수는 "작금의 로봇수술 열풍은 제대로 된 비용 분석 없이 책정된 보험 수가, 90%가 사유재산인 병원 경영에 대한 완전한 수수방관이 자본주의와 만난 결과"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 밖에도 상대적으로 싼 진료비, 부족한 의료 재정, 거침없이 오르는 약값, 동네병원 진료 수준의 전반적 하락, 갑상샘암 수술 등 불필요한 치료의 성행 등 민감한 의료계의 이슈를 들춰내며 각각의 현안에 비판의 메스를 가한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그저 마케팅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듯 기술이 지배하는 의료의 시대에 인간은 그저 하나의 이상 수치로 환원되고, 그의 삶을 구성하는 다른 모든 맥락은 지워진다. 다시 인간을 소환해야 하는 문제는 비단 의료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돌베개. 275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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