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꾼 이중섭… ‘최애’에 대한 애정으로 빚은 작품세계[북리뷰]

유승목 기자 2023. 8. 1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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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섭, 편지화
최열 지음│혜화1117
■ 이중섭, 그 사람
오누키 도모코 지음│혜화1117
은박지 등에 담긴 필치·색감
아내·아들에 대한 사랑 가득
“글과 그림이 조화 이룬 예술”
7년 부부생활 뒤 70년의 헤어짐
마사코 여사 기억 속의 이중섭
비극적 사랑 아닌 해피엔딩 담아
이중섭 ‘도원’. 통영에서 지낼 당시 완성한 작품으로 복숭아 열매가 주렁대는 숲속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이다. 이중섭의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천인합일 세계관이 드러난다. 65x76㎝, 종이에 유채, 개인. 혜화1117 제공

“화공 이중섭 군은 반드시 가장 사랑하는 현처 남덕 군을 행복한 천사로 높고 아름답고 끝없이 넓게 이 세상에 도드라지게 보이겠소…나의 가장 사랑하는 아내 남덕 천사 만세, 만세.”(이중섭 편지화 ‘당신이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에서)

사랑꾼. 이중섭을 요즘 말로 설명하자면 이보다 어울리는 표현이 있을까. 사랑은 ‘인간 이중섭’을 지탱하는 삶의 본질이었고, ‘화가 이중섭’은 붓을 놓는 날까지 여러 형태의 사랑을 그려냈다. 이런 이중섭이 ‘나의 최애(最愛)’라는 낯간지러운 표현을 서슴지 않으며 평생을 열렬히 추앙했던 대상이 있으니,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1921∼2022)다.

‘세기의 수집가’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아끼고 미술애호가들이 열광했던 이중섭의 작품 세계는 ‘남쪽에서 온 덕 있는 여인’이라며 직접 이남덕(李南德)으로 이름 지어준 마사코 여사를 향한 애정으로 지어졌다.

화가 이중섭의 미술적 성취를 논하자면 5년 전 47억 원에 낙찰된 ‘황소’로 대표되는 들소 연작이 떠오르지만, 사실 이중섭 작품을 감상하러 온 관람객들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엔 편지화가 있다. 버려진 담뱃갑 속 은박지나 거친 질감의 엽서 같은 싸구려 재료지만 글씨와 함께 그은 선은 생동감이 넘치고, 칠해진 색은 풍요롭기 때문이다. 좌절과 절망의 시기에 그린 편지화는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 그리고 함께 낳은 두 아들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가득한 가장 이중섭다운 작품인 셈이다.

이중섭의 예술 세계를 오랜 시간 천착해 온 미술사학자 최열은 편지화를 이중섭이 독창적으로 창안한 하나의 미술 장르로 규정하고 예술적 정체성을 부여한다. 2014년 ‘이중섭 평전’을 완성한 지 10년째 되는 올해 ‘이중섭, 편지화’를 선보인 이유다. 최열은 이 책에서 이중섭의 편지화 장르를 하나로 묶어 범주화하고 시대를 나눠 미학적 측면에서 의미와 내용, 형식을 살핀다.

위쪽부터 1945년 원산에서 치른 이중섭과 야마모토 마사코의 결혼식, 이중섭, 야마모토 마사코의 모습. 혜화1117 제공

그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평생 미술사를 연구하면서 작가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번엔 이중섭이 남긴 작품을 발견하며 그의 예술 세계를 확장해서 보는 계기가 됐다”면서 “편지화는 고통스럽고 불행한 삶을 돌파하고 싶은 이중섭의 사랑과 희망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편지화는 1952년 마사코 여사와 두 아들이 송환선을 타고 현해탄(겐카이나다·玄海灘)을 건너면서 외톨이가 된 이중섭이 쓰고 그리기 시작했다. 이중섭은 “편지를 보낼 때마다 그림을 그려 함께 보내겠소”라며 아내와의 사랑, 단란했던 가정 생활에 대한 추억, 반드시 재회하겠단 의지를 담은 그림을 그려 일본으로 보냈다.

“편지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최열은 이중섭이 부산과 통영, 서울을 거치며 남겼던 대표적인 작품들을 설명하며 글과 그림이 조화를 이룬 하나의 예술이라고 평가한다.

절절한 사랑의 찬가를 그 혼자 불렀겠는가. 사랑꾼이 남긴 편지화가 와 닿을 때쯤, 또 다른 책 한 권이 나란히 출간됐다. ‘이중섭, 그 사람’은 편지화의 수신인 야마모토 마사코의 기억으로 이중섭의 사랑을 증명한다. 고작 7년 남짓한 부부 생활을 마친 후 70년 가까이 홀로 살았던 야마모토 마사코를 이해하기 위해 7년간 마사코 여사를 취재한 오누키 도모코(大貫智子) 마이니치(每日) 신문 기자가 이중섭 부부의 사랑을 새로운 시선으로 설명한다.

이중섭 ‘현해탄1’. 일본에서 지내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편지화로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작품이다. 증기를 내뿜는 함선을 타고 현해탄(지금의 대한해협)을 건너 가족을 만나러 가려는 의지가 표현돼 있다. 21.6x14㎝, 종이에 색연필과 유채, 서귀포 이중섭미술관. 혜화1117 제공

이 책은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마사코 여사의 삶을 조명하며 이중섭 부부의 비극적 서사에 조금 다른 엔딩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인이 이중섭을 사랑하는 배경엔 그가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이란 인식도 한몫한다. 하지만 이중섭과 헤어진 지 60년이 지나서도 “나의 아고리(이중섭의 애칭)는 지금도 살아있다”며 추억을 그리고, 남편의 편지화를 간직했던 마사코 여사의 모습을 보면 이중섭의 사랑은 꽤 성공적이었다고 결론 내릴 수도 있다.

마사코 여사는 지난해 이맘때쯤 이중섭을 만나러 떠났다. 반세기를 훌쩍 지나 재회한 서로를 누가 더 반길까. 책 출간을 맞아 한국을 찾은 도모코 기자는 문화일보에 이렇게 말했다. “남편을 놓고 일본으로 떠난 아내를 두고 다정하지 않았다는 이미지도 있는 것 같지만, 어쩌면 마사코 여사가 더 사랑했을지도 몰라요. 마사코 여사가 쓴 편지도 책에 많이 실었는데, 그런 마음이 한국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면 좋겠어요.”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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