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 출신 재미교포 여성… 허기 그 이상을 채운 ‘음식’[작가의 서재]

2023. 8. 11. 09:1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오래전 유럽으로 배낭 여행을 떠났을 때,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뱃속에서 이는 한식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깨닫고 깜짝 놀랐다.

그런 측면에서 '전쟁 같은 맛'은 전쟁을 겪으며 살아남고자 애썼던 한 여성을 통해 음식과 우리 삶의 상관관계를 반추하는 회고록이자, 트라우마가 인간의 무의식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를 엿보게 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작가의 서재

오래전 유럽으로 배낭 여행을 떠났을 때,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뱃속에서 이는 한식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깨닫고 깜짝 놀랐다. 이래서 사람들이 고추장이니, 김치니 챙겨 가라고들 했구나, 하고 충고를 곧이듣지 않은 자신을 원망했다. 평소 한식을 자주 먹지 않았던 터라 자신만만하게 사양했는데, 정말이지 그럴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누군가가 먹는 음식은 그 사람이 살면서 겪는 경험의 큰 축이며, 정서의 기본 토대가 된다는 사실을. 당시 경험한 한식에 대한 극심한 허기는 난생처음 디딘 낯선 땅에서 느낀 불안과 공포, 떠나온 곳에 대한 그리움 그 자체였다.

그레이스 M. 조의 ‘전쟁 같은 맛’(글항아리)은 우리가 먹는 음식이 우리의 삶, 몸, 한층 더 나아가 정서와 무의식에까지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준다. 백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저자는 아이비리그에 진학한 뒤대학교수가 됨으로 미국 주류 사회에 편입하는 데 성공한다. 문제는 딸을 위해 헌신과 열정을 바치던 어머니가 이런 기쁨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병들었다는 것. 이주 여성으로서의 고충과 하다못해 남편의 폭력까지도 묵묵히 견디며 아이들을 보살피고, 육체노동과 개인 사업까지 너끈히 건사하던 어머니 ‘군자’는 저자가 15세이던 무렵부터 조현병을 앓기 시작한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증세는 악화되고, 병을 앓는 어머니를 가까이 지켜보던 딸은 그토록 똑똑하고 열정적이며 아름답던 어머니를 아프게 만든 원인에 대해 오랜 세월 고민한다.

저자의 기억 속 어머니는 유난히 음식에 예민하고 요리에 집착했는데, 이는 조현병 발병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레이스는 무언가를 요리하고 먹임으로써 그런 어머니를 돌보고, 음식이 어머니에게 있어 자신을 외부인으로만 대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히고 생계를 유지하는 방식’이었음을 깨닫는다. 음식에 대한 엄마의 유난한 집착이 ‘보살핌의 몸짓인 동시에 저항의 행동’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한편 그레이스는 성장 과정에서 우연한 계기로 어머니가 한국에서 기지촌 출신이었음을 알게 되는데, 훗날 어머니의 발병 이후 그저 수치스럽고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던 이러한 정보를 다시금 되짚어 보게 된다. 어머니가 투병 과정에서 보였던 여러 징후, 폭력에 대한 극심한 공포, 경계심과 불안, 특정 정보에 대한 과민반응 등, 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며 여성들이 어떻게 착취당했는지, 국가적 차원에서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이용당하면서도 온갖 낙인과 차별로 어떻게 고통받았는지,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늘 외부인으로 떠돌았던 이주 여성들의 상황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전쟁 같은 맛’은 전쟁을 겪으며 살아남고자 애썼던 한 여성을 통해 음식과 우리 삶의 상관관계를 반추하는 회고록이자, 트라우마가 인간의 무의식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를 엿보게 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독자는 그레이스가 전하는 엄마 군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의 삶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고통과 상처가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된다. 무엇이 우리를 아프게 하는지, 무엇이 우리를 미치게 하는 지에 대해서도. 그리고선 하나의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사실 군자는 조현병을 앓지 않아도 되었다는. 앓지 않을 수 있었다는.

한승혜 작가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