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광장] 국가 망신
정부, 예견 문제 준비 소홀 비난 자초
국격 훼손과 국민들 자존심 큰 상처
중학교 때 일이다. 같은 반 친구가 강원도 고성군에서 열리는 세계잼버리 대회에 참가한 것. 열흘 가까이 세계에서 모인 또래 친구들과 야영을 한다는 것에 신기하기도 했고, 부러웠던 생각도 든다. 얼핏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 친구가 세계잼버리를 갔다 온 후 이런저런 얘기도 듣고, 세계 친구들과 나눠 가졌다는 기념품도 볼 수 있었다.
당시 자료를 찾아보니 '17회 세계잼버리'는 1991년 8월 8-16일까지 강원도 고성군 신평벌에서 열렸다. 당시 최대 규모인 총 135개국에서 만 14-17세 청소년 스카우트대원 등 1만 9092명의 인원이 우리나라를 찾았다. 이 기간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이 8박 9일의 일정을 마치고,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는 좋은 평가 일색이었다.
그 후 32년이 흘러 또다시 우리나라에서 다시 열린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앞서 2017년 8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1차 세계스카우트총회'에서 우리나라는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개최국으로 선정됐다. 그렇게 전북 부안군 새만금에 158개국에서 4만 3000명의 청소년들이 몰려들었다. 지난 1일부터 12일까지 일정으로 전 세계 청소년들의 야영 축제는 시작됐다. 광활한 새만금에 펼치진 텐트가 장관을 이뤘다. 이미 고성의 경험도 있고, 6년간의 준비 기간이 있었던 만큼 또 한 번의 국제대회 성공 개최를 기대했다.
근데, 실상은 엉망진창이다. 고난을 이겨내는 스카우트의 도전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호텔 등에 머물면서 전국 관광을 하고 있는 전 세계 스카우트를 보고 있자니 기막힐 노릇이다. 현재 팔도에서 관광을 하는 스카우트에게 우리 국민들은 연신 미안하단다. 11일 예정된 K팝 콘서트로 성난 스카우트들의 마음을 달래야 하는 딱한 처지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어쩌면 야영장소가 새만금이라 예견된 일이었다. 이미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유치 때부터 새만금은 폭염, 태풍, 침수 등이 취약하다는 우려가 있었다. 새만금이 바다를 메워 조성한 간척지로 나무를 심지 않을 경우 그늘 한 점 없기에 8월 폭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반이 약할 수밖에 없고, 배수 문제로 침수 가능성도 많다. 여기에 매년 되풀이 되는 태풍도 우려 요인 중 하나였다. 때마침 6호 태풍 '카눈'이 한반도로 북상하는 등 모든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전북 부안군이 국내 경쟁에서 강원도 고성을 제치고, 잼버리 유치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정치적 목적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순수 국제행사에 국내 정치가 끼어들면서 스텝이 꼬인 것. 민주노총 전북본부가 지난 3일 '새만금 잼버리 행사 즉시 중단해야'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예견된 참사'라고 꼬집었다.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문재인 정부, 전북도, 민주당 정치인은 새만금 잼버리 행사를 빌미 삼아 새만금 신공항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했다"며 "이렇게 졸속 추진된 새만금 신공항 사업의 실상은 미군기지 제2활주로 건설 사업이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 정부는 무엇을 했단 말이냐. 예견한 문제에 준비 소홀 등으로 비난을 자초한 꼴이다. 8월 폭염에 온열환자와 벌레 물림 환자 등이 속출하고, 위생 불량 화장실, 천막 샤워장, 부실한 식단 등의 불만이 쏟아졌다. 국·내외 언론을 비롯, 전 세계 스카우트 학부모들의 비난 속에 현실판 오징어 게임, 난장판, 난민촌 등 조롱거리가 됐다. 그 많던 1000억 원이 넘는 예산은 도대체 어디에 썼나.
윤석열 대통령부터 한덕수 국무총리, 이상민 행안부 장관 등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 약속으로 뒤늦게 소 잃고 외양간은 고쳤다. 그러나 가장 많은 스카우트를 보낸 영국을 시작으로 미국과 싱가포르 등의 조기 퇴영을 막지 못했다.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이것으로 사실상 막을 내린 셈이다. 그것도 국격 훼손은 물론 국민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기면서…. 정부나 지자체, 정치권 등 어느 하나 이번 사태에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자중지란'이다.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서 이렇게 부끄러울 때가 또 얼마나 있었을까. 말 그대로 '개망신'이다.
Copyright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X로 죽이고 싶다"…尹, '신변 위협 글' 올라와 '경찰 추적 중' - 대전일보
- 세종시, 정원박람회 '2026년 가을' 공식화…최 시장 "예산 통과" 호소 - 대전일보
- 尹대통령 "당정이 힘 모아서 국민 편에서 다시 뛰자" - 대전일보
- 학령인구 감소, 수도권 쏠림 심화에… 지역 대학 위기감 커진다 - 대전일보
- 학교서 스마트폰 사라지나… 교내 사용 금지법 '속도' - 대전일보
- 대전시-국회의원 조찬 간담회…국비 확보 초당적 협력 - 대전일보
- 95만 원 빌려주고 '1100만 원' '꿀꺽'…불법 대부 조직 구속 기소 - 대전일보
- 박단, 여야의정 첫 회의에 "전공의·의대생 없이 대화?…무의미" - 대전일보
- 尹 “임기 후반기, 소득·교육 양극화 타개 위한 전향적 노력" - 대전일보
- 이장우-野국회의원, 두 번째 간담회서 설전… 국비 확보 방식 '대립' - 대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