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에도 꺾이지 않는 '영끌'…한국은행의 딜레마
긴축사이클 종료 기대·당국 규제완화에 주택거래 활발
기준금리 변화보다 당국 정책 변화 요구
[서울=뉴시스]남주현 기자 = 고금리에도 지난달 은행 가계대출이 4개월 연속 늘면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가계 빚 증가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으면서 2주 앞으로 다가온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1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7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잔액은 1068조1000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6조원 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4개월 연속 증가세로 7월 증가폭(6조원)은 2021년 9월(6조4000억원) 이후 22개월 만에 최고치다. 은행권 가계 대출은 대출금리 인상 등의 여파로 1월 4조6755억원, 2월 2조7561억원, 3월 7109억원씩 감소하다가 4월부터 상승 전환했다.
가계대출 증가를 견인한 건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다. 7월 주담대는 전월보다 6조원 늘어난 820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2021년 7월 기록한 6조원 이후 가장 큰 증가 폭으로 5개월 연속 상승세다.
고금리에도 아파트 매매 증가에 주택 구입 자금 수요가 늘어난 이유가 크다. 예금은행의 주담대 가중평균금리는 5월 4.21%에서 6월 4.26%로 올랐다. 9일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전날 기준 주담대 고정형(혼합형) 금리는 연 3.89~6.173%로 높아졌다.
그럼에도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올해 4월에는 3만4000가구에서 5월과 6월 각각 3만7000가구, 3만6000가구로 되레 많아졌다.
금리 오름세에도 가계가 아랑곳하지 않고 주택을 사들이는 이유로는 내년부터 기준금리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높아진데다 부동산 연착륙을 위해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완화된 점이 거론된다.
정부는 연초 대부분 지역의 분양가 상한제 해제와 9억 이하 주택에 시중금리보다 낮은 수준으로 대출해 주는 특례보금자리론을 시행 중이다.
이 영향으로 통상 2~3개월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주담대가 3월부터 상승전환했고 주담대도 4월부터 반등했다는 얘기다. 지난달부터는 전세보증금 반환용 대출도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산정에서 제외됐다.
7월 금통위에서도 최근 가계부채 오름세에 당국의 정책이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금통위원은 "최근 주택 대출의 증가는 정책 변화가 상당 부분 영향을 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은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한은은 7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결정 근거로 처음으로 가계부채를 명시한 바 있다. 이창용 총재는 가계부채 문제를 통화 정책의 중요한 목표의 하나로 설정하고 대응하겠다고 시사했다.
하지만 가계부채만 고려하기에는 금리를 올리기에도 내리기에도 난감한 상황이다. 금리를 낮추자니 가계 대출이 더 치솟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가계 부채가 높아지면 소비 여력이 줄어들며 경기에 악영향을 미친다.
금리를 높이면 가계대출 급증세는 막을 수 있지만 안그래도 치솟는 대출 금리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된다 취약차주와 부동산 PF불안에 따른 금융위기 위험성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대출금리 상승세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국채 금리가 들썩이며 주담대 고정금리의 기준이 되는 금융채(AAA) 5년물은 5월 3.8%에서 최근 4.3%까지 뛰었고 변동금리 기준인 코픽스(자금조달비용지수)도 5월과 6월 두 달 연속 올라 4월보다 0.26%포인트 상승했다.
올해 1분기 1977만명에 달하는 가계대출 차주 가운데 175만명은 상환액이 소득과 같거나 더 많았고 이들을 포함해 299만 명은 원금과 이자를 갚느라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리 인상은 이들의 부채 부담을 높여 금융위기의 뇌관으로 작용할 우려가 높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경기 침체와 부동산PF, 취약차주를 고려하지 않고 금리를 높이기는 어렵다"면서 "우선 이달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향후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봤다.
한은 역시 당장 금리 변화보다는 정부의 정책 변화를 요구하는 분위기다. 7월 금통위에서 한 위원은 "규제 당국이 예전의 방식대로 관리하게 되면 가계부채 비율을 낮추기 어려워 보인다"면서 "규제 당국도 가계부채 관리의 구조적인 측면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위원은 "LTV(주택담보대출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 및 DSR 등을 감안해 거시건전성 정책 규제 강도를 지수화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전날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과 '가계부채 현황 점검회의'를 열고 50년 만기 주담대와 인터넷은행의 비대면 주담대에 대한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특례보금자리론도 가계대출 추이에 따라 하반기 공급속도를 조절하기로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njh32@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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