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기후 정책, 고쳐 쓰면 지원금을 드립니다
아껴 쓰고, 고쳐 쓰고, 오래 쓰는 것도 기후 대책이 된다. 프랑스 정부가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다양한 자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20년 2월에 제정한 ‘순환 경제를 위한 낭비방지법(일명 AGEC법)’이 시초다. 기존 생산·소비 방식을 자원순환형으로 바꿔서 낭비를 막고 생물 다양성과 환경보호를 추구하는 법안이다. 이 법안은 다섯 가지 정책적인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일회용 플라스틱 퇴출, 소비자에게 더 나은 정보 제공, 낭비 방지 및 재활용 장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새 제품을 사야 하는 ‘계획된 구식화’ 시스템 방지, 그리고 ‘더 나은 생산’이다.
법안에 따라 프랑스 정부는 2040년까지 일회용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고, 재사용과 재활용을 늘리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기업에도 소비자에게 구체화된 분리배출 방법을 제공하고, 상품 구매 시 법적 보증기간 정보 제공을 의무화하게 했다. 비식품 재고를 폐기하는 대신 기부할 수 있게 하고, 식품의 경우 2025년까지 낭비를 50% 이하로 줄일 것을 주문하고 있다. 오염자 부담 원칙을 통해 재활용 기금을 마련하고, 생산업체에 5개년 폐기물 처리 방안 제출을 의무화하는 등 기업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자원순환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정부가 특히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정책이 바로 ‘계획된 구식화 방지’다. 한마디로 물건을 더 오래 쓸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생산자는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놓고 수선 기금을 부담하며, 소비자에게는 가지고 있던 제품을 고치는 ‘수선 보너스’를 제공하는 정책이다. 이 정책이 가장 먼저 적용된 분야가 소형 가전을 비롯한 전자제품이다. 전자제품 생산자는 2021년 1월1일부터 제품을 판매할 때 ‘수선가능지수(Indice de reparabilite)’를 제품에 표기해야 했다. 스마트폰, 텔레비전, 노트북, 세탁기, 예초기 등 제품마다 각 부품의 가격 및 가동률, 조립 난이도 등에 따라 1점부터 10점까지 수선 가능한 정도를 지수로 매겨 표기하는 식이다. 이 수선가능지수는 2024년부터는 더 상세한 기준이 추가된 ‘내구성지수’로 대체될 예정이다. 시민단체 ‘계획된 구식화 반대(HOP)’ 대표인 레티샤 바쇠르는 2021년 2월 라디오 프랑스앵포 인터뷰에서 “진정한 혁신은 2024년에 적용될 내구성지수일 것이다. 소비자로서나 지구를 위해서나 가장 관심 있어 하는 것은 제품의 내구성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생산자의 정보 제공에 그치지 않고, 프랑스 정부는 직접 수선 비용을 지원하는 정책까지 나아가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해 12월15일부터 소비자에게 전자제품 ‘수선 보너스’를 제공하고 있다. 2027년까지 5년간 4억1000만 유로(약 5815억원)를 투자할 예정인 이 보조금(수선 보너스)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지불한 환경부담금으로 마련한 기금에서 제공된다. 예를 들어 커피머신은 최대 10유로(약 1만4000원), 세탁기는 25유로(약 3만5000원), 노트북은 45유로(약 6만3000원)까지 수선비를 제공하는 식이다. 수선 보조금은 수리비(수선 비용) 지불 과정에서 바로 공제되고, 수선업자가 공제된 금액을 환급받는 방식이다. 보조금을 지원받으려면 정부 인증 라벨을 받은 수선업자에게 맡겨야 한다.
과감한 정책이지만 아직 호응은 미진한 편이다. 지난 4월21일 라디오 프랑스앵포의 보도에 따르면, 정책 시행 직후 4개월간 소비자들이 받은 전자제품 수선 보너스는 약 50만 유로(약 7억871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당초 1년 동안 투자할 예정이었던 6200만 유로(약 878억원)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같은 날 정부는 보조금을 두 배로 늘리고, 대규모 수선업체들의 라벨 인증 참여를 장려하며, 수선업자의 등록비를 내리겠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미미한 성과는 수선 보너스 정책의 맹점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간지 〈르파리지앵〉은 4월20일 “대형 전자제품 업체들이 정부의 인증 라벨을 얻기 싫어하는 기색을 보인다”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는 “프낙(Fnac)이나 다르티(Darty)와 같은 전자제품 소매 체인과 애플 같은 제조사들이 정부의 수선 보너스와 업체 자체의 보증 프로그램이 경쟁 양상을 띠기 때문에 계속해서 저항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소매 수선업자들에게는 500유로(약 71만원)에 해당하는 등록비도 부담이다. 4월21일 베랑제르 쿠이야르 환경부 차관은 “4월까지 수선업자 1500명을 공식 라벨 등록하는 게 목표였으나 이루지 못했다”라면서 등록비를 절반인 250유로로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정책 홍보가 미진한 영향도 있었다. 프랑스 3 TV 채널의 보도에 따르면, 대다수 소비자들이 수선비 지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수선비 지원 정책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소비자도 많았다.
“의류산업은 환경오염을 심각하게 일으켜”
프랑스 정부는 정책의 폭을 더 넓힐 예정이다. 7월11일 프랑스 정부는 올해 10월 중순부터 적용될 또 하나의 ‘수선 보너스’ 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의류 수선비도 보조금이 적용된다. 베랑제르 쿠이야르 차관은 최근 AFP와 인터뷰하면서 “의류산업이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가장 환경오염이 심각한 산업이며, 매년 프랑스에서 의류 70만t이 버려지고 그중 3분의 2는 매립된다. 이 정책이 수선업자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일자리 재창출로도 이어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의류 수선 보너스는 신발 뒤축 수선에 7유로(약 9900원), 안감 수선에 10~25유로(약 1만4000~3만5000원)를 지원한다. 2028년까지 5년간 약 1억5400만 유로(약 2187억원)를 투자하며 이 지원금 역시 환경부담금으로 조성한 기금에서 지원한다.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7월12일 프랑스 3 TV 채널은 정부가 의류 수선업자 500명에게 공식 라벨을 부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아직까지 서류를 제출한 업자는 250명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수선업자의 조직망이 촘촘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수선 보너스를 받으려고 50~100㎞를 차를 타고 이동할 순 없다는 걸 모두 이해할 것이다. 동기부여가 덜해 환경적 관심이 불분명해질 것이다”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7월13일 프랑스 3 브르타뉴 지역 채널에 출연한 지역 수선업자들은 보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수선 전후 사진을 보내서 증명해야 환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행정적으로 부담이 더 된다.” “환급받으려면 15일이나 기다려야 하니까 너무 길다.” “등록하려면 인터넷을 통해야 해서 어렵다.”
라니옹 지역에서 일하는 수선업자 바네사 씨는 “사람들은 의류 자체의 질이 별로 좋지 않으면 버린다. 5유로에서 10유로 하는 바지를 수선해본 적 있지만, 내가 하는 일(수선)이 바지보다 더 비싸다”라고 응답하기도 했다. ‘패스트 패션’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정책이 오히려 패스트 패션의 저렴한 가격 때문에 가로막히는 형국이다. 이처럼 프랑스 정부가 환경보호와 순환경제를 목표로 내건 수선 보너스 정책은 프랑스 국민들의 긍정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정책 대중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는10월 중순부터 시행될 의류 수선비 지원 정책이 전자제품 수선비의 길을 따르지 않고 패션의 나라 프랑스에서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파리∙이유경 통신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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