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력 더 떨어질까” 조기 종료한 ‘김은경 혁신위’
“혁신위원회 스텝이 많이 꼬였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혁신위원회(혁신위)를 지켜보던 한 민주당 재선의원의 평가다.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혁신위가 출범 두 달이 되도록 당에 필요하고 유권자에게 와닿는 혁신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구성원들의 잇따른 설화로 당에 부담이 된다.'
민주당은 6월20일 혁신위를 띄웠다.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김남국 의원의 ‘코인 논란’이 불거지던 시점이었다. 혁신위 구성은 지지부진했다. 6월5일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된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이 ‘천안함 자폭’ 등 과거 발언 논란으로 임명 당일 9시간 만에 자진 사퇴했다. 열흘 뒤 김은경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김은경 혁신위’는 가장 먼저 ‘불체포특권 포기에 대한 의원 전원 서약서 제출 및 당론 채택’을 요구했다. 김은경 위원장은 ‘응급조치’였다며 “이 부분(방탄 논란)을 정리해야 혁신안을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혁신안은 한 차례 논의가 미뤄지고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가 두 번 요청한 끝에야, ‘정당한 영장 청구’라는 조건을 달고 7월18일 의원총회에서 받아들여졌다. 당 지도부는 혁신안 "전폭 수용"을 약속했는데, 이런 결정 과정을 지켜보며 혁신위 동력이 떨어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혁신위 관계자는 이렇게 반박했다. “불체포특권 포기를 던질 때부터 상당히 시간이 걸릴 거고 (수용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100% 지켜지지 않으리라는 것도 예상했다. 그런데 혁신위가 없었다면 불체포특권 포기를 끌어낼 수 있었을까? 이 권리가 합당한지와 별개로 체포동의안 부결 과정에서 민주당에 방탄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불체포특권 포기는 민주당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민주당은 중요 선거를 앞두거나 당이 위기에 처할 때면 혁신위를 꾸렸다. 김은경 위원장은 2010년부터 최근까지의 당 혁신위 자료를 검토한 결과, 매번 혁신위가 등장한 첫 번째 이유로 ‘계파 갈등’을 꼽았다. 취임 일성에서도 ‘당내 분열을 조장하는 시도’에 대해 경고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검색 서비스 빅카인즈에서 ‘비명(이재명)계’라고 검색하면 2022년 4월부터 관련 기사가 나온다.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의 서울시장 후보 전략공천이 확정된 때다. 이후 수면 위로 드러난 당내 계파 갈등이 지금껏 계속됐다. 빅카인즈에 ‘비명계’를 검색한 결과, 2022년 총 1413건이던 기사량은 2023년(8월2일 기준) 5183건으로 늘었다.
혁신위도 출범할 때부터 ‘친명(이재명)계’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한 비명계 의원은 “어차피 혁신위는 관심 밖이다. 혁신위가 대선·지선 패배의 원인과 이재명 대표 체제 1년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않는다. 성역을 만들어놓으면 제대로 된 혁신안이 나오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7월21일 혁신위가 발표한 ‘1차 혁신안’이 계파 갈등의 방아쇠가 됐다. 이날 나온 ‘윤리 정당 방안’에는 돈봉투 의혹과 김남국 의원 코인 의혹에 대한 당의 책임 있는 태도, 시민감찰관제 도입, 선출 공직자 대상 정기 자산 감찰 실시 등이 담겼다.
이 중 관심을 끈 내용은 체포동의안 ‘기명 표결’ 정도다. 불체포특권 포기를 지지했던 비명계 의원들이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의원들에게 낙인이 찍힐 것’이라며 반발했다. 혁신위 관계자는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논의가 흘러갔다. 기명투표는 ‘방탄’을 하지 말자는 취지로 불체포특권 포기 때부터 같이 논의됐던 사안이다. 책임 있게 투표하라는 의미인데 혁신위가 이 부분을 잘 설명할 타이밍을 놓쳤다”라고 말했다.
혁신위가 눈여겨볼 만한 혁신안을 내놓지 못하는 동안, 김은경 위원장의 설화가 더 주목받았다. 7월30일 김 위원장이 ‘2030 청년간담회’에서 했던 ‘여명에 따른 비례투표제’ ‘미래가 짧은 분들’ 등의 발언을 두고 '노인 폄하' 논란이 따라붙었다. 혁신위는 비판이 나온 직후 청년들의 정치 참여 독려라는 발언 취지를 강조하며 “구태적인 프레임이자 전형적인 갈라치기 수법(7월31일)” “사과할 일이 아니다(8월1일)”라고 대응했다.
비판이 더 커지자 김은경 위원장이 직접 “내가 곧 60세다. 곧 노인 반열에 들어가는데 어떻게 노인을 폄하하겠냐(8월1일)” “교수라 철없이 지내서 정치적 언어를 잘 모르고, 정치적 맥락과 뜻을 깊이 숙고하지 못했다(8월2일)”라며 유감을 표했다. 8월2일에는 박광온 원내대표가 나서 “민주당은 특정 세대에게 상처를 주는 언행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고개를 숙이자, 다음 날인 8월3일 김은경 위원장도 “앞으로 이런 상황을 일으키지 않도록 더욱 신중하게 발언할 것"이라며 사과했다.
민주당 혁신위 활동을 했던 한 관계자는 일련의 상황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혁신위 특성상) 어떤 혁신안을 내도 반대하는 의원들이 있기 때문에, 혁신안을 끝까지 관철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혁신위 자체가 의원들에게 신뢰를 얻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김은경 위원장은 스스로 혁신위를 향한 신뢰를 깎아먹고 혁신위 동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여의도 이슈에 함몰됐다”
일부 의원은 혁신위가 지역을 돌며 간담회를 열던 당시, 강성 지지층의 편중된 의견을 듣게 될 거라고 경계했다. 혁신위는 ‘당원·국민 혁신 제안’ 1816건 중 58%가 ‘대의원제 폐지’라고 밝혔다. 8월1일 인천에서 열린 당원 간담회에서도 대의원제 폐지를 강조하는 의견이 많았다. “불체포특권 포기는 당원이 바라는 본질과 떨어져 있다” “‘내부 총질’하는 사람을 인적 쇄신해야 한다”라는 주장에 환호성이 나왔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꾸려진 혁신위(혁신위원장 장경태 의원)에 참여했던 한 혁신위원은 “(활동하는 동안) 의원들에게 직접 문자까지 보내는 당원들이 부담스러웠던 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장경태 혁신위’는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하도록 규정한 ‘당헌 80조’를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전해지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헌 80조 삭제’는 주로 강성 당원들이 요구해온 의제였다. 이후 장경태 혁신위는 ‘대의원 영향력 축소’ 등을 최고위원회에 전달하고 활동을 마쳤다.
혁신위 활동을 불신하는 의원들은 혁신위가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조롱거리가 되거나 불필요한 계파 갈등을 일으킬까 우려한다. 앞서 재선의원은 당장 이재명 대표의 책임을 물었다. “당대표가 혁신위를 구성했으니 대표에 대한 평가로 이어질 거다. 애초 혁신위 구성부터 따져야 한다.” 당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혁신위가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지도부가 연석회의조차 안 한다. 당 지도부와 혁신위를 굳이 억지로 연결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혁신위와 간담회를 가진 한 초선의원은 혁신위의 성패가 결국 혁신안에 달려 있다고 내다봤다. “국민 시선에서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때려야 한다. 그게 의원들에게 아프고 국민이 보기에 100%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민주당이 노력한다고 느껴지면 뒤뚱거리며 또 뭔가를 만들어가는 게 정치다.”
하지만 혁신위는 8월10일 당 조직·공천 규칙·정책 정당 혁신안을 발표하고 애초 9월 초로 예정되어있던 활동을 조기 종료했다. 이날 김남희 혁신위 대변인은 “우리의 불찰이기도 하고 여러 공격이나 비난이 있어서 동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준비된 안을 내놓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라고 조기 종료 이유를 설명했다. 혁신위 출범의 계기가 됐던 도덕성 회복을 위한 방안은 현역 의원 평가에 ‘공직윤리’ 항목을 신설하는 데 그쳤다. 혁신위는 법이 정한 공직윤리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국회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하라고 요구했다.
당 내부에서는 혁신안 중 ‘대의원제 축소안’과 ‘현역 의원 공천 패널티 강화’를 두고 의원들의 반발이 클 거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혁신위는 당대표와 최고위원 선거를 권리당원 70%와 국민 여론조사 30%로 선출하라고 제안했다. 현행 민주당 당 지도부 선거는 권리당원 40%, 대의원 30%, 여론조사 25%, 일반당원 5% 비율로 치러진다.
민주당 의원들과 당 지도부가 혁신안을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8월10일 윤건영 의원은 “(혁신위가 대의원제 축소 등) 국민의 관심은 덜한 여의도 이슈에 함몰됐다(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라고 비판했다. 같은 날 조응천 의원은 “대의원제 때문에 우리가 그동안 각종 리스크에 휘말렸고,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았냐(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라고 되물었다. 민주당은 8월28~29일 워크숍에서 혁신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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