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약으로 뜨더니 결국 공급 부족...정작 당뇨치료제 수급 ‘비상’

김양혁 기자 2023. 8. 11.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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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노보 노디스크, 당뇨병 치료제 공급 차질
“수요 급작스레 증가, 생산 못 따라가는 상태”
의료계·제약업계 “마진 높은 비만약 생산 집중 결과”
정부 “일부 대체 가능 약 있지만, 예의주시 중”
일라이 릴리의 당뇨병 치료제 '트루리시티' . /위키미디어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가 당뇨병 치료제 공급 차질을 빚으면서 국내 의료현장으로 여파가 번지고 있다. 이들 기업은 세계 당뇨병 치료제 공급 대부분을 맡고 있다. 해외와 달리, 국내서는 건강보험 적용으로 비교적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당뇨병 치료제를 처방 받을 수 있었다. 혈당 관리를 위해 주기적으로 약을 처방 받아야 하는 환자로서는 치료제가 자취를 감추면 불안감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

생산 차질 원인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기업들은 생산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라고 설명하지만, 의료계와 제약업계는 당뇨병 치료제의 적응증 확대에 주목하고 있다. 당뇨병 치료제는 비만에 이어 심혈관 질환 치료 가능성까지 확인된 상태다. 결국 마진이 높은 적응증 치료제 개발에 매진한 결과라는 것이다. 정부도 현재 상황을 인지하고 수급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10일 한국릴리와 노보 노디스크제약에 따르면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당뇨병 치료제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 대표적인 제품은 릴리의 트루리시티(성분명 둘라글루타이드)와 노보 노디스크의 줄토피 플렉스터치주(성분명 인슐린 데글루덱·리라글루티드)다.

노보 노디스크의 당뇨병 치료제 '줄토피플렉스터치주'가 공급 차질을 빚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

한국릴리 관계자는 “최근 들어 GLP-1 계열 의약품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높아지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며 “완전히 공급이 끊긴 것은 아니지만, 공급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노보 노디스크제약 관계자 역시 “생산량을 최대한 늘리고 있기는 하지만, 수요를 따라가기는 역부족인 상태”라고 설명했다.

제약사들은 국내 병원들에도 공급 부족을 안내하고 있다. 대한당뇨병학회 학술이사를 맡고 있는 이대호 가천대 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당뇨병 치료제)공급 부족은 이미 기정사실화된 상태로, 제약사 직원들도 여러 차례 공급 차질 가능성을 구두로 안내했다”며 “중요한 약인데 공급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전날인 9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GLP-1 주사제가 심혈관질환이나 신장질환 예방효과를 인정받으며 적극적으로 사용하도록 가이드라인에서도 권하고 있다”며 “경구혈당강하제로 혈당조절을 잘할 수 없을 때 첫 번째 주사제로 기저인슐린보다 GLP-1 주사제를 사용하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약은 없다. 쓸 수 없다.’”고 썼다.

혈당을 확인하는 당뇨병 환자의 모습. /미국당뇨병학회(ADA)

GLP-1 계열 의약품 부족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지난 4월 GLP-1 계열 의약품 공급 부족을 공지했다. 익명을 요청한 제약사 한 관계자는 “수요가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당뇨병 환자가 갑작스레 많이 늘어났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결국 마진이 더 높은 약 생산을 위해 시장 논리에 따라 생산한 결과”라고 귀띔했다

의료계와 제약업계는 공급 부족의 원인으로 적응증 확대를 꼽고 있다. GLP-1은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영양분이 포도당으로 분해되는 것을 막아 혈당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당뇨병 치료제 중 하나로 쓰인다. 여기에 비만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확인돼 판매 중이다. 릴리의 ‘마운자로’,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가 대표적이다. 노보 노디스크는 최근 심혈관질환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한 비만 치료제 '위고비'. /노보 노디스크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로서는 마진이 높은 약 생산에 집중해 최대한 많은 이익을 내는 게 득이다. 릴리의 경우 당뇨병 치료제 트루리시티의 1달 투여 비용은 미국 기준 930달러(약 122만원)가량이다. 마운자로는 1달 기준 1168달러(약 154만원)다. 올해 2분기 마운자로 매출은 9억7970만달러(약 1조2913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60배 이상 늘었다. 연간 1조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정작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는 다른 의약품 생산을 위해 당뇨병 치료제 생산을 줄인 것은 “사실무근”이라고 입장이다.

정부도 현재 당뇨병 치료제 공급 부족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현재 공급 부족을 겪는 제품 중 복합제는 단일제가 있어 대체 가능한 의약품이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수급 상황을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있고 관련 부처와 협조해 꼭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토록 안내하며 조치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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