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판 포비아`에 빠진 2023년 대한민국 [이미연의 발로 뛰는 부동산]

이미연 2023. 8. 11.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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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판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원희룡 장관 나서도 불안 커져
현장선 '무리한 공기 단축 실태·불법 다단계 하도급' 본질 지적도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한 민간 아파트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구조설계도면과 현장 사진 등을 보며 현장 점검을 하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고덕 그라시움 공사개요 안내판과 최근 주민들에게 공지된 무량판 구조 관련 해명자료.
원희룡 국토부 장관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그라시움이라는 아파트가 요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무량판구조'로 알려져 있었는데, 최근 아파트 측에서 무량판이 아닌 벽식이라고 해명을 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분양 당시에도) 워낙 무량판으로 홍보했던 곳이라 이 해명이 사실인지 의구심이 든다."(그라시움 거주자)

안녕하세요 금융부동산부 이미연입니다. 제보가 왔습니다. 그래서 철근 누락로 시작된 무량판 이슈 한번 가겠습니다. (제보 감사드립니다아아아!!!)

올해 4월이었죠.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인천 검단 안단테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이 붕괴됐습니다. 이 사고로 촉발된 무량판 구조 안전에 대한 우려는 최근 전국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지하주차장에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LH 단지 조사 결과 15곳에서 철근이 누락된 것이 알려지면서 공포감이 커졌고, 이에 국토부는 이달 3일 기습적으로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민간 아파트 293개 단지에 대한 안전 점검을 내달 말까지 진행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사람들이 진짜 불안해 하고 있냐'고 물으신다면, 네 그런 듯 합니다. 최근 한 커뮤니티에는 '본인 아파트 주차장이 무량판 구조인지 확인하는 방법'이라는 글까지 올라올 정도거든요. 이쯤되면 '무량판 포비아(phobia·공포증)'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보이는데요.

제보를 주신 고덕 그라시움도 이 케이스입니다. 분양 당시 "무량판구조는 보통 집안 내부의 벽이 가벽이라 구조변경이 쉽고 기둥이 있어 벽식보다 층간소음에 강하다"고 홍보를 했고, 준공 당시 공사장 앞에 붙어있던 공사개요 안내판에도 '무량판구조(리모델링이 쉬운 구조)'라고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아파트 관리지원센터에서 해명자료를 냈는데, 조합과 건설사(시공사)에 확인해보니 주거동에는 벽식구조(가변형)을 적용했고 지하주차장에는 라멘구조(기둥식주고)로 지었다고 안내했습니다. 무량판구조는 하중을 지탱하는 수평구조인 보(대들보)가 없고 건물 하중을 지탱하는 수직재 기둥에 슬래브(철근콘크리트구조의 바닥)가 바로 연결돼 수평하중에 취약한 구조라는 설명과 함께입니다.

바로 옆 단지인 고덕아르테온 관리사무소(우리관리) 역시 같은 내용의 공고문을 그라시움보다 하루 전인 지난 3일에 게시하기도 했습니다.

공고문을 본 주민들은 '어리둥절' 사태에 빠졌습니다. 그라시움 한 주민은 "공사 당시 현장 공사개요 표지판에 무량판구조라고 써놨고, 분양 홍보 책자에도 층간소음에 강한 무량판구조라고 한 것을 기억하는데 문제가 되니 갑자기 아니라고 한다"며 되려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주민은 "관리회사(회사명 : 우리관리) 해명대로 벽식구조가 맞다면 분양 당시 허위 홍보를 한셈이고, 반대로 무량판 구조가 맞다면 최근 해명이 거짓이라는 건지 '눈가리고 아웅' 행태에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하아...무량판 구조인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상황이니 그냥 이대로 불안에 떨어야 할 수 밖에 없을까요. 이런 사회적 불안이 커지는 것을 우려한 듯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여러 번 강조했지만 무량판 구조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외치고 계십니다. 원 장관은 이번 민간아파트 전수 조사와 관련 "기준에 맞게 설계했는지, 철근을 제대로 넣고 시공한건지, 시공 과정에서 감리가 제대로 관리감독을 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번 전수조사의 목적"이라고 재차 강조하기도 하셨는데요.

네 시민들도 알고는 있습니다. 무량판이 문제가 아니라 설계와 시공, 감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붕괴 사고가 무량판에서 시작된데다 철근 누락까지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발표되다보니 '무량판'이 대표로 매를 맞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무량판으로만 시공했던지 혹은 무량판과 혼합으로 시공했는지 여부부터 주민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해당 단지들부터 안전진단을 '빠르게'만이 아닌 제.대.로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지 않을까 합니다.

최근 국회에서 '긴급 아파트 안전진단, 현장노동자가 말하다'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그 시간에 나온 뼈때리는 지적(?)들로 이번 시간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제가 20년 동안 일해보니 주민들이 사는 본 건물에 부실 공사가 더 많다. 아파트가 중간층까지 올라가면 감리는 올라와 보지도 않는다. 수직 철근과 수평 철근을 연결하기 위한 결속 자체를 띄엄띄엄 한다. 전국 어디를 가나 모든 아파트가 이렇다고 장담한다. 콘크리트를 부으면 철근이 제자리에 붙어 있을지도 의문이다."(전국건설기능인대회 철근 부분 금상 수상자이자 철근기능사 자격증을 보유한 17년차 철근 노동자 한경진씨)

"특히 요즘처럼 폭우가 내릴 땐 물이 안 들어가게 조치를 해야 강도를 유지할 수 있는데, 안전 장치 없이 대부분 레미콘 물량을 타설한다. 비가 많이 오면 심지어 시멘트와 골재가 분리돼 둥둥 떠다니기도 하고, 타설한 데가 푹푹 파이는데 그냥 공사를 진행하고 나중에 미장을 하고 덧칠을 해 은폐해버린다."(30년차 레미콘 노동자 김봉현씨)

"'순살 아파트' 사태가 터진 후 'LH가 문제다', '감리가 문제다' 많은 말이 나오고 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다. 정부나 건설업계는 LH 등의 문제를 휘발성 높게 지적함으로써 이 본질을 감추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건설안전기술사인 함경식 노동안전연구원 원장)

이미연기자 enero2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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