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식지 달랐던 두 인류가 딸 낳은 비결은 기후변화
우리의 직계 조상은 약 20만~30만년 전 동아프리카 초원에서 기원한 호모사피엔스(현생인류)다. 10만년 전 유라시아로 건너와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우리에게는 호모사피엔스뿐만 아니라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에서 파생된 유전자도 남아있다. 고인류 화석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서로 다른 호모종 사이에 이종교배가 일어난 사실도 최근 들어 밝혀졌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서식지가 달라 어떻게 이종교배가 이뤄졌는지 그동안 수수께끼였다.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의 악셀 팀머만 교수와 이탈리아 나폴리대 등 국제연구팀은 기후변화로 인해 두 종의 서식지가 일부 겹치게 된 시기가 있었다며, 기후∙식생 모델을 통해 얻은 결과를 11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실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호모사피엔스는 약 10만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과 아시아에 진출했다. 당시 유럽에는 네안데르탈인이,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동남아시아에는 데니소바인이 살고 있었다. 두 종은 멸종했고, 호모사피엔스만 살아남았다.
서로 다른 종 사이에 교배도 이뤄졌는데, 대표적인 게 지난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스반페 페보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장이 밝혀낸 ‘데니’다. 데니는 러시아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된 9만년 전 13살 소녀의 화석으로, 데니소바인 아버지와 네안데르탈인 어머니를 둔 ‘혼종’이었다.
팀머만 연구팀은 어떤 환경에서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만날 수 있었는지 추적했다. 왜냐하면 두 종의 서식지는 유럽과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빙하로 사실상 분리돼 교류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기존의 화석과 유전자 연구 결과에 추가로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서식지 시뮬레이션을 수행했다. 지난 300만년 동안의 기온과 강우량 등 기후와 식생 자료를 가지고 슈퍼컴퓨터 ‘알레프’가 시간에 따른 두 종의 서식지 패턴을 계산했다.
■ 인류 진화의 수수께끼를 푸는 ‘기후∙식생 모델’ 연구
분석 결과, 네안데르탈인은 따뜻한 온대림 환경을, 데니소바인은 툰드라와 냉대림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두 종의 서식지가 겹친 시기가 있었다. 9만5000년 전과 12만년 전이었다.
이때는 타원형의 지구 공전궤도와 자전축 경사의 변화(밀란코비치 주기) 등으로 일시적으로 따뜻해지는 간빙기였다. 연구팀은 “네안데르탈인이 선호한 서식지가 유럽에서 중앙아시아 쪽으로 확장했다”고 밝혔다. 이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변화에 따라 두 호모종 사이에 동서 방향의 교배가 이뤄졌다”며 “따뜻할수록 중앙아시아에서 더 많은 교배가 이뤄졌고, 추운 환경에서는 공동 서식지가 줄어 교배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팀머만 연구팀은 또한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 연구팀과 함께 112만년 전 북대서양 바다의 냉각에 따른 기후변화와 식생∙식량의 변화가 유럽을 ‘무인 지대’로 만들었다는 논문도 사이언스에 함께 게재했다.
초기 인류인 호모에렉투스는 약 180만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140만년 전 중부 유럽과 스페인에 정착했다. 그러다가 110만년 전 갑자기 사라진 게 수수께끼였는데, 연구팀은 그 원인을 기후변화로 보았다.
그동안 유럽 대륙의 빙하기는 90만년 전에 최고조에 올랐다는 게 정설이었다. 하지만 포르투갈 해안의 해양퇴적물 코어를 분석하고 기후∙식생 모델을 돌려보니, 추운 기후는 실제로 약 112만년 전에 불어닥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내륙빙하가 녹아 북대서양에 대량의 담수를 배출했고 이어 대서양 열염순환의 붕괴를 초래해 급격한 냉각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전통적으로 인류 진화에 대한 연구는 화석 증거와 유전자 분석을 이용했다. 여기에 기후물리연구단은 슈퍼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기후∙식생 모델을 추가해 인류 진화의 수수께끼를 풀고 있다.
팀머만 교수는 9일 서울 중구 서울역 회의실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화석과 유전자 분석만으로는 이종교배에 대해서 제한적으로 알 수밖에 없었다”며 “이제 기후∙식생 모델을 통해 어떻게 이종교배가 이뤄졌는지 이야기를 쓸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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