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 순직=사단장 책임’ 수사내용 뒷전…‘이첩 보류 명령’ 공방만
[해병 순직 수사 논란]
호우 피해 실종자를 찾다 순직한 채아무개 상병(이하 채 상병) 사건 처리를 두고 국방부와 이 사건을 수사한 해병대 수사단장의 주장이 엇갈리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국방부는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지휘 계통을 통해 해병대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에게 ‘사건을 경찰에 이첩하는 것을 보류하라’고 명령했다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지만, 박 대령은 지난 2일 사건을 경찰에 이첩할 때까지 관련 지시를 전달받지 못했다고 맞서면서, 정작 채 상병 사건 수사는 뒷전으로 밀린 채 양쪽의 진실 공방만 격화하는 모양새다.
이 사건 처리를 둘러싼 핵심 쟁점은 이종섭 장관의 ‘이첩 보류 명령’이 박 대령에게까지 전달됐는지 여부다. 박 대령은 장관 지시에도 사건 이첩을 강행했다는 이유로 보직해임된 뒤,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군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신범철 국방부 차관은 10일 국방부 기자들과 만나, 지난달 31일과 지난 1일 이틀에 걸쳐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세 차례 전화해 ‘채 상병 사건 조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하는 것을 보류하라’는 장관 지시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계환 사령관이 박 대령에게 이런 지시를 최종 전달했는지를 두고는 주장이 갈린다. 신 차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찾아 ‘해병대 사망사고 조사 추진 현황’을 보고하며 “7월31일~8월1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장관 귀국 이전까지 경찰에 사건 이첩을 보류할 것’을 수차례 지시했다”고 밝혔다. 국방부 장관의 ‘이첩 보류 명령’이 차관과 해병대 사령관을 거쳐 수사단장에게까지 전달됐다는 것이다. 김 사령관도 전날 입장문을 내어 구체적인 시기를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박) 수사단장에게 (사건) 이첩 연기를 명시적으로 지시한 바가 있다”고 했다.
반면, 박 대령은 김 사령관에게서 이런 지시를 전달받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박 대령은 전날 낸 입장문에서 “(지난달 30일) 국방부 장관(에게) (사건 이첩을) 보고(한) 이후 (지난 2일) 경찰에 사건 이첩 시까지 그 누구로부터도 장관의 이첩 대기(보류) 명령을 직접·간접적으로 들은 사실이 없다”고 했다. 다만, 경찰에 사건을 이첩한 직후, 김 사령관에게 이첩 보류 명령을 받았다는 것이 박 대령 쪽 주장이다. 박 대령 법률대리인인 김경호 변호사는 전날 “김 사령관한테 ‘이첩을 멈추라’는 지시를 받은 것은 지난 2일 오전 10시51분으로, 이때는 이미 경찰에 자료를 넘긴 뒤였다”고 말했다.
신 차관이 김 사령관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사건 처리 방향을 압박했다는 의혹도 논란이다. 앞서 신 차관은 김 사령관에게 ‘(7월30일) 일요일 (장관이 수사단장의 조사 결과 보고를 결재한) 결재본은 중간결재’이고, ‘(수사단 보고서에서) 혐의자·혐의사실을 빼라’, ‘해병대는 왜 말을 하면 안 듣느냐’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김 사령관이 이를 지난 1일 박 대령에게 읽어줬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신 차관은 이날 기지국에서 조회한 문자 내용까지 공개하며 “김 사령관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김 사령관과 세 차례 통화하며 ‘혐의자·혐의사실을 빼라’는 내용을 제외한 나머지 두 발언은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해병대 수사단은 고 채 상병 사망 사고 원인으로 임성근 해병대 제1사단장 등 해병대 지휘부의 총체적인 지휘 책임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임 사단장이 실종자 수색 지원 요청을 받고도 이를 예하 지휘관들에게 뒤늦게 알려 채 상병이 소속된 부대 등이 구명조끼와 로프 등 안전 장비를 챙기지 못했고, 그가 복장상태와 경례태도 등 수색과 관계없는 부분을 지적함으로써 이에 부담을 느낀 지휘관들이 소속 장병에게 무리한 입수를 지시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이날 에스비에스(SBS)가 공개한 해병대 수사단의 ‘고 채 상병 익사사고 수사경과 및 사건처리 관련 (언론) 설명’ 문건에 담겼다. 수사단은 이 문건에서 “각 제대별 지휘관들이 업무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로 익사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지난달 호우 피해 지역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 도중 순직한 해병대 고 채아무개 상병의 유족이 언론에 채 상병의 이름을 보도하지 말 것을 해병대사령부를 통해 요청해왔습니다. 한겨레는 유족의 뜻을 존중하여 ‘채아무개 상병’으로 표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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