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여의도 저승사자’, 금융 범죄 엄단하라

송기영 기자 2023. 8. 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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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국형 횡령 사고가 또다시 일어났다. 그것도 고객이 믿고 돈을 맡긴 은행에서 말이다. 횡령 사고가 발생하면 금융 당국과 은행은 그제야 허둥대며 내부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벼른다. 그때뿐이다. 횡령 범죄를 저지르는 직원이 금융 당국과 대형 은행이 만든 시스템보다 몇 수는 위인 것인지 수백억원의 회삿돈이 줄줄 새도 당국과 은행은 알아채지 못한다.

BNK경남은행에서 발생한 562억원 규모의 횡령 사고 역시 7년간 은행도 금융 당국도 회계감사를 맡은 회계법인도 알아채지 못했다. 경남은행 투자금융기획부장 이모씨의 횡령 혐의가 드러난 것은 이씨가 다른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기 시작하면서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700억원대 횡령 사고가 발생하자 내부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머리 숙여 약속했다. 그런데 올해 또 9000만원대 횡령 사고가 터졌다. 횡령 사고는 아니지만, KB국민은행 직원들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127억원의 부당 이익을 챙긴 사실도 최근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양정숙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올해 들어 지난 7월까지 금융사 임직원이 벌인 횡령 사고는 11개 회사 33건으로, 횡령액은 592억7300만원에 달했다. 허술한 내부 통제 시스템, 경영진, 감독 기관, 회계법인 등도 모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내부통제 시스템과 금융 당국의 감시망이 금융 사고를 미리 방지하는 1단계 제어 장치라면, 2단계는 사법 당국과 금융 당국이 협업해 금융 사고 규모가 커지기 전에 이를 발본색원하는 일이다. 1단계는 금융 당국과 금융사들이 뼈를 깎는 심정으로 내부통제 시스템과 검사 방식을 고도화해야 한다. 같은 사고가 발생하면 최고경영자(CEO)나 금융 당국 담당자가 옷이라도 벗겠다는 각오로 말이다.

문제는 강력한 2단계 장치가 문재인 정부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라졌다는 점이다. ‘여의도 저승사자’라고 불렸던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이하 합수단)’의 얘기다. 2013년 설치된 합수단은 금융권의 대형 범죄를 수사해 엄벌하면서 금융시장 투명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의 ‘주식 먹튀’ 사건, 한미약품 주가조작 의혹, 신라젠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을 맡아 해결했다. 합수단이 적발한 금융사범은 1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 돌연 합수단을 비리 연루 조직이라며 폐지했다. 가족 비리로 35일 만에 물러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운을 띄우고, 후임인 추미애 전 장관이 2020년 취임하자마자 이를 실행에 옮겼다. 이들은 과거 합수단 소속 검사들이 사건 관계인에게 금품을 수수한 것을 문제 삼았다. 이런 논리라면 살아남을 정부 부처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칼날은 유독 검찰에 매서웠다.

합수단 폐지 후 검찰의 금융범죄 대응 능력이 떨어지니 금융 범죄자들의 세상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폐지가 결정된 날 금융범죄로 검찰 수사를 받던 일부 기업의 주가가 급등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당시 정가와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사모펀드 등 조국 일가의 금융 범죄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자 문재인 정부가 합수단 폐지를 강행했다는 분석이 공공연하게 흘러나왔다.

2차 방어막을 무너트린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은 반복되는 금융사고에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한다. 여의도 저승사자는 그 존재만으로 금융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분명했다. 그들의 치밀함과 집요함은 수사를 받았던 금융사 직원들의 입을 통해 널리 퍼졌었다. 합수단이 금융사들이 즐비한 서울 여의도에 떴다는 소문이 퍼지면 금융사 직원들은 벌벌 떨었다. 괜히 ‘저승사자’가 아니다.

1·2단계 방어 체계를 다시 세울 때다. 은행 경영진은 횡령 사고를 막기 위한 내부통제 시스템 강화에 직을 걸어야 한다. 은행이 신뢰를 잃으면 금융산업의 근간이 무너진다. 임직원이 권한을 세분화해 특정 부서의 직원에게 권한이 쏠리는 일을 막고, 직원들의 재무 상황까지 파악해 인사에 반영해야 한다. 내부 감사제도 역시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한 과학적인 시스템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그나마 윤석열 정부에서 합수단이 지난해 2년 4개월 만에 부활한 것은 다행이다. 합수단은 금융사고 범죄자는 반드시 적발해 엄벌하고 범죄 수익은 반드시 회수한다는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 합수단은 금융 범죄자들에게 ‘저승사자’지만, 보통의 국민에게는 소중한 돈을 지켜주는 ‘수호자’이기 때문이다. 합수단의 존폐는 어떤 정권에서도 정쟁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

[송기영 금융부 금융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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