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실업률에 미래 깜깜… 복권가게 달려가는 中 청년들
청년층 사이 복권 구매 유행… 연인끼리 선물도
극심 취업난 반영… “내가 산 것은 복권 아닌 희망”
지난 10일 중국 베이징시 차오양구의 한 복권 판매점.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에도 이곳을 찾은 한 30대 임신부는 이날 생애 첫 복권을 구매했다고 했다. 그는 “요즘 주변 친구들이 하도 복권을 많이 사길래 궁금해서 와봤다”며 방금 산 10위안(약 1800원)짜리 복권 10장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당첨 시 최대 40만위안(약 73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복권이었다. 복권 판매점 직원은 “예전에는 중장년들이 주로 왔다면 요즘은 청년들이 더 많다”며 “한 번에 수백 장을 사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 청년들이 복권에 푹 빠진 덕분에 중국의 올해 상반기 복권 판매액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들은 소셜미디어(SNS)에 복권 당첨 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공유하고, 연인에게도 복권을 선물하며 복권 구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소득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자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복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11일 중국 재무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 전국의 복권 판매액은 2738억9900만위안(약 49조9071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50.4% 늘어난 것이자, 재무부가 상반기 기준 통계를 내놓기 시작한 2009년 이후 최대치다. 증가율 역시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전까지 가장 급격하게 복권 판매액이 늘었던 때는 2021년 상반기(1784억3800만위안)로, 당시 44%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을 기록했었다.
특히 전국 모든 지역에서 두 자릿수 이상 복권 판매액이 증가했다. 상하이에서는 전년 동기 대비 136.4% 늘어난 62억1365만위안어치 복권이 판매됐다. 안후이성(105억8674만위안·74.2%), 장시성(72억4913만위안·68.7%), 장쑤성(215억6590만위안·67.4%), 충칭(76억7000만위안·62.4%), 지린성(36억9373만위안·62%) 등도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 취업난, 낮은 월급… 복권 구매에 푹 빠진 中 청년들
연령대별 복권 판매액 자료는 나와 있지 않지만, 현지 매체들은 중국 청년층이 전체 복권 판매액을 끌어올렸다고 보고 있다. 한 매체는 “과거에는 복권이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요즘은 청년들이 주 수요층”라며 “복권 판매점이 청년층들의 ‘핫 플레이스’로 떠올라 청년들이 주로 찾는 쇼핑몰 내 복권 판매점 앞에는 긴 대기 줄이 생길 정도”라고 전했다.
실제 중국 주요 SNS를 보면 청년들 사이 복권 유행을 확인할 수 있다. 로또 복권을 살 때 당첨확률이 높은 숫자를 연구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즉석 복권을 대량 구매해 인증하는 이들도 많다. 지난달 광둥성 선전시에 거주하는 첸모씨는 친구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20위안짜리 복권 5040장을 웨이보에 인증해 화제를 모았다. 연인 사이에는 복권으로 만든 꽃다발을 선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프러포즈나 결혼식에서도 복권을 이용한 이벤트가 등장하고 있다.
중국 청년들이 복권에 열광하는 것은 불안한 미래와 관련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6월 중국의 16~24세 청년실업률은 21.3%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청년 5명 중 1명 이상이 실업자인 셈이다. 게다가 일시적 구직단념자 등 공식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미취업 청년까지 포함하면 실질적인 청년실업률은 50%에 육박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일자리를 잡은 청년들도 지갑 사정이 팍팍하긴 마찬가지다. 중국국제금융공사(CICC)에 따르면, 중국 전체 인구의 95%에 달하는 13억2800만명의 월 소득은 5000위안(약 91만원)에 불과하다. 이 중에서도 약 6억명의 월 소득은 1000위안(약 18만원) 아래다. 즉 노동소득으로는 생활이 어려워지자 당첨만 되면 큰 돈을 받을 수 있는 복권에 눈을 돌리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 네티즌은 SNS에 “내가 사는 것은 복권이 아니라 희망”이라고 적었다.
중국 청년층이 복권에 열광하는 다른 이유도 있다. 복권이 주는 기대감을 일종의 오락으로 여긴다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복권 관련 온라인 마케팅이 활발해지면서 청년층의 관심도가 높아졌다는 시각도 있다. 중국 내에서는 청년들이 복권에 재정 계획을 의존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며 합리적인 복권 구매 태도를 갖춰야 한다는 경계의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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