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순살아파트'는 없었지만

나원식 2023. 8. 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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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 영화다.

알고 보니 철근이 빠진 '순살 아파트'는 곳곳에 있었다.

반대로 대지진에도 살아남은 튼튼한 아파트가 무대가 된다.

대지진 없이도 무너지는 아파트들이 과거부터 있어 왔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을 수 있다는 공포심이 사그라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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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 폐허 속 무너지지 않은 아파트 주민 모습 그려
영화보다 더한 현실…자연재해 없이 무너지는 아파트
집단 이기주의와 폐쇄성의 결말…건설 카르텔 '닮은꼴'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 영화다. 대지진이라는 재난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대지진이라는 자연재해 자체를 집중 조명하지는 않는다. 이미 서울이 전부 폐허가 된 뒤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의 주민들이 생존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가 보여주려는 진짜 재난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주민들은 외부인을 배척한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외부인을 살인해도 눈을 감는다. 이후 주민들은 '아파트는 주민 것'이라며 똘똘 뭉친다. 하지만 이내 내부 갈등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내부에서 자가와 전세를 가르고, 이후에는 일하는 자와 일하지 않는 자가 나뉘어 갈등한다. 그렇게 스스로 무너지는 찰나에 외부인들이 우르르 몰려들면서 황궁 아파트의 주민들은 붕괴한다.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멀쩡하게 짓는가 싶던 아파트가 무너지고, 놀이터 자리 아래에 있던 주차장이 와르르 붕괴했다. 대지진이라는 설정도 필요 없었다. 이 자체로도 큰 재난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고가 벌어진 이후에 진짜 재난을 보기 시작했다.

/사진=국토교통부 제공.

알고 보니 철근이 빠진 '순살 아파트'는 곳곳에 있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서민들을 위해 지은 아파트들에서 철근 누락이 발견됐다. 부실 시공이 만연했던 것이다. 정부는 민간 아파트 중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단지들에 대한 전수조사를 시작했다. 이 현실 속 재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과연 끝이 어딜지 모두가 조마조마하며 바라보고 있다.

영화 속 주민들은 외부인을 배척하면서 되레 내부 갈등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조직의 이기주의와 폐쇄성이 붕괴의 불씨가 됐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연한 부실시공의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된 건 바로 건설 카르텔이다. 당장은 LH 퇴직자들의 전관예우가 문제로 지목된다.

이는 LH뿐일 리가 없다. 상급 기관인 국토교통부는 물론 설계·감리·시공사 출신들이 끼리끼리 뭉쳐서 폐쇄적인 권력 집단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잘못된 관행을 별일 없을 거라며 서로 눈감아줬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게 순살 아파트의 본질일 수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사실 이 영화에는 지금 국내에서 문제가 되는 부실시공과 관련한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반대로 대지진에도 살아남은 튼튼한 아파트가 무대가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가 촬영된 건 지난 2021년 부동산 활황기였다. 원작은 그 전에 나왔다. 그래서 작품의 배경이 되는 아파트는 외부인을 철저히 차단하며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철옹성의 느낌을 준다.

원작자도 영화감독도 상상하지 못했을 거다. 우리나라에 철근이 빠져 무너지는 아파트가 나타날 줄은. 그때 당시 만약 그런 내용을 영화에 넣었더라면 현실성 없는 얘기를 만들었다는 비아냥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나라 순살 아파트의 역사는 짧지 않다. 지난 1970년 4월 무너진 와우아파트의 붕괴 원인은 무리한 공기 단축, 부실 설계와 시공, 그리고 철근 등 자재 누락 등이 꼽힌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의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 논란이 되는 무량판 공법으로 지었다는 사실 정도만 새로 조명됐다.

과연 이번 순살 아파트 사태의 결말은 어떻게 끝날까. 대지진 없이도 무너지는 아파트들이 과거부터 있어 왔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을 수 있다는 공포심이 사그라질 수 있을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더 이상 부실시공이 발을 들일 수 없는 진정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구축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원식 (setisoul@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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