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연필’ 저자가 쓴 친근하고 재미있는 힘의 세계

최재봉 2023. 8. 11.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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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연필'의 지은이인 헨리 페트로스키가 지난 6월14일 81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페트로스키는 외팔보 구조를 이용한 다리 건설, 상자 속 피자가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요동치지 않도록 고정하는 플라스틱 삼발이, 볼펜과 클립, 트램펄린 등에 사용된 용수철 원리, 접시 돌리기 묘기에 숨어 있는 운동량 보존의 법칙 등 흥미로운 사례를 통해 읽는 이를 힘의 세계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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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자 벤저민 베이커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근처의 포스 강 하구에서 건설 중이던 혁신적인 강철 외팔보 철도교의 새로운 구조적 설계를 설명한 1887년 강연에서 활용한 ‘인간 외팔보’ 모형. 서해문집 제공

물리적 힘
세상은 우리를 밀어내고, 당기고, 붙들고, 놓친다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이충호 옮김 l 서해문집 l 2만2000원

베스트셀러 ‘연필’의 지은이인 헨리 페트로스키가 지난 6월14일 81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 미국인 공학자는 공학적 지식과 인문학적 향기가 어우러진 ‘연필’ 이외에도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 ‘책이 사는 세계’ ‘공학을 생각한다’ 같은 책으로 한국에도 많은 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새로 번역돼 나온 ‘물리적 힘’은 그가 지난해에 낸 마지막 책이다. 원서 부제대로 밀거나 당기고, 미끄러지거나 움켜쥐며, 시작하거나 멈추는 데에 작용하는 온갖 힘들에 관해 특유의 유려하면서도 박학한 설명을 담았다.

중력, 자기력, 마찰력, 탄력, 항력… 힘의 종류는 다양하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힘은 중력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 지구의 중력에 붙들려 살아간다.” 중력은 우리를 지구 안에 붙들어 놓는 동시에 그 위에서 펼쳐지는 온갖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중력은 “강하고 조용한 비밀 놀이 친구”여서 어린 헨리가 탁자에서 뛰어내리거나 그네를 타며 놀 때 항상 그와 함께했다. “내가 공을 높이 던지면 중력은 정점에서 공을 붙잡아 아주 잠깐 붙들고 있다가 나를 향해 도로 던져주었다.” 국제우주정거장은 흔히 지구의 중력이 미치지 못하는 무중력 상태라고 말하지만, “무중력은 사실상 허구다.” 온갖 별과 행성, 위성, 유성, 우주 쓰레기 등이 중력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우주이고, 이른바 무중력이란 지구가 끌어당기는 중력과 원심력이 상쇄된 결과일 뿐이다. 그래서 공학자와 과학자는 우주정거장 내부 조건을 무중력 대신 ‘미소 중력’(microgravity)이라고 표현한다.

책을 읽으면 우리가 무심코 반복하는 일상 활동에 다양한 힘과 힘을 둘러싼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밤에 침대에 누워 잠을 편히 잘 수 있는 것은 중력 덕분이다. 아침에 일어나 슬리퍼를 신고 걸을 수 있는 것은 “슬리퍼 밑창과 바닥 사이에 수평 방향으로 작용하는 마찰력 덕분이다.” 부엌의 냉장고를 열 때 우리는 개스킷(패킹)의 봉인을 해제하기 위해 냉장고 문을 일부러 세게 당긴다. 식탁에서 음식을 먹을 때도 입속에서 녹는 초콜릿에서부터 힘들게 씹어야 하는 질긴 고기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힘에 대한 감각이 필요하다.” 샤워와 면도를 할 때도, 옷을 입을 때도, 자동차 핸들을 조작하거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때도 적절한 힘의 적당한 구사가 필요하다. “인류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문명적인 것이든 야만적인 것이든, 모든 것을 항상 힘에 의존해 해결해왔다.”

헨리 페트로스키. 위키미디어 코먼스

페트로스키는 외팔보 구조를 이용한 다리 건설, 상자 속 피자가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요동치지 않도록 고정하는 플라스틱 삼발이, 볼펜과 클립, 트램펄린 등에 사용된 용수철 원리, 접시 돌리기 묘기에 숨어 있는 운동량 보존의 법칙 등 흥미로운 사례를 통해 읽는 이를 힘의 세계로 안내한다. 연신 미소와 윙크를 발사하며 “힘은 이렇게 재미있다”고 독자를 유혹하는 지은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 책이 코로나 시기에 집필되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중세의 페스트를 언급한 그는 힘을 이해하는 데에 접촉과 감각이 지니는 중요성을 각별히 강조한다. “힘은 한 물체가 다른 물체와 접촉할 때에만 자신을 드러낸다.” 코로나 창궐 이후 접촉을 피하며 고립과 단절의 삶을 사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다시 접촉과 느낌의 세계로 돌아가자고 호소하는 듯하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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