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이 말한다 “가혹한 침묵을 만나면 조심해야 한다” [책&생각]

임인택 2023. 8. 11.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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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 문화의 시작'이라 일컬어지는 루쉰(1881~1936)을 2023년 다시 읽을 만한 이유는 적지 않다.

'길들여진' 채 '앵앵거릴' 뿐인 구경꾼 의식의 저편에 루쉰이 편드는 '야만성'과 '복수'의 관념이 있겠다.

첸리췬이 베이징대 강의를 토대로 루쉰의 사상과 작품을 엄선하고 해석한 2012년 '루쉰 입문 독본'(원제)을 국내 출판사가 계약한 지 약 10년 만에 책은 독자와 만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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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단편 ‘구경거리’의 삽화. 연도는 확인되지 않는다. 중국혁명에서 중대한 역할을 한 만화가 딩충(1916~2009)이 그렸다. 사진 선쥔, 글항아리 제공

루쉰 정선
첸리췬이 가려뽑은 루쉰의 대표작
루쉰 지음, 첸리췬 엮음, 신동순 외 옮김 l 글항아리 l 3만6000원

‘중국 현대 문화의 시작’이라 일컬어지는 루쉰(1881~1936)을 2023년 다시 읽을 만한 이유는 적지 않다. 흔히 거론되는 ‘아큐정전’이나 ‘광인일기’ 얘기가 아니다.

하나의 학문체계가 되었다 할 ‘루쉰학’에서의 권위자인 중국 학자 첸리췬(84)은 “루쉰 소설의 핵심”이 담긴 작품으로 ‘구경거리’(1925)를 꼽는다. 진실, 분노, 개입도 유보할 뿐인 ‘구경꾼’으로서의 대중심리를 풍자한 단편으로, 소설엔 사건이나 인과는 물론 인물의 이름조차 없다.

뙤약볕 베이징 텅 빈 거리에서 ‘식어버린’ 만두나 무료하게 파는 소년이 갑자기 길 저편으로 튀어나가며 이야기는 여문다. 순경의 포승줄에 매인 밀짚모자의 남자를 보겠다고 삽시간 모여든 구경꾼들의 심리가 눈빛과 동태만으로 긴장감 있게 그려진다.

범인의 죄가 무엇인지 물은 행인만 주변의 침묵과 눈총에 주눅 들어 이탈한다. 술렁임-심지어 순경, 범인도 구경꾼을 곁눈질하느라 분주해 보인다-이 고조되지만 어떤 소란도 벌어지지 않자 실망했다는 듯 다들 흩어진다. 어느새 본래 자리로 돌아간 소년 또한 잠꼬대하듯 “막 찜통에서 나왔”다며 “따끈따끈한 만두!”를 외친다.

중국 판화계의 거장 자오옌녠(1924~2014)의 ‘루쉰상’. 루쉰의 초상화 중 가장 우수한 작품 중 하나로 간주된다. 사진 글항아리 제공

루쉰은 “군중, 특히 중국의 군중은 영원히 희극을 보는 구경꾼”으로 일갈한 바 있다. 베이징대 등에서 루쉰 연구에 생을 바친 첸리췬은 ‘(훔쳐) 보는 것’과 ‘(연기해) 보이는 것’이 “중국인의 생존방식”임을 은유한다고 주석을 단다. 이런 생존방식의 배후엔 “먹고 먹히는 것의 관계가 있다”고도 지적하는데, 모두가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쳐다본다는 공포감에 (한때) 미쳐버린 ‘나’의 ‘광인일기’, 사회 기저층에 대한 집단의 냉혹하고 경멸적인 시선을 표상한 ‘아큐정전’ 모두 이 해석에서 자유롭지 않다.

‘길들여진’ 채 ‘앵앵거릴’ 뿐인 구경꾼 의식의 저편에 루쉰이 편드는 ‘야만성’과 ‘복수’의 관념이 있겠다. “불행에 슬퍼하고 싸우지 않음에 분노한다”는 말과 “돼지의 이빨은 우리에서 탈출해서 산으로 들어가면 금방 돋아나게 된다”는 글(산문 ‘몇 가지 비유’)로 상징되는 바다. 아니, 루쉰의 유언 자체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는 복수를 반대하며 관용을 주장하는 사람과는 절대로 가까이 지내지 마시오.” 일곱 유언 중 일곱번째가 이렇다.

1932년 11월27일 베이징사범대에서 강연하는 루쉰. 사진 저우링페이, 글항아리 제공

루쉰은 현실 비관적이었다. 하지만 분노엔 낙관했다. 태풍에 눈이 있듯, 분노에도 눈이 있겠다. “우리는 신음과 탄식, 흐느낌, 애걸을 들어도 놀랄 필요 없다. 가혹한 침묵을 만나면 조심해야 한다. 독사처럼 주검의 숲속을 꿈틀꿈틀 기어 다니고 원귀처럼 어둠 속을 질주하는 뭔가가 보이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이는 ‘진짜 분노’가 곧 다가오리라는 것을 예고하고 있다.”(‘잡감’)

첸리췬이 베이징대 강의를 토대로 루쉰의 사상과 작품을 엄선하고 해석한 2012년 ‘루쉰 입문 독본’(원제)을 국내 출판사가 계약한 지 약 10년 만에 책은 독자와 만나게 됐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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