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결국 내가 치유 받았던 ‘느리게’ [책&생각]
책방을 준비하면서 제가 책방을 통해 손님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탄생하게 된 책방의 모토가 “그대여, 나도 그럴 수 있고 당신도 그럴 수 있다. 그러니 부디 용기 내보자”예요. 그만큼 책방을 여는 건 제게도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어요. 책방을 열기 직전 사회복지직 공무원 일을 잠깐 했어요. 너무 벅차고 힘겨운 일이라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었고, 긴 고민 끝에 일을 그만두고 충분히 쉬면서 다양한 교육과 취미생활을 하며 지냈어요.
그러다 우연히 대전에 있는 ‘구름책방’ 대표님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고, 그때 독립서점·동네책방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마을 아이들에게 의사, 변호사, 선생님 같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지지 않더라도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는 기회는 많다는 걸 책방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았어요. 더불어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책방이 마을의 사랑방, 문화 공간으로 자리할 수 있다는 것도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그렇게 책방에 대해 알게 되고 다른 책방들을 탐방하는 것이 즐거운 취미가 되었어요. 특히 심적으로 힘들 때 구름책방을 찾아 책, 차, 음악과 함께 창밖으로 보이는 고요한 마을 풍경을 바라보며 보내는 시간이 큰 위로가 되었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제가 책방을 통해 얻었던 어떤 위로와 즐거움을 다른 분들도 느껴볼 수 있도록 저의 책방을 열어봐야겠다 결심하게 되었어요.
대전에 사는 제가 충남 공주에 책방을 열게 된 것은 공주 원도심 그리고 제민천의 매력에 빠졌기 때문이에요. 책방을 준비하던 당시 대전 인근 도시인 공주 원도심에 나들이를 몇 번 다니면서 조용하고 고즈넉한 마을 분위기에 반해 이런 곳에 제가 꿈꾸던 책방을 열게 된다면 딱이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책방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고 손님들에게 저희 책방이 ‘마음이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했어요. 책방 테마는 마음, 삶, 위로, 쉼, 공동체 등으로 잡고 그에 맞는 책들로 책방을 구성해 나갔어요.
책방을 하면서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해보는 것이 꿈이었는데요, 지금까지 북토크, 독서모임, 명상모임, 플로깅(걷거나 뛰면서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활동), 필사모임 등을 진행했어요. 부수적으로 헌책 기부(헌책을 기부받아 판매 후 수익금을 동물보호단체에 기부하는 일), ‘당신의 한 문장’(손님들로부터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을 수집하여 책방 한편에 붙이는 일), ‘편지할게요’(책방에서 보내는 편지)도 진행해 보았어요. 책방에서 판매하는 책과 진행했던 프로그램들이 곧 저의 취향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이고 책방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책방을 하면서 여러 가지 추억이 있지만 그중 한 가지만 꼽아보자면요, 단골손님 중 “공주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지역으로 직장을 얻어 이사를 하게 되어 책방에 오기가 힘들어졌다, 느리게 책방이 마음의 위안이 되는 공간이었다”는 내용의 편지를 전해준 분이 계셨어요. 그럴 때 책방 하길 잘했구나 생각해요. 이번 글을 쓰며 드는 마음이, 책방의 시작은 손님들에게 위로와 쉼이 되는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었는데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가장 치유받고 위로받은 사람은 바로 나였구나 하는 거예요.
위기 역시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매출이 뚝 떨어져 제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수입에 다다르지 못하는 상황이 돼 버렸어요. 책방도 엄연히 상업적인 공간인데 이대로 계속 운영해도 되는가 고민이 컸어요. 고민 끝에 책방을 계속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이대로 책방을 그만두면 미련이 남을 것이라는 생각과 제게 책방이라는 공간과 책방지기라는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한마디로 책방을 운영하는 것이 제겐 가장 재밌는 일이었어요.
공주 원도심엔 책방이 꽤 많아요. 책방에 관심 있는 분들은 공주 지역에 책방이 이렇게 많은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고는 하세요. 그만큼 공주 원도심에 매력이 있기 때문이겠죠. 또 공주 원도심에는 최근 몇 년간 책방과 함께 여러 공방, 갤러리, 커피숍, 굿즈숍 등 다양한 문화 공간이 많이 생겼어요. 공주 거주민, 외지인인 청년들이 공주 원도심에서 여러 문화 활동도 많이 하고 있고요. 한번쯤 공주 원도심 나들이를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저희 책방과 더불어 공주 원도심이 많은 분에게 사랑받았으면 해요.
공주/글·사진 김지혜 느리게 책방지기
📙 책방 ‘느리게’
충청남도 공주시 우체국길 24(중동) instagram.com/slowly_book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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