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자리에서 죽음을 생각한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책&생각]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김재홍 옮김 l 그린비 l 1만3000원
로마제국 황제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가 쓴 ‘명상록’은 스토아철학을 대표하는 인류의 고전이다. ‘명상록’의 한국어판으로는 그동안 천병희 번역본이 통용돼 왔다. 고대 그리스 철학 전문가 김재홍 정암학당 연구원이 이 고전을 새로 번역해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내놓았다. ‘명상록’이라는 제목은 후대에 붙인 라틴어 제목이고, 초기에 알려진 제목이 그리스어로 된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들’이다.
김재홍 번역본은 천병희 번역본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천병희 번역본이 가독성을 중시한 유려한 번역이라면, 김재홍 번역본은 텍스트를 엄격하게 옮기는 데 주력했다. 본문의 분량에 육박하는 상세한 주석을 달고 스토아학파와 아우렐리우스의 관계를 살피는 해제도 실었다. 스토아학파 전문가인 옮긴이로서는 에픽테토스 ‘강의’(전 4권) 역주에 이은 두 번째 스토아학파 저작 번역·주해 작업이다.
아우렐리우스는 어린 시절에 가정교사로부터 그리스 철학과 수사학 수업을 받았고, 이 시기에 에픽테토스를 비롯한 앞 시대 스토아철학자들의 가르침을 깊숙이 받아들였다. 후에 황제가 된 아우렐리우스는 반란과 외침이 끊이지 않는 고단한 삶을 사는 중에 스토아철학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삼아 ‘철학적 일기’를 썼는데, 그것이 지금 남아 있는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들’이다.
이 작품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아우렐리우스의 종교적 경건성이다. 아우렐리우스는 당대 로마의 다신교를 따르고 있었지만, 신들에 대한 아우렐리우스의 생각은 당대 기독교인들의 헌신성에 못지않은 독실함으로 가득 차 있다. “만약 신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혹은 신들이 인간들의 일 따위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신들이 존재하지 않는 우주, 섭리가 없는 우주에 살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런 경건한 자세로 아우렐리우스는 ‘번잡하고 타락한 일상으로부터 물러남’을 시종 강조한다. 그러나 이 물러남을 ‘자기 내면으로 물러남’으로 이해한다는 데 아우렐리우스 철학의 특징이 있다. “사람들은 시골이나 해안이나 산에서 물러날 곳을 찾는다. 너 또한 그런 곳을 열렬히 동경하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지극히 속된 사고방식이다. 너는 네가 원할 때마다 너 자신의 내면으로 물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곳이라도 자기 자신의 영혼보다 더 평화롭고 한적한 피신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자기 자신 안으로 물러나 평정심에 머무르는 것이 스토아학파가 가르치는 삶의 길이다. 이런 삶의 자세는 당대의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의 태도와 유사한 데가 있지만, 아우렐리우스는 에피쿠로스주의에 단호히 반대한다. 에피쿠로스주의가 어지러운 현실에서 영원히 퇴각해 소박한 쾌락을 즐기라고 권고하는 데 반해, 아우렐리우스는 그런 쾌락을 긍정하지 않는다. 아우렐리우스에게 ‘물러남’이란 영원한 퇴각이 아니라 현실에 복귀해 이웃과 다시 어울려 사는 데 필요한 회복의 시간을 뜻한다. 스토아철학은 현실을 긍정한 채로 현실이 주는 고통을 극복하려는 철학이다. 이런 스토아적 삶을 살 때 지침이 되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지혜 곧 참된 앎이다. 아우렐리우스에게 덕은 앎이고 악덕은 무지다. 자신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인데 이 지혜를 알지 못하기에 악덕을 저지르고 결국 자신에게 해를 입힌다는 것이 스토아철학의 가르침이다.
아우렐리우스가 이 책에서 되풀이하여 묻는 것이 ‘섭리인가, 원자인가?’ 물음이다. 세계가 신들의 섭리에 따라 운행한다는 스토아학파 견해를, 세계가 원자들의 우연한 움직임 속에서 제멋대로 변화한다는 에피쿠로스주의 견해와 대비하는 것이다. 우주가 신의 섭리에 따라 운행한다면 인간은 항상 그 섭리를 생각하며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
아우렐리우스에게 가장 중요한 섭리는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있다. 이 사실을 언제나 잊지 않는 것이 스토아학파 경건주의의 핵심이다. 로마 시대에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개선행진을 할 때면 장군의 뒤에 선 노예가 큰소리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memento mori)고 외쳤다. 개선장군이 오만해져 신들의 분노를 사는 것을 막으려는 뜻이었다. 황제도 장군도 결국은 죽는다. “모두가 하루살이다.” 아우렐리우스야말로 바로 이 경구를 기억하며 평생을 산 사람이었다. 가장 높은 자리에서 죽음을 생각하며 자신을 낮추는 그 경건한 마음의 기록이 이 책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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