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백도와 멕시코만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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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름 과일을 좋아한다.
수박이나 참외같이 시원한 박과 과일도 좋아하지만 요맘때 주로 즐기는 것은 복숭아다.
백도는 주로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절정인 8월초 휴가철 전후로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요즘 더 백도의 달콤함에 집착하는 것일까? 무언가를 곧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예감 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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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름 과일을 좋아한다. 수박이나 참외같이 시원한 박과 과일도 좋아하지만 요맘때 주로 즐기는 것은 복숭아다. 딱딱한 것보다는 물렁물렁한 복숭아를 더 좋아한다. 즙이 많고 꽃향기가 나는 백도를 특히 좋아한다.
백도가 시장에 나오는 기간은 황도만큼 길지 않다. 그래서 백도가 나오는 때가 되면 과일가게 앞을 유심히 보고 백도가 나오면 상자째 사 온다. 백도는 주로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절정인 8월초 휴가철 전후로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그런데 올해 몇번 먹어본 백도는 기대만큼 맛나지 않았다. 단맛도 향도 약했다. 아마 긴 장마 탓에 일조량이 부족했기 때문인 것 같다. 올해 장마는 ‘일평균 강수량 역대 1위’ ‘누적 강수량 역대 3위’ 등의 기록을 남긴 채 지난달 26일 종료됐다. 그래서 ‘집중호우’나 ‘폭우’라는 단어 대신 ‘극한호우’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극한’이라는 단어가 붙을 만큼 매년 장마의 피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극한 기후의 원인은 온실효과로 뜨거워진 바다에 있다. 지표의 70%를 차지하는 바다는 대기와 함께 끊임없이 순환해 각 지역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준다. 특히 적도 부근의 따뜻한 해류가 북대서양으로 흘러 냉각되고 염도가 높아지면 밀도 차로 해저로 내려간 뒤 다시 남쪽으로 흐르는 열염순환(대순환·심층순환)이 큰 역할을 한다. 지구의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이 골고루 흐르게 하는 이 해류다발이 순환하지 않으면 이상기후를 초래한다. 미국의 ‘네이처저널’에 최근 실린 논문을 보면 지구상 가장 큰 해류인 멕시코만류를 포함한 열염순환이 빠르면 2025년에서 2070년쯤에 멈출 것이라고 한다. 지구온난화로 북극 빙산이 녹으면서 북극해의 염도가 낮아진 것이 결정적 원인이라고 논문은 설명했다. 실제 1만2000년 전에도 빙산이 녹으며 해류가 멈춰 지구 북반구 온도가 10년 사이 10∼15℃ 출렁거린 바 있다.
해류 교란으로 가장 영향을 받을 곳은 멕시코만류와 쿠로시오난류의 혜택을 받아온 지역이 꼽힌다. 북위 50도대로 시베리아와 위도가 비슷하지만 우리나라보다 겨울이 훨씬 따뜻한 영국이 그중의 하나다(런던 1월 평균기온은 5℃다). 난류가 오지 않으면 런던이 러시아 모스크바만큼이나 추워진다는 것이다. 반면 긴 해안선의 미국과 중국은 해류 순환이 멈춰 뜨거워진 바다로 인해 유례없는 태풍과 이상 고온의 피해가 우려된다.
우리나라도 쿠로시오·쿠릴 해류 등이 멈추면 여름은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한반도는 1950년 이후 온실효과로 이미 세계에서 가장 기온이 크게 오른 곳이다. 명태는 사라졌고 대신 상어와 참치가 잡힌다. 남부지방에서는 망고와 구아버 같은 아열대 작물을 재배한다. 반면 사과 재배지는 경북에서 강원으로 올라갔다.
내가 좋아하는 복숭아도 곧 여름이 뜨겁지 않은 북쪽에서만 자랄지 모르겠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로 묘사되던 ‘고향의 봄’은 이제 노래에서나 들을 법한 옛 풍경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요즘 더 백도의 달콤함에 집착하는 것일까? 무언가를 곧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예감 탓에.
권은중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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