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HD현대 '8000억 호위함 수주전' 60일의 막전막후
한화오션-현대重, 양대 조선사 명암 갈라
결과는 한화오션 '신승' 현대重 '완패'
한화의 사활 건 전사적 수주전략 주효
현대重은 1.8점 감점 벽 넘지 못해 무릎
5·6번함 수주전이 남긴 세가지 의미는
①끝나지 않은 싸움 ②'-1.8점' 높은 벽
③현대의 반격..군함 수주전 판도 변화
[파이낸셜뉴스] 8000억원대 호위함 두 척이 양대 조선사의 명암을 갈라놓았다. 국내 최대 조선사 HD현대중공업과 한화그룹에 편입된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간의 울산급 배치3 호위함 5·6번함 수주전이다. 결과는 한화오션의 신승(辛勝)이자 전략적 성공이다. 현대중공업의 완패다. 이번 결과는 양대 조선사가 숙명적으로 맞붙을 수 밖에 없는 군함 수주전의 양상을 명확하게 확인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왜 이런 결과가 났을까. 수주 경쟁부터 입찰, 우선협상자 선정, 이의 제기, 기각까지 60일 간의 막전막후는 한편의 드라마였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이 발주처인 방위사업청을 상대로 제기한 호위함 5·6번함 평가점수에 대한 이의 신청이 기각됐다. 패배 요인을 따져보겠다고 벼른 현대중공업은 얻은 것 없이 상처만 확인한 셈이다. 이로써 5·6번함 입찰 관련 행정적 절차는 사실상 일단락됐다. 하지만 법정 분쟁으로 갈 소지도 남아있다. 현대중공업은 "이의를 제기한 부분이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면서 유감을 표명하고 대응방안을 논의 중이다. 2020년 당시 대우조선해양이 차세대 한국형 구축함(KDDX) 우선사업자 선정을 놓고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낸 가처분신청과 같이 법적 다툼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번 5·6번함 수주전은 특히 상징성이 컸다.
배경을 간단히 요약하면 20여년 만에 재개된 민간기업(조선·방산 그룹)간 경쟁인데다 설계도면 은닉·유출 사건, 경쟁사 인력 빼가기로 양 사간 감정의 골이 깊은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여기에다 방산에 특화된 한화그룹과 국내 최대 조선그룹 HD현대가 맞붙는 첫 군함 수주전이라는 점에서 관심도 뜨거웠다. 경쟁은 과열됐다.
결국 박빙의 차로 승패는 갈렸다. 한화오션이 종합점수에서 HD현대중공업을 0.1422점로 제치고 5·6번함을 수주했다. 기술 점수를 크게 앞서고도 종합점수에서 밀린 현대중공업은 자존심을 구겼다. 승리를 거머쥔 한화오션은 축배를 들면서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이번 5·6번함 수주전이 남긴 의미는 뭘까. 업계 및 관계자들 의견을 종합해 요약하면 크게 세가지다. ①한화-HD현대의 끝나지 않은 싸움 ②보안사고 감점의 높은 벽 ③군함 수주전 판도 변화다.
싸움의 포문을 연 것은 한화오션이다. 5·6번함 입찰을 20여일 앞둔 지난 6월 7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 2023) 현장. 한화오션의 차세대 군함 모형을 대거 전시한 부스에 모인 많은 기자들 앞에서 한화오션 실무자는 "죽을 각오로 입찰을 준비하고 있다"며 5·6번함 수주에 사활을 걸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도함(현대중공업)보다 뛰어난 후속함"이라며 기술력에서 앞서있다는 점을 과시했다. 당시 현장에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도 찾아 "한화오션에 많은 투자와 중장기적인 전략을 갖춰 나가겠다"며 군함 수주 의지에 힘을 실어줬다.
한화오션이 "죽을 각오"로 배수진을 친 데는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이번 수주를 놓치면 군함(특수선) 수주 물량이 끊긴다. 특수선 도크가 텅 빌 판이었다. 한화오션은 5년 전인 2018년에 수주, 올 하반기에 해군에 인도하는 5600t급 잠수함구조함 '강화도함'이 마지막 군함이다. 게다가 KDDX 설계도면 도난사건 이후 2020년 KDDX 기본설계 사업을 0.005점차로 현대중공업에 내준 이후 설욕을 벼러왔다.
'한화오션의 선전포고'에 현대중공업은 발끈했다. "우리가 진정 수상함 명가"라며 "기술 최고난도의 이지스구축함 6척 중 5척을 건조한 건 현대중공업"이라고 반박했다. 현대중공업은 360도 레이더 장착 등 배치3 선도함(1번함) 설계·건조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현대중공업은 한화오션의 적극적 공세를 예상은 했으나, 이 정도일 지는 몰랐다는 후문이다. 지난 20여년간 ‘주인 없는’ 공적자금 기업(산업은행 산하)으로 체질화된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이 이렇게까지 전사적으로 달려들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상대 전략을 오판한 셈이다. 게다가 이번부터 우선협상자 선정 방식이 최저가 적격심사에서 기술력 중심의 제안서 평가로 바뀌었는데, 현대중공업은 기술력에서 우위를 확보한 만큼 종합점수도 앞설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공세를 이어가던 한화오션은 입찰제안서를 낸 직후부터 말을 아꼈다. 한화그룹 내부에서도 조선사간 과잉 경쟁, 감정 싸움, 오너가의 대립 등으로 비춰지는데 부담이 컸다는 후문이다. 일종의 함구령이 떨어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이번 입찰이 마지막도 아닌데, 두 회사(한화오션과 현대중공업) 간 감정, 자존심 싸움으로 과도하게 비춰지면서 승패 여부를 떠나 심적 부담이 컸다"고 털어놨다.
현대중공업 입장에선 이번 패배가 아쉬울 수 밖에 없다. 불명예스럽기도 하다. 배치3 선도함을 설계·건조하고도 후속함(5척)을 하나도 수주하지 못한 첫 사례로 기록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선도함 상세설계 도면을 만들어놓고 제대로 활용도 못하고 폐기해야할 판인 것이다. 선도함인 1번함은 지난 2020년 현대중공업이 4000억원에 수주, 건조를 끝내고 시운전 중이다.
이번 입찰에서 현대중공업은 기술능력 평가에서 한화오션보다 0.9735점 앞섰다.
실제 현대중공업은 국내 최다 수상함 건조 경험(최근 시장점유율 52%)과 함정 수출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다섯번째로 최첨단 이지스 구축함도 건조했다.
그러나 입찰 제안서 평가 최종 점수에서 현대중공업(91.7433점)은 0.1422점 차이로 한화오션(91.8855점)에 뒤졌다. '보안사고 1.8점 감점(불공정행위 이력 감점)'이 판세를 뒤집은 것이다.
현대중공업의 발목을 잡은 페널티는 오는 2025년 11월까지 모든 군함 입찰 때 적용된다. 소수점 이하 박빙으로 점수가 갈리는 일관된 경쟁 패턴으로 봤을 때 현대중공업이 종합점수 평가에서 보안사고 감점을 넘기는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마이너스(-) 1.8점'은 현대중공업이 2022년 KDDX 설계도면 은닉 사건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은 게 이유다. 이 사건은 일부 소송 및 감사 청구 등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거슬러 가보면, 지난 2014년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대우조선해양의 KDDX 개념설계도 등을 몰래 촬영 보관해오다가 2018년 보안감사에서 적발된 사건이 발단이다.
이후 2020년 KDDX 기본설계 사업자에 현대중공업이 선정되자, 대우조선해양이 "설계도면 유출로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선정 과정을 문제삼았다. 그러나 방사청은 "연관성 없다"며 현대중공업 손을 들어줬다. 법원도 대우조선해양이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낸 우선협상자 확인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하지만 당시 기소된 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직원 9명이 지난해 11월 전원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이를 기점으로 현대중공업은 3년간 불공정행위 감점(1.8점)을 받게 됐다.
침묵하던 한화오션은 한화그룹 편입 직전인 지난 4월, 이 문제를 다시 끄집어 내 "KDDX 사업자(현대중공업) 선정의 적법성 여부를 감사해달라"며 국민감사를 청구했다. 한화오션은 현대중공업이 KDDX 개념설계 자료를 조직적으로 은닉 관리해 왔음이 재판 결과로 드러났다"며 "사업자 선정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HD현대중공업은 "공정성 훼손이 없는 걸로 법원이 이미 판단한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업계 관계자는 "해묵은 설계도면 유출 사건을 한화오션이 단순히 억울해서 다시 꺼낸 건 아니었을 것"이라며 "결과적(5·6번함 수주)으로 보면 매우 영리한 전략"이라고 했다.
5·6번함 수주전은 현대중공업이 적용받은 '1.8점 감점의 높은 벽'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는 향후 군함 수주전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중공업의 충격은 더 크다. 선도함 기본설계를 따낸 KDDX의 선도함 수주도 장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방사청은 내년 KDDX 후속함 입찰을 비롯, 배치3를 잇는 울산급 배치4 사업도 조만간 확정한다. 장보고 배치2, 군수지원함 배치2 등 향후 2년내 수척 이상의 군함이 발주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KDDX 사업은 사상 첫 국산 구축함 건조 프로젝트로 사업 규모가 7조8000억원에 달한다. KDDX 선도함 사업을 따낸 조선사가 차세대 수상함 판세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여러모로 열세였던 한화오션은 5·6번함 수주로 ‘전략의 힘’ 을 확인했다. 한화오션은 기습적인 국민감사 청구로 경쟁사의 약점을 노렸다. 그룹 최고경영진까지 합세해 방산 시너지와 투자 의지를 부각했다.
실제 한화오션은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진행된 입찰 현장실사에서 시설 및 인력, 투자 부족, 노후화 등 여러 문제점을 지적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실사 당일, 한화오션은 수상함 2척을 동시 건조하는 실내 탑재공장 구축 등 1000억원 이상을 투자하겠다며 수주전 승기에 쐐기를 박았다.
약점이던 전문인력도 전사적으로 확충했다. 한화그룹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등 방산분야 전문인력 일부를 한화오션에 파견, 방산 분야에 투입했다. 회사 관계자는 "방산 계열에서 수십명의 전문인력이 이직해 한화오션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또 한화오션은 연내 400명 정도를 신규 채용, 인력 1만명대로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한화그룹 차원에서 결집되는 한화오션의 수주 파워가 과거 산은 체제의 대우조선해양 시절과는 딴판이다. 5·6번함 승패가 갈린 이후 군함 수주전 판도가 확 달라진 것이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도 "양사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특수선(방산) 부문은 험난한 시장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현대중공업 입장에선 기술력 격차를 넘어서 전문인력 확충, 시설 투자, 그룹사 시너지 등 여러 복합적인 면에서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특히 '1.8점의 벽'을 넘을 특단의 조치가 절실해졌다. 과거에도 한화오션과 맞붙은 입찰에서 0.5점 안팎의 기술 격차로 엎치락뒤치락했다.
다만 한화오션은 대우조선해양 인수 당시 제한 조건이 걸림돌이다. 한화그룹은 특수선 분야 기술 개발 및 건조 등에서 함정 장비 가격 차별 금지, 영업비밀 계열사에 제공 금지 등 공정거래위원회의 인수승인 조건을 지켜야 한다. 이는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승인이 늦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중공업은 향후 한화오션이 인수 조건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지에 대해 견제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1.8점'의 벽을 실감한 현대중공업은 불공정행위 감점 규정이 불합리하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규정 개정이 여러차례 반복된데다 현행 감점 규모, 적용기간이 과도하다는 것이다. 국가적인 중장기 방산 경쟁력 및 생태계를 훼손, 왜곡할 수 있다며 규정을 완화,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보안 감점 이슈는 현대중공업이 5·6번함 입찰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하지만 방사청과 업계는 부정적이다. 과거 전례상 형평성 시비, 특정업체 봐주기 등의 논란의 소지가 많아 불공정행위 감점 규정 개정에는 매우 신중한 입장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보안사고 감점 이슈는 현대중공업과 당시 대우조선해양(한화오션)이 서로 여론전을 벌일 만큼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고 했다. 이미 규정에 따라 불공정행위 감점이 결정, 시행 중인 문제에 대해 특정업체 이슈로 다시 개정 논의를 공론화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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