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이중섭을 그동안 우리는 절반만 알았다

이혜미 2023. 8. 11.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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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부인 시선 담은 평전 '이중섭, 그 사람'과
편지화의 예술적 가치 드러낸 '이중섭, 편지화' 쓴
저자 오누키 도모코 기자와 최열 미술사학자 인터뷰
다큐멘터리 영화 '이중섭의 아내' 중 2013년 제주를 찾은 야마모토 마사코가 서귀포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이중섭, 그 사람'의 저술을 위해 그를 세 번 만난 오누키 도모코 마이니치신문 기자는 "바다를 보면서 네 가족이 제주에 살았던 행복했던 시간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혜화1117 제공

이중섭(1916~1956)에게는 으레 두 가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비운의 요절 천재' 그리고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 화가'. 빈곤하여 양담배를 싸는 손바닥만 한 은박지에 뾰족한 도구로 한 드로잉은 '은지화'라는 이름을 얻었고,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만나지 못하는 일본인 아내와 두 아들을 향해 애절한 마음을 담은 그림과 글씨를 담은 작품은 '편지화'라는 고유한 장르로 태어났다.

그러나 두 수식어가 이중섭을 총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간 한국의 입장에서 바라본 이중섭의 면모는 단면에 불과하다. 그의 생과 창작세계는 부인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한국명 이남덕·1921~2022)'라는 존재를 떼어내고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서사의 공백을 메우는 두 권의 책이 최근 출간됐다.

야마모토 마사코 여사의 시선을 담은 일본 최초의 이중섭 관련 도서인 '이중섭, 그 사람'을 쓴 오누키 도모코(왼쪽) 마이니치 신문 기자와, 그간 주변부로 취급받았던 이중섭의 편지화를 예술 장르로 승화한 최열 미술사학자·평론가가 9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자신의 책을 들어 보이고 있다. 서재훈 기자

'이중섭, 그 사람'은 2021년 '사랑을 그린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 발행되었고,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마이니치 전 서울특파원 오누키 도모코(48) 기자가 썼다. 동시에 최열(67) 미술사학자·평론가가 '편지화'를 독자적인 예술장르로 보고 그 가치를 드러낸 '이중섭, 편지화'도 나란히 출간됐다. 제각기 다른 각도에서 이중섭의 빈 퍼즐 조각을 끼워 맞춘 두 저자를 9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났다.

오누키 기자가 이중섭을 처음 알게 된 건 서울에서 지내던 2016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이중섭, 백년의 신화' 전시를 관람하고서였다. 이중섭은커녕 한국 미술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던 그였지만, 당시 야마모토를 인터뷰한 국내 언론 기사를 보고 흥미가 생겨 일부러 발걸음했다. 전시회에서 눈망울을 번득거리는 황소 그림 앞에 선 초등학생들이 "어, 이거 유명한 그림이잖아"라며 알은체를 하고, 편지화 앞에서는 중년 여성들이 오밀조밀 모여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중섭'이라는 세 글자가 뇌리에 박혔다.

오누키 기자가 처음 작성한 원고의 제목은 '돌아오지 않는 강'이었다. 이후 일본에서 책으로 출간될 때에는, 이중섭과 그의 생애를 아는 일본 대중이 거의 없었기에 '사랑을 그린 사람'으로 출간됐다. 한국에서 '이중섭, 그 사람'으로 출간되는 과정에서 이중섭에 대해 이미 잘 알려진 부분은 과감하게 덜어냈다. 일본에서의 사정과 달리 이중섭이 국민화가임을 모르는 한국 사람은 찾기 어렵기 때문. 서재훈 기자

이후 도쿄에 살고 있던 당시 95세의 야마모토를 만나 인터뷰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 사람들은 이중섭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같은 해 11월에 나온 기사를 본 일본 쇼가쿠칸 출판사가 출간을 제안했다. 그리하여 오누키 기자는 이중섭의 생애와 족적을 좇고 야마모토를 비롯해 그의 아들, 손녀 등과 수시로 만나며 장장 7년에 걸친 여정에 뛰어들었다. 책의 기반이 된 원고는 2020년 쇼가쿠칸 논픽션 대상작으로 선정됐다.

야마모토의 육성으로 당시 이중섭 부부를 둘러싼 일화가 복원되었고, 그 과정에서 차남 태성이 미공개 서한을 발견해 오누키 기자에게 제공하면서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산가족으로 지내던 시기, 이중섭이 부인에게 보낸 편지 8통을 비롯해 화가 김환기의 부인 김향안이 야마모토에게 보낸 것 등 당시 부부와 주변인의 사정을 살필 수 있는 귀하디 귀한 사료였다.

"그간 이중섭만 야마모토를 애타게 짝사랑한 것처럼 알려져 있으나, 절대 그렇지 않았어요. 장인장모가 이중섭과의 결혼을 반대했다고 알려진 것 역시 진실과는 달랐고요. 생전 야마모토 여사가 굉장히 속상해했다는데, 지금이라도 곡해된 사실을 바로잡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오누키)"

2014년 '이중섭 평전'을 내면서 '나름 이중섭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았다'고 자부했던 최열 평론가에게 있어 2015년 현대화랑이 '이중섭의 사랑, 가족'전에서 내보인 미공개 편지들은 일종의 미해결 과제였다. 그로부터 10년을 넘기지 않고, 그는 '이중섭, 편지화'를 통해 이중섭의 독보적인 예술세계를 재탐구한 결과물을 내보냈다. 서재훈 기자

"1945년에 야마모토는 이중섭과 결혼을 하기 위해 연합군이 폭뢰를 터트리는 대한해협을 건너 원산으로 향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야마모토의 강인하고 올곧은 면모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옆에서 최열 평론가가 거들었다. 그는 오누키 기자가 저술 기간 가장 의지했던 인물. 본인이 가지고 있던 이중섭 작품의 디지털 파일과 정보를 기꺼이 제공했을 뿐 아니라, 2014년 그가 출간한 '이중섭 평전'은 저술 내내 든든한 참고 자료가 돼 주었다.

최 평론가의 새 책인 '이중섭, 편지화'는 현전하는 편지화 51점을 모두 담아 형식과 내용을 기준으로 분류하고, 그 특징을 분석했다. 오랜 기간 편지화는 글씨 부분이 가려진 채 그림만 전시되곤 했는데, 이는 소장자들이 그것이 편지가 아닌 (더욱 가치 있다고 평가되는) '그림'이길 바랐기 때문이다. 책은 그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던 이중섭의 '편지화'를 하나의 새로운 장르로 인식하여, 그것이 가진 예술적 의미와 가치를 밝혀냈다. 이중섭은 떠돌던 시절 모든 작품에 제작 연월을 표기하지 않았기에 최 평론가가 비평과 분류의 바로미터로 삼은 것은 이중섭의 애타는 마음과 시선. 즉, '사랑'이었다.

한국과 일본 각각의 위치에서 '이중섭의 사랑'을 조명하는 두 권의 책이 탄생함으로써 이제 우리는 이중섭을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 하나는 사랑의 대상이자 주체였던 야마모토라는 인물의 평전으로, 다른 하나는 사랑의 표현을 담은 그릇인 편지화로 말이다. 책은 3일에 출간되었지만, 출판사는 두 책의 판권일을 야마모토의 1주기인 오는 13일로 표기했다.

이중섭, 그사람·오누키 도모코 지음·혜화1117 발행·380쪽·2만1,000원
이중섭, 편지화·최열 지음·혜화1117 발행·320쪽·2만5,000원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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