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하나 놓았을 뿐인데 섬이 살아났다
천혜 환경· 역사 가치에도 접근성 나빠 '외면'
2007년 한산도 잇는 '추봉대교' 개통과 함께
관광객→일자리→전입가구↑… 선순환 구조
편집자주
3,348개의 섬을 가진 세계 4위 도서국가 한국. 그러나 대부분 섬은 인구 감소 때문에 지역사회 소멸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생존의 기로에서 변모해 가는 우리의 섬과 그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섬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문제가 접근성이다. 한국섬진흥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464개 유인도 중 섬 내 대중교통 수단이 없는 곳은 80%인 373개에 달한다. 73개 섬에는 여객선ㆍ도선조차 다니지 않는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2019년 실시한 국민 섬 인식조사 결과에서도 섬 생활의 불만족 요인 1위는 ‘교통인프라 부족’이 차지했다. 연륙ㆍ연도교 설치 여부에 따라 섬의 가치가 달라진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배경이다.
다리 하나로 이른바 ‘몸값’을 높인 섬이 경남 통영시 추봉도다. 추봉도는 통영 한산면에서 가장 큰 섬인 한산도와 250m밖에 떨어지지 않은 이웃 섬이다. 수백 년 동안 별개였던 두 섬은 2007년 섬과 섬을 잇는 연도교 ‘추봉대교’가 놓이면서 하나가 됐다. 지난 2일 추봉도를 찾았다.
천혜 자연환경, 역사 가치도 풍부
통영항여객선터미널에서 추봉도에 바로 가는 배편은 하루 두 번뿐이지만 한산도를 거치면 한 시간에 한 번씩 뭍과 섬을 오갈 수 있다. 한산도까지 소요시간은 30분, 요금은 성인 기준 왕복 1만1,300원이다. 한산도 제승당선착장에 도착하면 마을버스가 시간 맞춰 대기하고 있다. 이 버스를 타고 한산면사무소가 있는 진두에서 내려 걷거나, 다른 마을버스로 환승해 봉암에서 하차하면 추봉도에 도착한다. 봉암은 추원, 예곡, 곡룡포와 함께 추봉도를 이루는 마을 중 하나다. 추봉이라는 지명도 4개 마을에서 가장 큰 추원마을과 봉암마을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봉암마을에 들어서면 ‘봉암해수욕장’ 간판이 가장 먼저 방문객을 반긴다. 봉암해수욕장은 만곡을 따라 1km 정도 펼쳐진 몽돌해변이다. 몽돌은 오랫동안 개울을 돌아다니다 귀퉁이가 다 닳아 모가 나지 않고 둥근 돌을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흔히 있는 모래 해변과는 또 다른 맛을 더해 주는 해수욕장으로, 피서 절정기에도 몽돌 구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호젓하다. 경남 진주에서 가족과 함께 휴가를 온 김준희(57)씨는 “7월 말부터 8월 초는 어딜 가나 인파가 몰리는데 이곳은 섬 속에 있어 그런지 피서철에도 한산해 자주 찾는다”며 “동글동글 몽돌이 파도와 어우러져 내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한 번에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실제 파도에 몽돌이 구르는 소리는 2001년 환경부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봉암해수욕장 외에도 추봉도는 동백ㆍ후박ㆍ팔손이나무가 우거진 난대수종 자생지, 참돔 포인트 갯바위 낚시터 등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세종 원년인 1419년 대마도 정벌군의 집결지이자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가 있던 곳으로 역사적 의미도 깊다. 그러나 지금까진 관광지로 이름난 한산도와 덩치 큰 거제도 사이에 끼여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2007년 한산도를 연결하는 왕복 2차선 교량 개통과 함께 새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김정호(71) 봉암마을 이장은 “한산도는 연간 18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가지만 바로 옆 추봉도는 다리로 연결되기 전까지 아는 이도 드물었다”면서 “추봉도의 역사는 연도교 개통 이전과 이후로 나눠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며 웃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다리 개통을 계기로 추봉도엔 외지인의 발길이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 어업과 농업이 전부였던 주민들은 관광업으로 눈을 돌렸다. 기껏해야 민박 정도에 그치던 관광 소득은 바지락 캐기, 선상 통발체험, 바다생물채집 등 각종 어촌체험부터 직접 잡은 해산물을 요리해먹는 프로그램 등으로 다양해졌다. 입소문을 타면서 2006년 처음 열린 한산도 대표축제 ‘바다체험축제’도 2015년부터 추봉도로 장소를 옮겼다. 땅두릅, 옥수수, 톳, 미역 등 계절별 제철 특산물 판매와 추봉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전통주 개발도 이어졌다.
마을 주민들의 이 같은 노력은 2020년 4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해양수산부 공모 ‘어촌뉴딜 300사업’에 선정되는 쾌거로 이어졌다. 어촌뉴딜 300은 낙후된 선착장 등 어촌의 필수 기반시설을 현대화하고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어촌ㆍ어항 통합개발을 추진해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는 사업이다. 여객선 기항지 개선, 어항시설 정비, 안전시설 확충 등 토목공사 위주의 공통사업과 지역 특색을 반영한 관광ㆍ문화, 소득(레저체험, 음식점 등) 중심의 특화사업이 핵심인데, 모든 건 지역협의체 주도로 진행된다.
20년 넘게 어촌계장 등 추봉도 대표로 일하며 마을의 장단점을 파악한 김 이장은 주민 30여 명과 봉암몽돌여행협동조합을 설립하고 낚시 체험장으로 쓸 수 있는 다목적 부잔교(선박의 계류를 위해 물 위에 띄워 만든 구조물) 설치, 커뮤니티 광장 조성, 휴게공원 정비, 해변스토리텔링 코스 만들기 등 사업을 기획했다. 전국 최초로 한국해양소년단과 연계해 해상택시, 패들링, 섬 투어 등 각종 레저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조경웅 한국해양소년단 경남남부연맹 사무국장은 “보통 섬 관광은 마을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은데 추봉도는 관계기관들과 적극적인 협업을 통해 다양한 선진 사례를 만들어 냈다”며 “부산, 충남 보령 등 다른 지역에서도 벤치마킹 중”이라고 귀띔했다.
지속가능한 섬을 가능케 하는 '다리'
섬에 생기가 돌면서 한때 180여 가구에 불과하던 가구수가 지난달 기준 200가구로 늘어나는 등 선순환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추봉도에 빈집을 매입한 김길연(61)씨는 “10년째 부산에서 추봉도를 오가다 최근에는 아예 집을 샀다”며 “접근성은 물론 자연환경이 좋아 계절마다 쑥을 캐거나 고둥을 잡고, 해수욕과 등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말했다. 지난 6월에는 섬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운 편의점과 카페, 식당, 숙박 기능까지 갖춘 최신식 복합건물도 생겨났다.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수익사업이다. 덕분에 일흔이 넘은 마을 주민들은 바리스타로, 요리사로, 캐셔(계산원)로, 저마다 새로운 직업을 가지게 됐다. 김 이장은 “결국은 섬도 일자리가 있어야 지속될 수 있다”면서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교통’”이라고 강조했다.
경남도와 통영시도 힘을 보내고 있다. 현재 정부가 남해안 관광벨트 구축을 위해 추진 중인 ‘남해안 아일랜드 하이웨이’에 통영 관광의 중심인 도남동과 한산면 2.8km 구간을 잇는 ‘한산대첩교’ 건설을 포함시켰고, 각각의 섬들을 교량으로 연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마을 주민들은 추봉도~장사도~죽도~비진도~용호도로 이어지는 연도교가 놓이면 추봉도가 섬 여행의 전초기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시영 경남도 해양수산국 어촌발전과 전문위원은 “섬에서 연도ㆍ연륙교는 물리적인 공간 연결 이상의 의미로 ‘생존’과 직결된다”면서 “교량 건설에 따른 환경훼손 등 부정적인 측면은 해소하고 통행권 보장, 교육여건 개선, 지역개발 및 관광산업 활성화 등 긍정적인 효과는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은경 기자 chang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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