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빙기 찾아온 지구, 인류는 종 뛰어넘는 사랑할 수 있었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서로 다른 호모종의 유전자가 섞여 내려온 건 약 10만 년 전부터 발생한 이종교배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다양한 호모종들이 지구상에 생존한 시기가 겹친다 하더라도 지리적으로 분리돼 있던 이들이 왜, 어디서 만나게 됐는지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악셀 티머만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 단장이 이끈 연구팀은 ‘기후변화’가 호모종의 이종교배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규명하고 연구 결과를 10일(현지 시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며 생긴 기후 변화로 서식지의 환경이 바뀌었고 각자 선호하는 서식 환경이 달랐던 호모종인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서식지가 중앙 유라시아에서 겹치게 되면서 두 종의 만남이 이뤄졌다는 게 핵심 결론이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서로 다른 곳에 살았던 고대 인류 종이 일부 유전자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대표적인 과학자가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스반테 파보 독일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 교수다. 파보 교수는 2010년 네안데르탈인 여성 4명의 뼈를 분석해 유럽인과 아시아인 모두 1∼2%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를 갖고 있음을 밝혀낸 바 있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과 중국 푸단대 공동연구진은 5월 8일 현대인의 오똑하고 길쭉한 코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섞인 결과라는 연구를 국제 학술지 ‘커뮤니케이션스 바이올로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호모사피엔스와 함께 플라이스토세(약 258만∼1만1700년 전)에 출현해 가장 최근까지 지구상에 남아 있었던 고인류다. 데니소바인은 현재까지 발견된 화석이 거의 없어 정확한 생존 연대를 파악하긴 힘들지만 과학자들은 이들이 약 5만 년 전까진 존재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티머만 교수 연구팀은 IBS 슈퍼컴퓨터 ‘알레프(Aleph)’를 활용해 시뮬레이션한 강수량, 산림 변화 등 기후 변화 모델과 고인류의 뼈 화석 자료 등을 융합해 선호하는 서식 환경에 따른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분포 지도를 만들어 분석했다. 분석 결과 온대림과 초원지대를 선호하는 네안데르탈인은 남서부 유라시아에, 냉대림 같은 추운 환경을 선호하는 데니소바인은 툰드라 지대가 있는 북동쪽 유라시아에 주로 서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데니소바인의 서식지를 추정한 건 이번 연구가 처음이다.
서로 다른 기후 환경을 선호하던 이들은 중앙 유라시아와 북동부 유라시아의 기온이 온화해지는 간빙기가 찾아오며 만나게 됐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상승하면서 시베리아에 4만, 8만, 12만 년마다 따뜻한 온난화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간빙기가 되면서 온대림이 북유럽에서 유라시아 중앙부 동쪽으로 확장됐다. 이는 온난한 기후를 선호하는 네안데르탈인이 데니소바인의 주요 서식지인 동쪽으로 이동하는 계기가 됐다. 지구 공전궤도가 더 타원형으로 바뀌면서 북반구 여름 태양과 지구가 서로 가까이 있을 때 두 종의 서식지가 지리적으로 겹쳤다.
연구팀은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알타이 산맥, 사르마틱 혼합림, 이베리아 반도 등의 지역에서 공존하는 동안 최소 6번 정도는 상호작용을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중 첫 상호작용은 빙하기에 이뤄졌으며 데니소바인이 그 시기에 유럽으로 이동하면서 만났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연구팀은 이에 대해 “매우 작은 가능성”이라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또 시뮬레이션 결과로 도출한 두 고인류의 이동 경로가 2018년 파보 교수 연구팀이 발견한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혼혈종인 ‘데니’의 뼈 화석이 나온 데니소바 동굴 위치와 겹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논문의 제1저자인 자오양 루안 연구위원은 “비교적 연구가 많이 이뤄진 네안데르탈인과 달리 데니소바인은 언제, 왜 멸종했는지 아직 알려지지 않아 심화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티머만 단장은 “인간이 일으킨 지구온난화로 인해 기후 변화가 더 급격해지고 있다”며 “현재 인류가 서식 환경에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건희 동아사이언스 기자 wiss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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