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구경하는 눈초리서 해방된 모던걸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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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급변하던 세상에서 '모던걸'들이 거쳐야 했던 폭풍의 눈과 그럼에도 꺾이지 않던 정신을, 그 속에서 태동하던 에너지를 춤으로 보여주려 해요."
이달 24∼2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되는 국립현대무용단의 신작 '여자야 여자야'의 안무를 맡은 안은미 씨(60)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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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격동기 꺾이지 않던 정신”
12명 무용수가 신여성의 에너지 표현
퓨전밴드 ‘이날치’ 장영규가 음악 맡아
이달 24∼2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되는 국립현대무용단의 신작 ‘여자야 여자야’의 안무를 맡은 안은미 씨(60)의 말이다. 9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신작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국립현대무용단과 국립극장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공연은 1920, 30년대 우리나라에서 구습을 비판하며 새 길을 개척했던 신여성을 이야기한다.
파격적인 안무와 무대 구성으로 대체 불가능한 스타일을 구축한 안 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무용가로 꼽힌다. 2018년에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파리 시립극장(테아트르 드 라빌)의 상주예술가로 위촉됐고, 그의 대표 레퍼토리인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해외 50개 안팎의 극장 및 축제에 초청을 받았다. ‘여자야 여자야’는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 무용수들과 함께 다양성을 이야기한 공연 ‘잘란잘란’ 이후 10개월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짓에 담긴 역사를 발견하고 춤으로 풀어냈던 그가 과거의 인물상을 토대로 안무하는 건 전례 없는 일이다. 안 씨의 대표작인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아저씨의 무책임한 땐스’ 등은 각각 동시대 할머니와 중년 남성의 몸에 새겨진 사회적 맥락을 짚었다.
신작에서 12명의 무용수는 ‘닫혀 있던 여성의 몸’이 점차 열리는 과정을 표현한다. 개화기 서구 문화를 받아들인 신여성들이 거추장스러운 치마와 쪽 찐 머리 대신 짧은 치마, 단발머리를 선택한 데 따른 변화다. 안 씨는 “조선시대의 문화는 앉아있는 자세, 말하는 태도 등 여성의 몸 제스처까지 제한한다”며 “사진 기록 속 신여성들은 홀가분해진 옷차림 덕에 손발의 움직임이 훨씬 자유로워졌다. 터져 나온 해방감을 춤에 녹여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까까머리에 형광 꽃무늬 옷을 입고 오토바이를 모는 ‘21세기 신여성’ 안은미는 자료를 수집하는 동안 ‘최초’를 일궈낸 인물들에게 특히 마음이 가닿았다고 했다. 한국 최초의 여자 서양화가 나혜석, 국내 첫 단발머리를 시도한 강향란 등과 연대감을 느낀 것.
“나를 구경하는 눈초리들, 이해받지 못하는 답답함을 누구보다 잘 알아요. 저는 거기서 고통받지 않기로 결심했을 뿐, 크고 작은 굴레들이 상존하죠. 이를 견뎌낸 최초의 시도들이 있었기에 남자와 여자 모두 부당한 현실로부터 차츰 해방될 수 있었던 겁니다.”
무용수들은 단조로운 ‘유관순 스타일’ 한복을 벗어던지고 색색깔 옷으로 갈아입으며 무대를 쉼 없이 뛰어다닌다. 의상과 무대는 시대상을 반영하되, 화려하고 통통 튀는 ‘안은미식’으로 제작됐다. 동대문종합시장을 휩쓸며 원단과 부자재를 손수 떼 왔다. 공연에 사용되는 음악은 국악퓨전밴드 이날치의 장영규가 작곡했다. 안 씨는 “30년 가까이 함께 작업하면서 말없이 서로 믿고 맡기는 듀오가 됐다. 모던걸의 춤사위에 꼭 맞는 1시간짜리 교향곡을 들려줄 예정”이라고 했다.
1988년 ‘종이계단’을 발표하며 안무가로서 첫발을 내디딘 그가 지금까지 만든 작품은 적게 잡아도 150편이 넘는다.
“밥 먹고 작품만 했어요. 이걸 끝내면 저걸 또 춤으로 빚어보고 싶고. 과학자가 공식을 찾아내기 위해 쉬지 않고 연구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세상에 궁금한 게 이렇게나 많은데 글쎄, 잠이 와요?”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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