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고객 계좌 1000개 만든 대구銀 직원들...은행권 내부 통제 마비수준
최근 시중·지방은행들에서 수백억원대 횡령과 고객 계좌 무단 개설 등 각종 임직원 비위가 잇달아 터지면서 은행권의 내부 통제가 ‘사실상 마비’ 수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작년 우리은행에서 사상 최대 규모인 700억원대 횡령 사건이 터진 뒤, 은행권 최고경영자(CEO)들이 입을 모아 내부 통제를 강조했지만 결과적으로 공염불에 그쳤다.
10일 금융감독원은 작년 대구은행 직원 수십 명이 고객의 동의 없이 1000여 개가 넘는 고객 계좌를 무단으로 개설한 정황이 포착돼 긴급 검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대구은행은 지난 2021년부터 은행 입출금통장과 연계해 증권회사 계좌를 만들 수 있는 서비스를 운영 중인데, 직원들이 자신들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고객에게 알리지도 않고 계좌를 맘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금융실명제법 위반일 뿐만 아니라, 형법상 사문서 위조죄에 해당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구은행 고객이 실제 A증권사 계좌를 만들기 위해 신청서를 썼는데, 이후 직원이 이 신청서를 복사한 뒤 무단으로 수정해 추가로 B증권사 계좌를 만드는 식이었다. 특히 직원들은 이런 사실을 숨기기 위해, 계좌 개설 시 고객에게 가는 안내 문자를 차단하기도 했다. 고객 정보란에 휴대전화 번호 앞자리를 ‘010′이 아닌 ‘016′ 등 아예 없는 번호로 입력해 고객이 문자를 받아볼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잇따른 은행 비리, 공통점은 ‘외부 개입해야 발견’
최근 은행권의 비위는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9일엔 KB국민은행 직원과 그 가족들이 2021년부터 지난 4월까지 주식 관련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총 127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것이 금융 당국에 적발됐다. 은행 내에서 증권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내부 정보인 무상증자 일정 등을 미리 알고 이를 주식 매매에 이용한 것이다. 지난 2일엔 경남은행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담당 직원이 7년 동안 562억원의 회삿돈을 횡령·유용한 사실이 포착돼 검찰이 경남은행을 압수수색했다. 작년 우리은행 직원의 700억원대 횡령에 이어, 은행권에서 역대 두 번째로 규모가 큰 횡령 사건이었다.
이달 발생한 은행권 비위들은 은행이 자체적으로 적발하지 못하고, 모두 수사나 민원 등 ‘외부 개입’에 의해 밝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구은행 무단 계좌 개설’ 사건은 지난 6월 말 대구은행에 고객의 민원이 접수돼 은행이 내부 감사에 나서며 전모가 밝혀졌다. ‘국민은행 미공개 정보 이용’ 사건은 금감원이 무상증자 테마주 관련 기획 조사를 벌이다 적발했으며, ‘경남은행 500억대 횡령’ 사건은 검찰이 해당 직원의 다른 범죄 혐의에 대해 수사를 시작하자 금감원이 은행에 자체감사를 지시해 밝혀졌다.
민원이나 수사·조사가 없었다면, 은행들은 자기들 내부의 치명적인 비리를 지금까지도 몰랐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날 경남은행 횡령 건에 대해 “횡령을 한 본인 책임은 물론, 관리를 제대로 못한 사람, 당국에 보고가 지연된 부분 등에 대해 법령상 허용 가능한 최고 책임을 물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은행원 윤리’부터 제대로 세워야”
금융 당국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부 사건을 적발해내긴 했지만, 최근 들어 초대형 규모로 커진 은행권 횡령에 대해 금감원이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우리은행 횡령이 터진 뒤 금감원은 은행들과 함께 준법감시 인력 충원 등을 골자로 하는 ‘내부통제 혁신 방안’을 내놨지만, 금융사고를 막는 데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작년 은행권 총 횡령금액은 740억원으로 역대 최고였는데, 올해는 7월까지 확인된 것만 578억원이다.
일부 은행 임직원들의 ‘직업 윤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거액의 돈을 만지는 은행 업무 특성상 유혹에 빠지지 않는 윤리 의식이 필수적인데, 이것이 쉽게 경시된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아무리 ‘내부 통제’ 시스템을 강화해도 결국 실제 자금을 출납하고 집행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윤리의식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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