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윤의 대안 모색] 야만의 과학

장병윤 한살림부산 이사장 2023. 8. 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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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윤 한살림부산 이사장

“이 유용한 지식이 얼마나 좁은지, 유용함을 얻는 대신 어떤 것을 잃어야 했는지도 또한 잘 알고 있다. 이런 지식은 한편으로는 분명 진실이지만, 그 진실이란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또한 완벽하지도 못하다.” 깊은 통찰로 현대문명의 폭력성을 파헤쳐 온 미국의 농부 철학자 웬델 베리가 과학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를 놓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 속에서 웬델 베리의 경구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학의 불완전하고 미숙한 점에 대한 그의 지적을 통해 지금 지구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담한 위기들의 근저에는 과학기술에 대한 인류의 맹신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새삼 일깨운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기시다 일본 총리가 오는 18일 미국에서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해 각료회의를 열고 최종결정할 것이라고 한다. 오염수 방류가 이달 말께 실행될 것이라는 구체적 시점까지 나온다.

일본이 과학적 명분을 내세우면서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겠다지만, 그것은 반생태적이고 반인류적 야만이다. 안정성이 입증되지 않은 폐기물은 자국 안에서 처리하는 게 원칙임에도 해양투기를 강행하는 것은 자국 안에 위험물질을 두지 않고 처리비용도 줄이려는 지극히 이기적 발상이다.

바다는 지구에 생명의 싹을 틔운 생명의 근원이자 지구 생태계를 유지하는 마지막 완충지대다. 따라서 바다는 누구의 소유도 아닌, 인류 공동의 자산이자 미래의 것이다. 그래서 ‘생명의 바다’라고 하는 것 아닌가. 그 생명의 바다에 과학을 앞세워 방사능 오염물질을 버리는 것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도쿄전력은 오염수 처리시설 알프스(ALPS)로 60여 가지 핵종을 걸러낼 수 있다고 한다. 걸리지 않은 삼중수소는 바닷물에 희석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변해 왔다. 그리고 예정된 수순으로 도쿄전력의 주장을 뒷받침 해주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보고서가 나왔다.

IAEA는 지난달 초 보고서를 내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는 국제적 안전기준에 부합한다고 발표했다. 특히 이번 보고서는 태평양 연안 11개 국가의 원자력 안전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는 IAEA 태스크포스가 2년에 걸쳐 검증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방사능 오염수의 방류를 승인한 것은 아니며, 정당화할 책임은 일본 정부에 있다며 한 발을 빼고 있다.

이런 IAEA 보고서에 대한 반론도 잇따른다. 보고서 어디에도 핵종 조성과 어류 농축계수의 불확실성에 대한 구체적 검증의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핵연료에 직접 닿은 오염수에 어떤 핵종이 있는지, 방사능이 어류에 얼마나 축적되는지 정확한 정보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안전성 검증을 원자력 전문가들에게만 맡겨진 점도 문제다. 생태학자나 독성전문가 등이 배제된 채 어떻게 앞으로 수십 년, 수백 년에 걸쳐 일어날 바다 생태계의 영향을 판단한다는 말인가.

우리는 멀지 않은 과거에 과학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치명적 오류를 기억한다. DDT의 경우다. 1940년대 살충제로 선보인 DDT는 생활을 혁신할 ‘선물’로 찬사를 받았고, 그를 발명한 스위스 화학자 뮐러는 노벨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DDT는 독성과 잔류성으로 생명체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대부분 국가에서 사용을 금지했다.

지구 생태계는 과학의 분석적 미시적 관점으로 재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생태계는 먹이사슬과 서식처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생명체가 유기적으로 얽힌 거대한 관계망의 한 부분이 무너지면 어떤 일이 따를지 예측할 수 없다. DDT의 경우도 치사량보다 훨씬 낮은 농도에도 철새들의 개체가 줄어드는 일이 발생했다. 먹이사슬을 통해 축적된 DDT가 생식기능에 영향을 미친 결과다. 미량이라지만 바다에 풀어진 방사능이 해양생태계 먹이사슬을 통해서 인간에게 어떤 치명타를 가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IAEA가 검증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공정성 또한 시빗거리다. IAEA의 속성을 살펴보면 그들은 경기장의 선수이지 심판이 될 수 없다. IAEA가 핵산업의 확장에 진력해 왔다는 점에서 방사능 오염수 해양투기와 관련해선 이해당사자다. 판단의 주체가 돼서는 안 된다.

과학기술이 풍요로움과 편리를 제공하며 인류의 삶에 공헌해 왔지만, 인류를 위기로 내몬 것 또한 사실이다. 오늘 인류에게 괴멸적 위기를 부른 기후재앙 역시 근대산업화 이후 물질적 풍요를 탐닉해 온 인류사회와 자기성찰이 없었던 과학기술의 오만이 부른 참사 아닌가.


온갖 욕망이 폐기된 바다, 만신창이가 된 생명의 바다에 아무것도 버리지 마라! 우리가 대체 우리의 삶터에 무슨 짓을 하는지 웬델 베리의 경고를 통해 되돌아봤으면 한다. “우리가 생태계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라곤, 우리가 아는 것이 터무니없이 적다는 사실, 그리고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뿐이다. 현재 인간은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지도 모를 정도로 무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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