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56] 역사를 희생시키는 권력
홍수가 일으킨 재난으로 중국이 들썩인다. 여러 곳이 난리지만 허베이(河北) 줘저우(涿州)가 심하다. 이곳은 ‘삼국연의’의 서막인 도원결의(桃園結義)의 현장이자, 소설의 두 주역인 유비(劉備)와 장비(張飛)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어디 그뿐인가. 북송(北宋)을 세운 태조 조광윤(趙匡胤)을 비롯해 역학(易學)의 대가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소강절(邵康節) 등을 낳은 땅이다. 수도 베이징의 서남 관문(關門)이자 중원(中原)의 인문적 정체성을 대변하는 곳이다.
이곳이 얼마 전 물에 잠겼다. 피할 수 없는 경우였다면 원망이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인위적 피해로 보여 문제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60㎞ 떨어진 곳은 슝안(雄安)이다. 공산당 총서기 시진핑(習近平)의 지시로 세운 신도시다. 베이징을 대체할 새 수도로 각광을 받는다. 그러나 슝안은 본래 와지(窪地)다. 홍수가 나면 물이 몰려드는 저지대라는 얘기다. 지난달 말 140년 만의 홍수가 베이징 북부에서 발생하자 공산당 관리들은 이 슝안을 지키고자 무리수를 뒀다.
도원결의의 현장이자 유비와 장비의 고향 일대 제방을 헐어 큰물이 줘저우를 삼키도록 하는 대신 시진핑의 ‘업적’인 슝안을 지켜낸 혐의가 짙다. 홍수로 불어난 물은 본래 저지대인 슝안에 몰려들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허베이 당국자는 그 무리수를 감행하면서 줘저우 등을 ‘호성하(護城河)’로 지칭했다. 권력의 정점을 ‘성(城)’, 그 주변을 성벽 호위용 ‘해자(垓子)’에 비유했다. 당의 집권, 권력 핵심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선 역사와 국민의 안전도 희생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촉한(蜀漢)의 옛 황제였던 유비의 자취도 새 ‘황제’의 안전을 위해서는 금세 뭉갤 수 있다는 태도다. 역사와 인명을 안중에 두지 않는 공산당의 습성이 물난리 속에 또 도졌다. 거셌던 물길처럼 인심도 흉흉(洶洶)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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