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강 주력’ 포스코의 변심, 공급과잉 철근 시장 진입
포스코가 철근 시장 진출을 공식화하면서 중견 철강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그동안 철강업계는 고로가 있는 포스코가 판재류(후판·자동차강판) 같은 고급 제품을 만들고, 전기로가 있는 동국제강·대한제강 등은 쓰임이 다한 고철(철스크랩)을 녹여 철근·형강 같은 범용 제품을 만드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해왔다. 그런데 포스코가 고순도 쇳물을 갖고 이미 공급 과잉 상태인 철근 사업에까지 나서면서 업계 생태계를 뒤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코는 “생산량이 많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전기로 업체들은 포스코의 진입으로 국내 철근 시장이 치킨 게임으로 치달을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고급강 한다더니 웬 철근”
포스코는 지난 5월 ‘코일철근’에 대한 KS인증을 취득하고 6월에 제품설명회·가공시연회를 연 뒤 이달부터 코일철근 판매를 시작했다. 코일철근은 철근을 코일 형태로 둥글게 만든 것으로, 일반 직선 철근과 달리 코일을 풀어서 원하는 만큼 잘라 쓸 수 있다. 제품 손실이 적고 적재가 편한 대신, 가격은 직선 철근 대비 t당 3만~4만원 더 비싸다.
문제는 이미 수요 대비 공급이 많다는 것이다. 지난해 코일철근의 국내 수요는 연간 50만t이었는데, 코일철근을 생산하는 동국제강·대한제강의 생산 능력은 100만t이었다.
코일철근을 펴면 직선 철근이 되기 때문에, 업계는 전체 철근 시장에도 직접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전체 철근 시장도 이미 포화 상태다. 작년 현대제철을 포함한 국내 철근 제강사의 총 생산 능력은 1210만t으로 건설 업계의 철근 수요(1030만t)보다 많았다. 건설 경기가 침체되면서 올해 철근 수요는 약 950만t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특히 포스코는 고로에서 쇳물을 뽑아내는 일관제철 시스템을 갖춰 생산 효율이 높다. 전기로 업체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 포스코는 “향후 철근 생산량은 연간 수만t 수준, 시장점유율 1% 수준에 불과할 것”이라며 “주로 포스코이앤씨 등 계열사에 공급하는 용도”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기로 업체들은 포스코가 얼마든지 생산량을 추가로 늘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부가가치가 높은 고급강과 이차전지 소재 사업을 중점으로 하겠다던 포스코가 철근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산업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한 전기로 업체 관계자는 “반도체 만드는 삼성이 갑자기 구형 제품인 트랜지스터 만들고, 전기차 만드는 현대차가 골프카트까지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철근 치킨게임이 벌어지면 고철을 재활용하는 시장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 중국에 선재 사업 밀리자 철근에 관심
포스코가 철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최근 범용 선재 제품(철사·못·스프링)이 중국에 밀리자, 선재 공장의 유휴 설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 전기차 시장이 확대되며, 엔진에 들어가는 볼트·너트 등 선재류 수요도 줄고 있다. 지난 2021년 포스코의 선재 공장 생산량은 270만t이었는데, 지난해 태풍 영향까지 겹쳐 200만t으로 줄었다. 이에 놀리는 공장을 활용해 철근을 만들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철근 가격도 지난 2년간 오름 추세여서, 포스코 입장에선 유혹이 들 수밖에 없다. 철강사들이 친환경 철강을 만들기 위해 버려진 고철을 녹여 만든 제품을 늘리자, 고철 가격이 뛰면서 철근 가격도 오른 것이다. 포스코는 고철이 아닌, 고로 쇳물로 철근을 만들기 때문에 비용이 적게 들어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다.
전기로 업체들은 “탄소 배출 감소를 외치는 포스코가 탄소 배출이 많은 고로를 통해 철근을 만드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는 지적도 하고 있다. 하지만 포스코는 ‘무한 경쟁 시대’라는 입장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건설업에 쓰이는 형강, 구조용 후판을 생산하고 있어 철근까지 패키지로 판매할 필요성이 높아졌다”며 “코일철근 시장을 두세 개의 회사가 장악하고 있어, 고객사인 건설사와 철근 가공사들은 포스코의 진출을 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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