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50]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
6·25전쟁 당시 유엔 참전국 전시 물자가 일본을 거쳐 한반도에 반입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50년 7월 유엔군 사령부가 처음 설치된 곳도 서울이 아닌 도쿄였다. 공산 세력의 남하를 저지해야 하는 유엔군에 일본의 병참 기지 역할은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로 일본이 미군정에서 벗어나 주권을 회복하자 일본과 유엔군의 관계 설정 문제가 대두한다. 미국은 일본과 안보 조약을 체결하면서 유엔군의 일본 영토 주둔과 일본의 병참 지원(logistics support) 제공을 요청하였고, 일본은 이를 수락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외교 문서를 ‘요시다-애치슨 교환 공문’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체결된 ‘유엔군 지위 협정’은 유엔군 전력이 한반도에 투입되고 일본이 지원 의무를 부담하는 법적 근거로 지금까지 효력을 유지하고 있다.
유엔사는 1957년 서울로 이전하였으나, 요코타(橫田) 공군기지에는 지금도 유엔군 후방 사령부가 존속하고 있으며, 주일 미군 핵심 기지 7곳이 유엔군 시설로 쓸 수 있도록 지정되어 있다. 유엔사는 단지 상징적 존재가 아니라 한반도 유사시 유엔군 전력의 즉시 투입과 일본의 병참 지원을 통해 억지력을 담보하는 실효적 안전보장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유엔사를 매개로 작동하는 한·미·일 삼각 협력이 한반도 안보의 근간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다.
자국 영토를 외국의 무력 분쟁에 후방 기지로 사용하도록 양해하는 것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일본 내에도 한반도 전쟁에 일본이 자동적으로 개입하는 결과가 초래된다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 한일 관계 악화를 부추기거나 정전 체제를 종전 체제로 바꾸자는 주장은 그 속내가 유엔사 해체를 통한 삼각 협력 균열에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북한과 그 추종 세력이 가장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캠프 데이비드를 장소로 택하며 상징성을 더한 이번 한·미·일 정상회의가 삼각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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