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대신 돈… 빅테크들 ‘미래 프로젝트’ 접는다

유지한 기자 2023. 8. 1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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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AI 단백질 연구팀’ 해체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잇따라 ‘문샷(moonshot)’ 프로젝트들을 포기하고 있다. 그동안 빅테크 기업들은 별도의 연구조직을 꾸려 무인 자동차나 드론 배송, 풍선 인터넷 등 불가능해 보이는 미래 기술에 도전해왔다. ‘구글X’ 프로젝트나 아마존의 ‘그랜드 챌린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고금리와 인플레이션 등 경제 침체 국면에서 당장 돈이 되지 않는 혁신 기술 개발이 가장 먼저 비용 절감 타깃이 된 것이다. 관련 사업들이 정리되는 것은 물론 대규모 감원까지 이뤄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실리콘밸리의 문샷 시대는 끝났다”며 “문샷의 꿈을 포기하는 것은 회사가 중년으로 나아가는 단계”라고 평가했다.

그래픽=백형선

◇빅테크들 줄줄이 문샷 포기

지난 8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메타는 올봄 단백질 구조 예측 인공지능(AI) 개발팀 ‘ESM폴드’를 해체했다. 메타의 ESM폴드는 방대한 양의 생물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대규모 언어모델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였다. 10여 명 과학자가 소속돼 있었다. 이들이 개발한 모델은 경쟁사인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보다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속도가 최대 60배 더 빨라 세계 과학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지난해 11월에는 6억개 이상의 메타게놈 단백질 구조에 대한 최초의 데이터베이스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메타가 최근 급부상한 생성형 AI에 투자 역량을 집중하기로 결정하면서, 단시일 내에 수익을 낼 가능성이 없는 ESM폴드 프로젝트가 희생양이 됐다. FT는 “회사가 돈을 버는 AI 제품을 만들기 위해 순수 과학 프로젝트를 포기한다는 신호”라고 했다.

다른 빅테크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아마존은 최근 대기 중에서 물을 생성하는 기술, 이산화탄소를 제트기 연료로 전환하는 기술, 증강현실(AR) 헤드셋 등 그랜드 챌린지팀에서 추진해 온 3개의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구글도 풍선을 띄워 인터넷을 연결하는 프로젝트와 혈당을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치료제를 자동으로 투입하는 콘택트렌즈 개발 등을 중도에 그만뒀다. 개발이 보류된 마이크로소프트(MS)의 혼합현실 홀로렌즈 3도 중단된 문샷 프로젝트의 한 예다. 경제 전문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수년 동안 빅테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프로젝트에 돈과 에너지를 쏟아부었지만 최근 그들의 야망을 축소하고 실용주의로 전환하고 있다”고 했다.

◇중년 된 빅테크 기업들

문샷 프로젝트에 도전하던 과학자들은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빅테크 대규모 감원의 최우선 순위가 되고 있다. 빅테크들이 수익성과 업무 효율을 해고자 선정 핵심 기준으로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올해 초까지 2만7000명을 감원했고, 메타도 2만1000개의 일자리를 줄였다.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과 마이크로소프트도 1만명대 수준의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알파벳의 ‘베릴리 생명과학’, MS의 홀로렌즈 팀 등 주요 문샷 연구 개발 부서들이 가장 먼저 규모가 축소되거나 폐지됐다. 악시오스는 “최근 정리 해고의 물결은 업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일부 부서와 프로젝트에 특히 큰 타격을 입혔다”라고 했다.

테크 업계는 빅테크에서 문샷 프로젝트가 사라지는 이유를 기업의 성격 자체가 변했기 때문으로 본다. 구글, 메타, 아마존 등은 1990년대~2000년대 초에 만들어진 회사다. 창업 초기만 해도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급성장해왔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민첩한 신생 기업이 아닌 글로벌 거대 공룡이 됐다. WP는 “2010년대까지만 해도 투자자들이 수익성보다 성장성에 중점을 둬 문샷 프로젝트가 합리적이었다”며 “현재는 미래에 대한 과도한 투자보다는 수익성과 주주 환원에 더 관심이 많다”고 했다. 이 때문에 실패 확률이 높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고위험 고수익)’ 문샷 프로젝트보다는 클라우드, AI 등 수년 내 수익성이 나는 사업에 더 집중하는 것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던 창업자들이 대부분 2선으로 물러난 것도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문샷(Moonshot)

’달을 쏠 정도’의 혁신적인 기술 개발을 말한다. 1960년대 당시 기술로 도전적이었던 미국 달 탐사 계획 아폴로 프로젝트가 막대한 투자로 성공한 것에서 유래했다. 이후 구글과 아마존 등 빅테크들이 문샷 프로젝트를 통해 혁신을 이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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