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바벤하이머’ 열풍
귀를 의심했다. 극과 극의 소재와 주제가 절묘하게 어울려서다.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는 반전인가. 치열한 통찰을 일깨워주는 메시지인가.
미국 극장가에서 ‘바벤하이머’ 열풍이 거세다. 바벤하이머는 두 할리우드 영화 ‘바비’와 ‘오펜하이머’의 합성어다. 정반대 성격의 두 영화는 같은 날 개봉했다.
‘바비’는 바비 인형이 소재다. 주인공 바비가 이상적인 ‘바비랜드’를 떠나 현실 세계로 오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그레타 거위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페미니즘과 현실 풍자를 가미했다. 분홍빛이 주를 이루는 밝고 화려한 이미지가 눈길을 끈다.
‘오펜하이머’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작품이다. 얼개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됐던 원자폭탄을 만든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전기다. 인류 최초 핵무기 개발계획과 과학자들의 야망 및 철학 등을 담았다.
영화 개봉 후 분홍색 원피스 차림의 바비와 핵폭탄이 투하된 장면을 배경으로 찍은 주연 배우를 합성한 바벤하이머 유행이 본격화됐다. 미국은 물론 급기야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 상륙했다.
외신들은 두 영화의 조합에 대해 코미디 대 드라마, 인간 상상력의 가장 밝은 면과 어두운 면, 세계를 창조하는 것과 파괴하는 것의 대비가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유혹적이라고 평했다. 영화사 측은 서로 다른 관객층을 겨냥해 경쟁을 의식하지 않고 개봉일을 같은 날로 잡았는데 바벤하이머 조합이 인기를 끌면서 흥행에 시너지를 내는 양상이다. 일각에선 마케팅 전략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온라인에서 두 영화 포스터와 캐릭터를 결합한 ‘밈’도 젊은층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파급 속도도 예사롭지 않다. 어른들은 모르는 MZ세대만의 문법이다.
매일 쓸데없는 이념과 명분으로 나뉘어 으르렁거리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화두도 묵직하다. 꼭 지구 건너편 남의 나라만의 얘기일까.
허행윤 기자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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